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만남과 나눔입니다"

[우리 곁에 계신 스승을 찾아서 1] 강변교회 김명혁 목사 편

등록 2007.05.03 12:14수정 2007.05.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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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와 북한을 위해서 우리 종교인들이 더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석가탄신을 축하드리고, 석가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받아서 사회에 소금과 빛이 되시기 바랍니다. ⓒ 권민희

서울 지하철 3호선 매봉역에 내려 출구 계단을 오르자 '강변교회' 표지가 보인다. 골목길 안, 독특한 설계의 인상적인 건물이 강변교회이다. 담임 목사실에 가까이 가자 가곡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목사님께서는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시다가 반갑게 악수를 청하셨다. 일흔의 손길에서 보드라운 힘이 느껴졌다. "쓰던 글을 마무리 짓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씀에 집무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책상 앞에는 초록의 화분들이 빼곡하고, 사무실 벽면은 책으로 가득하다. 남는 공간에는 흑백의 가족사진이며 아이들이 보내온 카드,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 세계를 다니며 수집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어 박물관에 온 기분이 들었다.

목사님은 일상적으로 강변 교회 목회를 중심에 두고 선교활동, 외국 선교지 순방, 기독교 간의 연합운동을 조성하는 일에 중심역할을 하고 계신다. 틈나는 대로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고, 방송국 녹화까지 "요즘 너무 바쁘다"는 말씀과는 달리 표정은 참 여유로우셨다.

도전 속에서 피어난 복음의 씨앗

한 인간의 삶을 간단하게 축약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단면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목사님의 삶과 걸어오신 길을 돌아보시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떻게 하면 목사님처럼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떤 면에서는 고난과 박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편안하면 도전도 못 받고 의욕도 없잖아요. 저희 아버지가 목사로 신의주 평양에서 일하다가 6·25전쟁 바로 전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어요. 그리고 11살에 혼자 삼팔선을 넘으면서 '나는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요. 그 당시의 삶은 늘 도전이었어요. 월남 후 6·25전쟁이 일어났는데 피난살이 삶도 도전이었습니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는데 몇 년 후에 4·19가 일어났어요. 그것도 하나의 도전이었죠. 그 무렵 서울대 문리대 안에서 '새생활 운동'이라는 것을 일으켰어요. 그때 함께한 사람이 나를 비롯해 손봉호 교수, 김상복 목사, 이형기 교수 등이에요. 어수선하고 해이해진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결의가 대단했어요. 대여섯 명이서 한 달 이상 새벽부터 밤까지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어요. 다방에 들어가 '양담배 피우지 말자', '커피를 마시지 말자'고 했고, 댄스홀을 찾아가서는 '댄스하지 말자'고 까지 했지요.

'부패를 제거하고 생활을 바꾸자'는 우리들의 동기가 순수하고 비정치적이어서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어요. 당시 이호 내무부 장관을 비롯한 시경국장과 고위 공무원들도 격려를 해줬어요. 그 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보니 군사정권이에요. 이것도 하나의 도전이었죠. 그때도 우리는 혁명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온건하게 잘못을 지적했죠. 특히 손봉호 박사랑 나랑 군사독재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여러 번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심문도 받았어요."


목사님은 그런 삶의 과정에서 마음에 '복음주의'의 씨앗을 심었다. 심문을 받는 가운데서도 평정을 잃지 않았고, 심문을 받다 잠시 쉬는 틈이 생기면 주일에 설교할 것을 연구했다고 한다. 이후 목사님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 신학회를 만들어 기독교 안에서 '복음주의 운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하셨다. 복음주의 운동에 관해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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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의 집무실. 책상 앞에는 초록의 화분들이 빼곡하고, 사무실벽면은 책으로 가득하다. 남는 공간에는 흑백의 가족사진이며 아이들이 보내온 카드,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 세계를 다니며 수집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어 박물관에 온 기분이 들었다. ⓒ 권민희

인생은 만남과 나눔

우리가 기복신앙이나 정치신앙에 치우치지 말고 바른 신앙을 갖고 연합운동을 하자는 취지로 80년대 초에 '한국복음주의 신학회'을 만들고 세계적 연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선교는 정복이 아니라 나눔이에요. 십자군이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여러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돕고 바로 살게 하는 것이죠. 방글라데시에 가서 병원도 세우고, 아프카니스탄에 학교도 세우고 아프리카에 우물도 파주면서 선교도 하고 협력을 배웠어요.

그러면서 북한 돕는 일도 시작했죠. 우리 복음주의협의회가 북한 돕기를 시작한 게 95년 12월부터니까 한 12년 되었네요. 그때 "북한이 홍수로 큰일 났습니다. 목사님이 도와주셔야겠어요"하고 유진벨 재단 스티븐 린튼 박사에게서 홍콩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제가 목사님들을 불러 모으고 "우리가 합시다" 했던 것이 출발이에요.

