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만 만나면 신들린 것 같아요"

[인터뷰] <인생노트> 쓴 70대 고광애씨와 40대 유경 기자

등록 2007.05.09 09:26수정 2007.05.0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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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의 고광애씨와 40대의 유경 기자가 만나 세상에 한 권의 책을 내놓았다. 현재 중년을 살아내는 40대와 중년을 지나 노년의 길을 걷고 있는 70대가 함께, 지혜롭게 나이 드는 법과 더불어 아름답게 이별하는 이야기까지 조곤조곤 풀어낸 <마흔과 일흔이 함께 쓰는 인생노트>가 바로 그것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인생노트>는 노년에 관한 세 번째 책이다. 마흔과 일흔의 삶의 경험이 깊이 있게 배어 있다. 두 사람을 만나 이번 책이 갖는 의미와 중년과 노년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자 주>


[인터뷰 ①-고광애] "<바람난 가족>에 카메오로 출연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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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상담가 고광애씨 ⓒ 서해문집

"부끄러워요. 늙은이가 한두 번 했으면 됐지, 뭐 특별한 발명을 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이론도 아닌데 세 번씩이나 나대는 게 부끄러워요."

노년상담가 고광애씨는 세 번째 책을 낸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이왕에 책을 낸 거 널리 알려서 많이 읽히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감독 아들이 칸에서 뭔가 터뜨릴 때를 맞춰서 책을 낼 걸 그랬다는 생각을 다했어요. 아들 덕 좀 보려고…. 호호호"

고씨가 말하는 '감독 아들'은 바로 임상수 감독이다. 임 감독 이야기를 하면서 고씨는 첫 책을 출판했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가족 소개를 하다가 둘째 아들이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했단다. 별로 자랑스럽게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만든 임 감독이라고 하자 젊은 여기자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더란다. 그래서 아들이 '유명한' 감독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단다.

하지만 고씨는 감독 아들이 만든 영화가 좀 민망하다. 어찌된 게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나오는 처녀들은 한결같이 '그 짓'을 못해 안달인 건지. <바람난 가족>에는 감독 아들 덕분에 딸과 함께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에 잠깐 나와요. 딸은 뒷모습만 나왔지."

아이 셋 키운 전업주부, 그러나 '해바라기'로 살긴 싫었다

고광애씨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만 남았더란다. 다 자란 아이들이 제각기 독립을 해서 어머니 곁을 떠난 것이다.

"난 우리 어머니가 나만 바라보고 산 게 너무 지겨웠어요. 우리 어머니가 나를 너무 편애하셔서 내가 결혼하자 일주일 뒤에 짐을 싸들고 아예 우리 집으로 오셨잖아요. 어머니는 나만 해바라기 하면서 아흔셋에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사셨어요. 그래서 나는 절대로 우리 어머니처럼 자식만 바라보고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어머니가 반면교사였다는 고씨는 50대의 나이에 '노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정말로 열심히 공부해서 예순넷의 나이에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노년상담가로 활동하면서 방송도 하고, 꾸준하게 글을 써왔다. 가끔 강연을 하기도 한다. 2003년에는 두 번째 책도 출판했다.

세 번째 책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유경 기자와 의기투합해 내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책을 쓰는 사이에 아흔셋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남편이 병원에 세 차례나 입원했다.

한 꼭지를 쓸 때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까지 겹쳐 애를 많이 먹었지만 이렇게 세상에 내놓으니 홀가분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한다. 어머니 때문에 책을 못 쓴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기왕에 하기로 한 것, 약속을 지키고 싶었단다.

노인이 비아그라 먹는 게 어때서!

"중년의 이야기가 제일 쓰기 어려웠어요. 다 지나간 이야기라서 내가 그때 어땠는지 다 잊었거든요. 제일 재미있게 쓴 건 '노인에 대한 오해' 부분이에요. 오해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요. 한달에 두 번씩 의사한테 비아그라 타가는 노인이야기도 실화예요."

그 대목에서 비아그라를 처방한 젊은 의사는 "약을 먹고서도 하고 싶을까" 하면서 웃었다지만 고씨는 "근시가 안경을 쓰고서 잘 보이듯이, 원시가 돋보기를 쓰고 가까운 데의 것이 잘 보듯이, 비아그라 먹고 잘 되면 좀 먹고 해보겠다는데 왜 웃어요, 웃긴" 하면서 정곡을 찔러줬다.

고씨는 일흔의 나이지만 취미생활도 즐긴다. 주로 영화를 많이 본다. 연극이나 음악회, 뮤지컬 공연은 솔직히 너무 비싸서 갈 엄두가 안 나고, 그에 비해 관람료가 싼 영화는 많이 보러 간다. 좋다는 영화는 다 보지만 그냥 아무 영화나 보지 않는다.

"까다롭게 고르죠. 감독도 보고, 배우도 보고, 내 취향도 고려해서 좋다는 작품을 가급적 골라서 보죠. <마리 앙투아네트>는 친구와 서로 꼭 챙겨서 보자고 약속했어요."

