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머니 덕 좀 보려나

내 등에 부항을 뜨시는 어머니

등록 2007.05.07 17:30수정 2007.05.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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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만 받다가 자식의 아픈 몸을 치료하게 된 어머니는 즐겁다.
돌봄만 받다가 자식의 아픈 몸을 치료하게 된 어머니는 즐겁다.전희식
불쑥 어머니를 불렀다. 왜?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신다. 조금 과장해 가며 어제(6일) 너무 힘들게 일을 해서 온몸이 쑤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논두렁 바르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라면서 한숨 자라고 하셨다.


"자기는 무슨…. 대낮에…. 좀 있다 논에 물 보러 가야 해요."

어머니가 안쓰러워하신다. 바로 이때다 싶었다. "어무이. 나 이것 좀 해 줄래요? 이거요" 하면서 부항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뭐 하는 거냐고 하셨다. 그리고는 부항기 상자를 열고 살펴보시더니 아주 재미있는 비교를 하셨다.

"이거 소 모가지에 거는 핑경같네? 소도둑놈들은 소 훔쳐갈 때 제일 먼저 핑경부터 떼놓는다 카든데."

그러고 보니 부항기 컵이 핑경 닮았다.


"소 핑경이 양쪽으로 두 개짜리가 있고 모가지 밑에 다는 항 개짜리가 있는데 등그리에 쇠파리 쪼츨라꼬 모가지를 뒤로 휙 하믄 땅글땅글 하는기라. 이기 그거 가치 생겼네?"

나는 2-3일에 한번씩 어머니의 여성 혈자리에 <무극보양침>을 놔 드린다. 침과 뜸, 지압 등을 받으면서 어머니는 몸 관리에 대해서 나에 대한 믿음이 크시다.
나는 2-3일에 한번씩 어머니의 여성 혈자리에 <무극보양침>을 놔 드린다. 침과 뜸, 지압 등을 받으면서 어머니는 몸 관리에 대해서 나에 대한 믿음이 크시다.전희식
나는 웃통을 벗고 엎드리기 전에 부항 사용법을 필담을 곁들여 가며 설명했다. 내 팔뚝을 걷어 시범을 보이고는 어머니에게 해 보시라고 했다. 부항기를 잡는 게 서툴고 압축이 잘 되지 않아 컵이 자꾸 떨어졌다.


어지간해졌을 때 어머니 앞에 쭉 엎드렸다.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만난 듯 어머니가 부항을 뜨기 시작하셨는데 부항이 하나 붙을 때마다 나는 시원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등에 붙는 부항보다 굴러 떨어지는 부항이 더 많았지만 뭉친 근육이 풀리고 뻐근하던 어깨 죽지도 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어이구. 시원하다. 어머니 의사 다 됐네요. 어이구 시원해라."
"이기 암매 공기를 자꾸 집어넣으니까 그래서 시원항가배? 바람을 자꾸 일어키믄 여름에 부채가 그래서 시원항거 아이가."

지난 1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지리산에서 2박3일의 <자연의학교실>을 통해 각종 자가 치료법을 익혔다.
지난 1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지리산에서 2박3일의 <자연의학교실>을 통해 각종 자가 치료법을 익혔다.전희식
나름대로 어머니가 부항기의 치료원리를 터득하신 모양이다. 내가 본심을 드러낼 때가 예상보다 일찍 왔다.

"어무이가 너무 잘 하신다. 언제 해 봤는갑따. 그렇죠?"
"아이다. 내가 언제. 봉께 그렇네. 바람 부치니까 시원하지 뭐."
"맞아요. 맞아. 바람 집어넣으니까 시원하네요."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어깨 죽지를 돌리면서 이제 전혀 아프지 않다고 큰 소리쳤다. 내일도 해 달라고 하니까 좋아하신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대소변도 옳게 보지 못하시는 어머니. 당신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어 옷 입는 것까지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어머니는 자식 아픈 몸을 치료하게 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자꾸 부항기를 만지작거렸다.

병들고 늙으신 우리 어머니. 더워질 때쯤 되면, 묵은 김치 씻어 넣고 통밀가루 반죽하여 보릿고개 넘으려고 징그럽게도 많이 먹던 그 쉰내 나는 수제비를 직접 만드시게 하여 얻어먹을 생각이다.
#어머니 #부항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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