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대문경찰서.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 지휘부의 '발뺌'도 조직 하부를 동요시키는 요인이다. 김 회장의 '보복폭행 의혹'에 대한 늑장수사 비판이 일자 홍영기 서울경찰청장 등 수뇌부는 "첩보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책임을 피하고 있다. 대신 경찰 지휘부는 서울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에 대한 대대적 감찰을 지시했다. 감찰의 첫 대상은 첩보를 처음 언론에 흘려준 경찰관이다.
김 회장 부자의 보복폭행 의혹 첩보를 처음 입수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오아무개(43) 경위는 보고 내용을 언론에 흘렸는지 여부를 조사받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경찰 내부의 시각은 "지휘부가 애꿎은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관 B씨는 "서울경찰청에서 하루에 올라오는 첩보보고만 해도 수백 건에 이른다"며 "청와대 사칭 사건, 주요 인물 연루 사건 등 첩보가 수없이 많은데 (김 회장이 연관돼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하나만 떼서 수사 지시를 할 수 있었겠느냐"며 언론 보도에 불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는 "첩보보고가 김 회장 이름이 나올 정도로 자세히 돼 있었다면 경찰 지휘부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것인데 수사관에 책임을 돌리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언론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 C씨는 "보통 관할 경찰서로 첩보가 넘어가면 1~2개월 정도 내사를 한 뒤 입건해서 수사한다"며 "이번 사건은 절차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는 "공개돼야 하는 사건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건이 있는데 언론이 너무 앞서 나가니까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되고 있다"며 "경찰이 재벌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못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경찰이 차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언론이)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이 수사 방해... 차분한 대응 도와줘야" 불만도
하지만 언론에 휘둘렸든 아니든 사건이 끝나고 나면 지휘부 중 누군가가 옷을 벗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B경찰관은 "지금 경찰 상황은 TV에 나오는 개그를 인용하자면 '난 세 살 때부터 신용을 잃었어'라는 대사와 똑같은 것"이라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인적 쇄신 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인적쇄신이 안된다면 내부 경찰관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사기는 완전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경찰청에 근무하는 또 다른 경찰관 D씨는 "누가 십자가를 질지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누구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며 "책임질 인물이 나타나는 것은 수사가 다 끝나봐야 알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또 우왕좌왕하는 수사 때문에 '수사권 독립'이 물 건너갔다는 한숨도 나온다. 벌써 검찰에서는 "수사 지휘권을 엄정히 행사하라"는 발언이 나왔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직접 나섰다.
정 총장은 2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대기업 회장과 관련된 폭력 피의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사 내용이 소상하게 보도돼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기밀 누출로 인해 수사 효율성에 대한 우려가 초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에 문제가 많다는 불만을 터뜨린 셈이다.
경찰관 B씨는 "경찰이 애써 만들어놓은 수사권 독립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며 "한마디로 허탈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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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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