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 공연, 소림무술... 이게 가야문화야?

[참관기] 제31회 가야문화축제, 백화점식 행사 아쉬웠다

등록 2007.05.07 16:32수정 2007.05.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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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 고분군이 있는 언덕에 소망등이 전시돼 있다.
대성동 고분군이 있는 언덕에 소망등이 전시돼 있다.오마이뉴스 김대홍

김훈의 <현의 노래>, 최인호 <제4의 제국>, 세계 최초 국제결혼이라고 할 수 있는 수로왕과 인도 여인 허황옥의 만남, 거북에게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고 위협하는 <구지가>, 명인 우륵, 한국의 대표 악기 '가야금'.

이들은 모두 한 지점을 향한다. 바로 가야다. 고구려와 신라에 밀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왕국. 한반도 토착민과 인도 부족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왕국. 그러나 삼국통일을 이끈 김유신과 가야금의 창시자 우륵을 낳은 나라. '가야'는 무척 흥미로운 대상이다.


이것이 지난 5~6일 이틀 동안 김해가야문화축제(4월 29일-5월 6일)에 다녀온 이유다.

성산가야(성주), 아라가야(함안), 고령가야(진주), 소가야(고성), 대가야(고령) 등 부족연합체였던 가야연맹에서 맹주국가는 금관가야(김해)였다.

고속버스, 지하철, 다시 시외버스... 김해 찾아 3만리

서울보다 30~40㎝ 가량 짧은 부산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김해로 가고 있다.
서울보다 30~40㎝ 가량 짧은 부산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김해로 가고 있다.오마이뉴스 김대홍
4일 저녁 서울 시내 모처에서 공연을 보고 함께 공연을 본 공연기획자, 작곡가와 함께 저녁 늦게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사람들이 붐비는 매표 창구. 5월 5일 어린이날을 앞둔 데다가 연휴의 시작이었던 금요일 저녁, 차표는 모두 매진이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데 "부산·창원·마산 가실 분"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표가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출발하는 임시 관광버스였다.


목적지는 부산. 야간우등고속버스보다 3000원 가량 쌌다. 자전거 두 대를 짐칸에 싣고 차에 올라탔다. 앞뒤 공간은 빡빡했고 일반고속버스와 승차감이 똑같았다. 비정규 버스를 탄 탓에 잠시 승객과 운전사 사이에 실랑이도 있었다.

"영수증 주시죠?"
"영수증이 없습니다. 차를 뽑은지 1주일밖에 안 돼서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차비를 받았으면 영수증 주셔야죠? 여러분들도 모두 영수증 달라고 하세요."
"…."


주위 승객의 참여까지 유도하며 영수증을 요구한 승객은 결국 영수증을 얻지 못했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차를 뽑은 지 1주일"이란 말에 몇몇 사람들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안전벨트를 맸다. 자정에 출발한 버스는 두 번의 휴게소를 거친 뒤 새벽 6시에 부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일행을 제일 먼저 반긴 이는 터미널 근처에 있던 택시 기사. "어디 가십니까. 김해요? 김해가 아주 넓은데 어디죠. 김해박물관요? 2만6천원은 주셔야겠는데요."

3만원 가까이 주고 택시를 탈 순 없었다. 게다가 자전거 두 대와 세 사람이 택시 한 대에 타기는 서커스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결정.

고속버스터미널이 있는 노포역에서 김해행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사상역까지는 23구간. 서울지하철보다 약 30~40㎝ 가량 폭이 좁은 부산 지하철에 자전거 두 대를 밀어 넣고 자리에 앉았다.(서울지하철 폭 3.12m, 부산지하철 폭 2.75~2.78㎝)

노포역에서 산 스포츠신문을 읽다보니 어느새 사상역 도착. 토요일 오전 7시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은 한산했다. 짐칸이 좁고 청소도구가 들어있어 비좁은 짐칸에 자전거를 구겨 넣고 올라탔다. 40분을 달려 김해에 도착한 뒤 일행은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그리곤 그대로 잠 속에 빠져들었다.

발효톱밥, 재활용슬리퍼, 한국형카페트... 엥?