북한을 도우면서 그때 타종교인과도 소통을 시작했어요. 법륜스님과 오태순 신부님, 강원용 목사님, 김수환 추기경님도 만났지요. 그때 법륜스님께서 순수한 동기로 북한과 탈북자를 돕고, 인도사람을 돕는 걸 보면서 감동을 받았어요. 또 그때 열성적으로 북한돕기를 하는 불교 청년들을 바라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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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면서 매일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목사실을 방문하고 안아달라고 조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솔직한 성품과 항상 웃으시는 얼굴이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참 맑았다. ⓒ 권민희

종교는 포용과 이해

제가 작년 말에 타쉬켄트 옆에 조그만 베카벡이라는 마을에 갔어요. 거기서 어떤 한국 장로님이 "농사를 지으며 어린아이들을 돕는데 무슬림들이 안 좋아합니다. 목사님이 시장을 만나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부탁을 해서 시장을 만났어요. 저의 첫 마디가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 십자군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한국선교사들이 열정이 지나쳐 타 종교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점도 잘못이다" 진심으로 이야기했어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이분이 "우리도 잘못됐다. 우리가 성경 말씀대로 코란 말씀대로 한다면 서로 싸우지 않았을 텐데" 하시는 거에요. 내가 마음을 여니 그분의 마음도 열리면서 자기 속에 있는 진심이 나온 것이죠. 종교를 초월해서 서로 진심으로 만나 포용하고, 이해하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인생을 '만남과 나눔'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속에서 마음을 열어 먼저 다가가면 사람들의 마음도 넓어짐을 느낀다고 강조하셨다. 모든 것이 만남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목사님은 문화적, 종교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인간은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모두 고귀한 존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한다.

깨달음은 기쁨이자 행복

나는 목회자가 되기에 앞서 역사를 공부한 게 참 다행입니다. 역사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와의 끊임없는 만남이에요. 또 역사는 하늘과 땅과의 만남입니다. 불교와도 통하는 말인데요. '초연'이라고 하죠. 중세의 엑하르트라는 사람이 "겸손이 중요하지만 겸손보다 중요한 것이 초연이고,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초연이다"라고 말했는데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연은 자기에게 붙은 애착, 육체에 붙은 애착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나'라는 것이 나의 이상과 감정에 꽉 붙잡혀 있을 때 쉽게 속이 상하고 쉽게 절망합니다. 이걸 알면 삶의 자세가 바뀌고 여유로워집니다.

그리고 타문화, 타종교와 만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오늘의 역사를 이뤄가는 과정이니까요. 시간 공간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다름을 인정하는 그것이 역사에요. 그래서 만남에서 나눔이 있고 거기서 깨달음도 있게 됩니다. 깨달음은 곧 기쁨이자 행복이에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만남과 나눔이 있으면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시대의 화해와 상생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화해를 위해 종교가 가지는 역할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모든 종교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길

각 종교의 좋은 점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의 정복적·배타적·이기적인 점은 지양하고 종교의 사랑·자비·겸손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특히 양극화를 해소 하는데 거름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가 하나가 될 수는 없지요. 각자의 신앙은 유지하면서 사회 안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따뜻함과 소망을 주고 화해를 하는 일을 실현시켜 나가야 합니다.

가끔 법륜스님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같이 모여서 기도합시다" 그래요. 내가 "기도는 따로 하는 겁니다" 하죠. 그렇지 않아도 내가 천주교, 천도교, 불교 가까이 지낸다고 말이 많아요.(웃음)

정토회에서 성탄절에 늘 와줘서 참 고마워요. 예전에 추수감사절 때도 정토회에서 한 열 명이 와서 '사랑의 노래'를 불렀어요. 강원용 목사님 살아 계실 때여서 마침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강 목사님이 깜짝 놀란거에요. "우리 교회에서도 이렇게 하면 큰 야단나는데 어떻게 강변교회에서 불교도들이 와서 예배시간에 노래까지 하냐" 하셨지요.

예배는 따로 해도 우리는 같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이 사회와 북한을 위해서 우리 종교인들이 더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석가탄신을 축하 드리고, 석가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받아서 사회에 소금과 빛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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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교회 사람들은 목사님을 “영 몰라, 통 몰라, 가르쳐 줘도 몰라.” 라고 부른다. 어떤 일에 집중하다 보니 주변 정리와 물건을 망각할 때가 있어 신도들이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물건을 잃어버려도 당황하거나 안달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 목사님. 그러면서도 모든 할 일은 빈틈없이 해 내고 계신다. 그 힘이 만남과 나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권민희


김명혁 목사님은 누구?
실천하는 신앙 중심 강변교회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인 신앙생활에 힘쓴다’는 기치로 지난 1980년 문을 연 강변교회의 김명혁 목사.

정통 신학자로서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고, 선교와 구호활동에서도 남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분이다. 특히 지난 2002년부터 ‘한국복음주의협의회’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교파와 종교를 뛰어넘는 대화와 나눔을 위해 왕성한 활동하고 있다.

강변교회에서는 해마다 '강변교회 요람'을 만들어 실천목표를 가지고 기복이나 정치신앙이 아니 실천 신앙을 행해가고 있다. 다음은 강변교회의 절제운동 10가지 실천 항목이다.

강변교회 절제운동 10가지 실천항목

1. 작은 차를 타고 대중교통수단이나 자전거를 이용하자.
2. 해외여행을 삼가고 비행기 1.2등급을 이용하지 말자.
3. 고급호텔 이용을 피하고 모든 행사를 간소하게 치르자.
4. 외식비용을 줄이고(8000원 내외)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
5. 애경사(결혼, 혼수, 회갑,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자.
6. 일회용품을 적게 쓰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습관화하자.
7. 아나바다운동(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을 생활화하자.
8. 에너지를 절약하자(전기, 수돗물, 종이).
9. 외제품, 호화 사치품을 사용하지 말자.
10. 가난한 이웃과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돕자. / 권민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정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정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명혁 #매봉역 #강변교회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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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나를 찾기 위함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런 나에 집착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만남도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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