▲<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 표지 그림으로 나오는 무스탕의 처자도서출판 호미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는 여행작가이며 시인인 백경훈씨가 사진가 이겸씨와 함께 은둔의 땅으로 알려진 네팔의 중북부, 히말라야 뒤편의 옛 왕국 무스탕을 20여일간 여행하면서 경험한, 빠듯한 행적과 느낌을 내면 깊숙이 적은 기록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방황을 한다. 특히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더욱더 그렇다. 꽉 짜인 일상에서 날마다 일에 허덕이다, 자신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다가 잠시 짬이라도 나면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지?' '삶의 의미가 뭐지'하며 문득 삶에 회의가 들게 마련이다. 이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스탕은 티베트의 남쪽 국경과 마주한 고원이며 협곡의 땅이다. 한해 내내 강풍이 부는 거친 땅이다. 해발 4천m를 넘나드는, 외지인은 숨쉬기도 곤란한 땅이다. 이 땅을 여행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삶이 무엇인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은 모두 나에게 있지만 무한한 대지를 보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있다.
무스탕은 네팔의 중북부 산악 지역 깊숙이 자리 잡은 옛 왕국이다. '가사'라는 곳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티베트로 향해 손톱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지역이다. 네팔 북부에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히말라야 산맥 중 안나푸르나와 다우라기리 사이로 흐르는 칼리간타키 강을 거슬러 올라간 지역이다.
땅은 척박하지만 보리, 메밀, 완두콩, 감자 같은 밭작물을 키우며 산다. 유목민이나 일부 농사짓는 사람들은 양, 염소, 야크 등을 키우고 그들에게서 우유, 고기, 연료를 얻는다. 노새는 짐을 실어나르거나 사람이 타고 다닌다. 아직 현대까지 덜 온 셈이다.
무스탕은 그 존재 자체가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4세기 아메 팔 왕 시절부터 20세기 말까지 600년 동안 존재한 왕국이지만 고원 깊숙이 은밀하게 들어앉아 있던 나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스탕은 '마지막 은둔의 땅'이라는 또 하나의 별칭을 갖고 있다.
네팔이라고 해서, 무스탕이라고 해서 그곳에 인생의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간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듯이 그 역시 오지의 땅을 통해 혼란에 벗어나고 싶어했다. 간단없이 자신을 흐트러뜨리는 미움, 슬픔, 질투, 분노, 절망 따위와 근본적으로 마주하고 싶어했다.
무엇이 인간인가. 무엇이 완성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삶은 고단하다. 술에 잔뜩 취한 한밤중이든, 고요한 새벽에 찻잔을 쥐고 있든, 인간의 본질과 대면하면 삶은 곤혹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글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다.
작가는 숨겨진 인간의 내면을 자연과 더불어 매우 깊이 있게 다루어 처음부터 여행기인지, 철학책인지 헛갈리게 하는 걸 보면 그의 내공이 무척 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인생을 찾기 위해 거칠고 황량하면서도 동시에 휘황하게 아름다운 은둔의 땅 네팔을 선택하고 무스탕을 찾는다. 순수 원형의 땅, 그곳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는 신과 함께하면 그것이 조금은 가능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우연으로 여행이 시작된다고 쓰여 있지만 이 세상에 풀 한 포기인들 우연이 어디 있으랴! 이미 필연으로 맺어 있는 운명인 것을. 네팔은 북부는 히말라야 산맥. 남부는 머하바러트 산맥으로 만년설이 가득한 산악국가라서 추우리라 예상하지만 북위 30도 아래에 위치해서 일년 내내 따뜻하거나 덥다고 한다.
수도는 카트만두. 우리나라의 한 봉사단체 단원들이 각자 임지에서 한 해에 한두 번씩 수도에 모이는데 그들이 하는 얘기에서 그리 크지도 않은 나라임에도 어떤 사람은 '서른세 시간 걸렸다'고 어떤 사람은 마흔 시간 걸렸다는 걸 보면 가보지 않아도 모든 여행의 일정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곳이 네팔이다.
아무리 잘 설명한 여행기라도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겠지만 여기에는 이겸씨가 찍은 너무나 황홀한 사진 한 컷 한 컷이 내 마음을 그쪽으로 인도한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다고 표현해야 할까?
물질의 양과 풍요로움만으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기름진 땅에 전쟁이 끊이지 않듯이 풍요로움은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인간들에게서 버림받은 사막과도 같은 땅, 신들이 사는 곳에서 허락을 받아 동거하고 있는 그들이 행복했다. 말라비틀어진 땅에서 어렵사리 피어난 꽃마냥 슬프고도 아름다웠고 이방인에게 귀한 마음을 잠시나마 보여 준 꽃들에게 두 손 모아 고마움을 전한다는 이겸씨의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무스탕은 초목이 거의 없는 불모의 땅이고 한 해 내내 강한 바람이 불고 3천, 4천을 넘나드는 '낙타등' 지형이라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기에 의지박약이자 약골인 나는 갈 엄두도 못 내겠지만 네팔의 도시에서 설산 구경은 꿈꿀 수 있다.
한 집의 장남과 결혼한 여자가 그 집의 남자 형제들과도 부부의 연을 맺는 일처다부제라는 제도는 일부일처제의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다소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역시 하나의 문화이리라. 이 책을 읽고 나서 네팔 여행에 꿈이 영글어졌다면 '나마스테(안녕하세요)'라는 말이라도 하나 익혀두어야겠다.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
백경훈 지음, 이겸 사진,
호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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