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은 핏줄대신 사랑 흘러요"

다섯남매 공개 입양한 최진수·천병희 가족

등록 2007.05.07 10:41수정 2007.05.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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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김세옥 기자]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1층 집. 빠끔히 열린 문틈 사이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경쾌하게 흘러나온다.

"실례합니다."

인사 소리에 후다닥 뛰어 나오는 아이들. 순영(9), 순민(7), 순호(5), 순성(4), 순주(3) 다섯 남매다. "안녕하세요!" 낯선 사람에게 일말의 낯가림도 없이 앞 다퉈 인사를 건넨다.

"정신이 없죠?"

얼핏 듣기에도 흐뭇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 입양을 통해 다섯 아이들의 행복한 아빠, 엄마로 살아갈 기회를 얻은 최진수(41), 천병희(48)씨 부부였다.

"아이를 가지려고 했는데 잘 안 됐거든요. 그래서 입양을 결정했고 부모님들도 반대하지 않으셨죠. 둘째까지는.(웃음) 그래도 셋째까진 (찬반이) 반반이었는데, 넷째부턴 절대 반대로 돌아서셨어요. 결국 사전 입양, 사후 통보라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죠. 뭐, 짐작은 하고 계시더라고요."

다섯 남매는 모두 공개 입양을 통해 부모의 품속에 안겨왔다. 최근 국내 입양 중 공개 입양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직계 혈통에 대한 강박이 여전한 우리 사회에선 이를 쉬운 선택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이에 대해 최씨는 "고교 때 교장선생님이 비밀 입양을 통해 아들을 얻었는데, 아이가 자라서 그 사실을 알고 심하게 방황하는 모습을 봤다"며 "입양 사실을 자연스레 알려주고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나이에 맞게 조금씩 고민을 해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천씨가 문득 생각난 듯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큰딸 순영이를 데려온 게 2000년 4월이기 때문에 서류에는 그때가 생일로 기록돼 있지만, 진짜 태어난 때는 12월이라서 우린 그때 생일잔치를 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 사실을 모르고 4월에 순영이에게 생일 축하 카드를 주신 거예요. 순영이가 ‘4월은 제가 입양된 날이고 진짜 생일은 12월이에요’라고 말해서 오히려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고 해요."


입양에 대해 편견을 지닌 사람들은 흔히 "결국 피는 속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버려진 너를 거둬준 부모에게 잘해야 한다"며 입양아들에게 그들의 남다른 위치를 필요 이상으로 재확인시키는 경우도 있다. 순혈주의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핏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잘못인 줄 알지만 입양 가정의 부모들도 감정을 지닌 사람인지라 계속되는 편견에 부딪힐 때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입양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단계에서 주저하는 이유도, 한국이 세계 4위의 입양아 수출국(2006년 12월 기준)인 까닭도 바로 여기 있다.

이런 순혈주의 논란에 대해 최씨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인류는 모두 노아의 자손이며, 유전자 연구 결과들을 보더라도 인류는 한 핏줄에서 비롯됐다고 하지 않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간은 인종을 불문하고 99.9%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새겨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그는 "아이를 키워보면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떠한 가정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말투와 행동, 가치관, 심성이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전근대적이며 근시안적인 핏줄 강박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행복한 가정은 육신을 복제하는 유전자로 연결된 사람들끼리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넉넉한 가슴으로 서로를 품을 줄 아는 사랑이란 이름의 제3의 유전자를 창조한 이들에게 더 가까이 있다는 믿음인 것이다.
#우먼 #여성 #5월 #가정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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