전업주부로 살다가 첫 책을 내자, 살면서 그래도 이거 하나는 남기게 되었구나 했는데 세 번째 책을 내서 더는 바랄 게 없다는 고씨. 그래도 꼭 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면 이제는 '죽음'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번 책에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건 약간 건드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좀 더 깊이 있는 죽음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죽음에 관해 공부도 하고 있고, 어머니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게 많아서 한번 정리를 해보고 싶은데 여건이 될지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는다.

[인터뷰 ②- 유경] "세 번째 책, 새로 태어난 아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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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전문가 유경 기자 ⓒ 서해문집

"책을 낼 때마다 후유증을 심하게 앓아요. 이것도 출산의 일종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책을 준비하는 동안에 조카를 잃는 아픔까지 겪어서 더 그랬나 싶기도 하지요."

<오마이뉴스>의 오랜 시민기자이면서 노인복지전문가이자 죽음준비교육 강사인 유경 기자는 책을 출간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책은 준비기간까지 합쳐서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세 번째로 펴낸 책이지만 책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새롭다고 한다.

그 소감을 유경 기자는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오랜 시간 힘들어하며 쓴 책, 중간에 여러 번 접으려 마음먹었던 책, 막상 받아드니 즐거움만도, 기쁨만도, 감격과 감사만도 아닌, 무언지 모를 쓸쓸함 같기도 하고, 허탈함 같기도 하고, 외로움 같기도 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마구 뒤섞여 지나갔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처음 받아 안았을 때 같았다. 두 아이가 다 다른 느낌으로 내게 온 것처럼, 세 권의 책 역시 첫 대면의 색깔이 다 다르다."


그래서 아이를 낳았을 때는 가만히 누워 있었지만 책이 태어난 날에는 평소처럼 집안일을 했고, 밥이 끓고 있는 전기밥솥 옆에서 갓 출간된 새 책을 읽었단다.

CBS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재직하면서 노인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유경 기자는 노인복지전문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남들은 재미없게 여기는 '노인 프로'인데도 최선을 다하다 보니 노인들이 보이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아예 그 쪽으로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복지관에서 일을 했지만 과감하게 '프리랜서'를 선언, 노인전문강사로 현장에서 노인들과 날마다 새롭게 만나고 있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이 들린 것처럼 강의를 해요. 어르신들을 만나면 목소리 톤도 달라지고, 평소의 낯을 좀 가리는 모습이 사라지고 적극적이 되지요. 남들은 노인을 만나면 기를 빼앗긴다고 하는데 나는 안 그런 거 보면 신기해요."

행복한 삶 위한 '어르신 흉보기'

<오마이뉴스>에 영화나 책을 본 뒤 그 속에 나오는 노년 이야기를 기사로 써서 올린 것을 모아 처음 출간한 책이 <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다. 가장 애정이 많이 가는 책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펴낸 <마흔에서 아흔까지>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인생노트>가 나오는 시기에 맞춰 10쇄를 찍은 것이다. 첫 책도 좀 더 보완을 해서 개정판을 낼 계획이다.

유경 기자는 지난해부터는 노년강의에 이어 '죽음교육 전문강사'로 변신했다. 노인문제에서 '죽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서 1위인 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만큼 노인으로 살기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지혜롭고 아름답게 이별을 준비하고, 잘 죽는 것은 인생을 마무리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 유경 기자의 얘기다.

책을 쓰면서 가장 신나서 쓴 부분을 물으니 '어르신들 흉보는 일'이었다며 멋쩍게 웃는다.

"노인복지 하는 사람은 어르신들께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내놓고 흉보기 어렵잖아요. 잘못 말하면 절대 노인 복지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몰아붙이기도 하고요. 책을 통해서 평소 어르신들이 좀 고치셨으면 하는 점들을 짚어내는 일이 그래서 재미있었어요. 제가 흉보는 것은 어르신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좀 더 행복하게 사시는 길이기도 하니까, 오해는 없으셨으면 해요. 하하하."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물으니 역시 죽음 부분. 직접 겪은 사별의 고통과 슬픔을 되짚어보는 일도 무척 힘들었지만, 죽음준비학교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아픔까지 떠안아 그것을 풀어내다 보니 그 부분을 쓰는 시기에는 늘 가슴이 먹먹했다며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나이들수록 더 나은 사람 되고 싶어

책을 쓸 때는 어렵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다면서도 유경 기자는 다음에는 어떤 책을 쓸 것인지 벌써부터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죽음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요. 죽음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 내가 겪은 죽음은 어떤 것이 있나, 그리고 내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 정리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죽음'을 보내고 노년에 대한 새로운 분야를 열어나가야죠."

스물넷의 꽃다운 조카를 잃고 난 뒤 상실의 아픔을 겪어내면서 죽음을 호되게 경험했기 때문에 유경 기자는 더더욱 죽음을 이야기해야만 '죽음'을 떠나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픔을 겪어내고 마음속으로 끌어안은 과정을 유경 기자는 <인생노트>에서 담담하면서 감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중학생인 두 딸의 '어미'이기도 한 유경 기자는 "아이를 낳기 전보다는 낳은 뒤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이가 들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아이들에게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광애씨와 유경 기자가 앞으로 '죽음'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노년전문가들은 아무래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톨스토이 인생노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최종옥 옮김,
책이있는마을, 2019


#인생노트 #유경 #고광애 #노년상담가 #죽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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