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과 붉게 칠해진 글씨.리
필자는 군포시의 구 주공아파트에 살았다. 1989년. 그 곳은 최초의 규모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공간이 우리집이 되었다. 주말이면 근처 수리산을 오르곤 했었는데, 가는 길목은 논과 밭의 전형적인 시골길이었다.
5층짜리 아파트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다. 무슨 나무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낮에는 내 방이었던 안방 창문으로 나뭇잎 사이를 흐르는 햇살과 바람소리...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동안 넋 놓고 창을, 그리고 나무를 바라봤었다.
당시 어린 내게 아파트는 TV에서 비쳐지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가진 공간이 아니었다. 상당히 내성적이었던 필자에게 옆집과 윗집은 가까이 붙어 있는 놀이의 공간, 한 두살 어리거나 많은 친구와의 만남의 장이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의 낡은 주차장은 저녁때까지 나의, 우리의 운동장이자 놀이터였다. 비록 공이 차 밑으로 들어가는 낭패를 조심해야 했지만.
중학교까지 10여년간 그곳에서 보내고 이사를 했다. 새집으로 이사간다는 약간의 기대감으로 떠났다. 여름엔 약간 습하고도 시원한 바람이 불던 베란다와 어쩌면 나의 나무였던 그것을 두고.
멀리 이사한 것이 아니어서 우연히 살던 곳을 지나는 경우가 있었다. 어쩌면 한 곳에 계속 사는 것보다 한 두번 이사를 하는 것도 괜찮다고 느꼈다. 좋았던, 싫었던 기억이든 그곳을 지나면서 잠깐잠깐 추억을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올해 초에 구 주공이 재건축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오래전 내가 살았던 곳은 그 곳에서 볼품없는 곳이 되었다. 사방에는 하나둘씩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수리산을 오르던 회색 포장길과 논과 밭 또한 아파트와 공원단지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