여러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야시장.
여러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야시장.오마이뉴스 김대홍
숙소에서 나와 오후 2시경 가야문화축제 행사장을 방문했다. 과연 가야문화축제는 어떤 모습으로 서울에서 온 방문객들을 맞이할까 궁금했다.

장소는 대성동고분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가야의 거리'였다. 지난해 10월 '가야세계문화축전'이 열렸던 그 장소. 당시 축전을 구경했기 때문에 장소는 낯익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혼잡할 것에 대비 입구에 자전거를 세우고 천천히 입구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중소기업 제품 전시장이었다. 엥? 웬 중소기업 제품?

축분뇨 100% 발효 증발 톱밥, 우수재활용 슬리퍼, 한국형카페트, 농산물과 한우, 밑반찬 등 각종 제품 전시회장이 상당히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당혹스런 마음에 근처 노점상 상인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가야문화축제 하는 곳 맞죠?"
"예."
"그런데 중소기업 제품전시회 하는 곳밖에 없나요?"
"아니에요. 조금 더 가면 야시장도 있어요."
"…"

상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약 200m 가까이 펼쳐진 중소기업 전시장을 지나니 곧바로 먹거리 장터가 나왔다. 먹거리 장터도 길이가 길었다.

이들 전시장을 지나자 대성동고분박물관 근처 본 행사장이 보였다. 여기선 세계음식·천연염색·설탕공예·전통놀이·새총쏘기·토피어리 등 각종 문화전시·체험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서도 가야의 흔적을 찾을 순 없었다. 어느 축제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공간들이었다.

지역민들만을 대상으로 한 축제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30년동안 이어온 가락제와 가야세계문화축전을 합친 축제라면 문제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서울 경기 등 먼 지방 관객들을 부르기 위해 서울에서 홍보 행사까지 하지 않았던가.

왼쪽이 주무대. 오른쪽이 각종 전시장과 체험장. 가까이 보이는 언덕이 대성동고분군이다.
왼쪽이 주무대. 오른쪽이 각종 전시장과 체험장. 가까이 보이는 언덕이 대성동고분군이다.오마이뉴스 김대홍
가야 여인. 상당히 체구가 작다.
가야 여인. 상당히 체구가 작다.오마이뉴스 김대홍
결국 가야의 흔적은 축제 프로그램이 아니라 상설전시장인 노출전시관,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 중 대성동 고분은 작가 최인호가 <제4의 제국>을 쓰는데 모티브를 준 곳이다. 최인호는 여기서 파형동기(巴形銅器)가 대량으로 출토된 것에 주목, 역사 추적을 시작했다.

바람개비 모양을 닮아 '바람개비형 동기'라고도 하는 파형동기는 일본 고유 유물로 전세계에 알려져 왔는데, 일본에선 왕의 무덤에서만 나올 정도로 고급 유물이었다. 작가는 파형동기가 일본 스이지가이(조개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파악했으며, 스이지가이의 원형이 인도 비슈누 여신에서 비롯됐다고 결론내림으로서 인도인 허황후 설화가 사실임을 입증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흥미로웠다. 금관가야 여인의 키가 150㎝가 조금 넘는다는 사실, 가상화면으로 재현한 2000년전 금관가야 여인,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위에 돌을 놓아 이마를 평평하게 하는 성형술인 '편두', 하위무사·상위무사·장군별로 재현한 투구와 갑옷 등은 그 당시를 고스란히 재현한 느낌이었다.

노출전시관은 대성동고분군 발굴 무덤 중 두 개 무덤(29호, 39호분)을 그대로 복원한 곳이다. 당시 지배계층의 무덤 양식을 볼 수 있다.

김해·인도협연, 가야금앙상블은 가야다웠지만

5일 주무대에선 김해·인도 협연, 가락국기 가무극 등 가야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공연이 마련됐다.

하지만 제1회 영남탈춤제, 중국 소림무술, 이광수 사물놀이, 중국 변검과 용춤, 퓨전 국악 등은 가야축제와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무대 근처에 펼쳐진 꽃작품 전시, 전통놀이, 전국학생미술실기대회, 소망등 전시, 가야등창작전국공모전 작품 전시 등도 볼거리는 제공했지만 역시 가야의 숨결을 느끼긴 힘들었다.

김해·인도 협연은 금관가야의 성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관가야 초대여왕이 인도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점에 특별히 주목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김해·인도 협연은 연합무용, 벨리댄스, 춤서리 등과 함께 '예술무대'에 포함돼 있었다.

무용·비보이 공연·사물놀이·퓨전국악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졌다.
무용·비보이 공연·사물놀이·퓨전국악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졌다.오마이뉴스 김대홍
5개국 가야금 계열 악기 연주자가 모인 가야금 앙상블팀.
5개국 가야금 계열 악기 연주자가 모인 가야금 앙상블팀.오마이뉴스 김대홍
6일 열린 5개국 가야금앙상블 또한 의미를 둘 수 있는 공연이었다. 여기엔 한국·일본·중국·베트남·타이완 등 5개국가 연주자들이 고토(일본), 고쟁(중국 타이완), 단트란(베트남), 가야금(한국) 등 자국 악기를 들고 나와 협연을 펼쳤다. 모두 가야금 계열의 악기들.

베트남 연주자 팜 트라 미의 독주에 이어 중국 타이완 강샤오칭, 쉬후이치의 협주, 다시 한국 박순아, 일본 노부코가 참가하는 5개국 합주가 이어지자 관객들은 크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박수를 보냈다. 옆 자리에 앉은 한 중년남성은 베트남 연주자를 보며 "내가 월남전에 갔을 때 말이야"라고 하면서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이들 5개국은 역사적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나라들이다. '식민지 정책' '제2차 세계대전' '과거사 분쟁' '하나의 중국' '월남전'이란 역사의 고리에 따라 물고 물리는 애증의 관게를 만들었다. 이들 연주자들을 보면서 혹시 관객들은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그러나 5개국 가야금 앙상블 또한 5개국 협연이란 점이 거의 부각되지 않았으며, 프로그램에도 가야금 앙상블이라고 짧게 소개돼 있었다. 축사를 하러 무대에 올라온 김종간 김해시장이 "중국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소개했을 정도.

김해를 대표하는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과 협연을 기대했던 나로선 이들이 자체 공연만 마치고 내려간 게 못내 아쉬웠다.

아직은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많아... 내년에는?

가야금 앙상블팀과 나눈 짧은 이야기

이 내용은 재일교포 연주자인 박순아씨와 나눈 이야기다.

- 5개국 연주자가 가야금 앙상블을 이룬 게 언제부터인가.
"이번이 처음이다."

- 그 전엔 교류가 전혀 없었나.
"한·중·일 연주자는 '고토히메'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7년 동안 활동하고 있었다. 러시아·미국 등 해외에서도 공연을 했다. 베트남과 타이완은 이번에 한국에서 공연하면서 처음 합류하게 됐다."

- 이들 5개국은 역사적으로 많이 부대낀 나라들이다. 그런 점을 의식하진 않았나.
"전혀. 우린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단 활동을 하면서 관객들이나 팬들로부터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조금씩 생각하고 있다."

- 5개국 연주단이 앞으로도 계속 공연할 것인가.
"모르겠다. 5개국 연주단을 엮은 김진묵 선생님이 '동심화'란 이름을 즉흥적으로 지어주셨다. 같은 마음을 지닌 연주자들, 동아시아 국가의 연주자들이란 뜻이라고 하시는데, 희망사항이다."

- 앞으로 계획은.
"'고토히메'는 앞으로도 계속 활동한다. 6월엔 중국 듀오 공연, 10월엔 도쿄 트리오 공연이 계획돼 있다." / 김대홍
가야문화축제의 모호한 성격은 폐막식에서도 잘 드러났다.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이나 김해를 대표하는 전통 명인들의 연주 대신 타 지역에서 내려온 퓨전국악팀과 비보이 팀이 폐막식을 장식했다.

이들은 관객의 기대에 부응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열의를 다해 공연을 펼쳤다.

단 '가야문화축제'라는 이름이 아니라 '김해 시민의 날'이었다면 이들의 공연은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렸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김종간 시장은 폐막축사에서 "크게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유재만 사무국장은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았던 것 같다"면서 마무리말을 했다.

2008년 한 번 더 기대를 가져볼까?
#금관가야 #김해 #가야문화축제 #가락국제 #가야세계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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