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니랑 같이 잘래요

<시 하나에 삶 하나> 어버이날에 부치는 마음

등록 2007.05.08 15:34수정 2007.05.09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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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하얀 병실 위에
어머니가 누워 있습니다.
링거 줄줄이 손등에 달고
가슴엔 차가운 거즈를 대고
형광 불빛보다 하얗게 누워
힘없이 눈을 감고 있습니다.
평생 땅벌처럼 흙과 입맞춤하며
가파르게 살아왔던 당신
어느 새 링거줄이 생명줄 되어
작은 새처럼 누워있습니다.


거칠어 갈라진 손
가만히 대어보니
어머니가 코를 곱니다.
오늘은 저 코고는 소리가
어릴 때 내게 불러주던
정겨운 자장가 같아
눈물이 납니다.
언제까지 저 코고는 소리
들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저 따스한 손길
만질 수 있을까

평생 자식, 자식만 생각하며
당신 몸 돌보기를 돌같이 하더니
한숨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밤새 뒤척이며 끙끙대더니
깃털보다 가벼운 몸을 하고
시든 야생초마냥 누워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가…


병실에 앉아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바라봅니다. 주사를 맞으며 잠이 든 탓인지 조금은 편안해 보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잡아봤습니다. 참 따뜻합니다. 그 따뜻한 손을 잡고 있으려니 울컥하는 게 밀려옵니다. 가엾은 어머니.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가엾다는 속말이 마음 언저리를 파고듭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한숨도 못 잤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것 같은 망상들이 제 머리 속을 떠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 어머니도 아픔에 신음소릴 내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 아픔 속에서도 어머닌 '내가 어서 죽어야 자식들이 편안할 텐데'를 중얼거렸습니다. 그 소릴 할 때마다 '제발 그런 소린 그만 하세요' 해도 당신의 입에선 멈추지 않습니다.

솔직히 자식으로서 그런 소릴 들을 때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아니, 때론 짜증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건 어머니의 약한 모습이 보기 싫어서인지 모릅니다. 언제나 강하게 자식들을 거두었던 어머니인데 병이 들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어머닌 어린 아이가 되어 갔습니다.


어머닌 이번이 세 번째 병원 입원입니다. 8년 전 교통사고로 6개월 정도 입원한 뒤로 어머닌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늘 호미 들고 들로만 나다니시던 어머니의 병원 생활은 온 몸의 세포와 장기를 마비시켰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급격히 쓰러질 정도로 약해졌습니다.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어머닌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자신의 소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눈물인 줄 알면서도 자식들은 모른 척했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닌 딸이 없음을 한탄하곤 했습니다.

두 번째 입원은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서입니다. 쌀쌀한 바람이 이는 겨울, 마을 회관에 다녀오시다가 찬바람을 맞으신 어머닌 뇌경색으로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하던 어머니에게 두 번째 병원생활은 삶의 낙담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삶의 생기를 잃게 했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에겐 모든 걸 해주고 싶어 틈만 나면 텃밭을 일구며 갈 때마다 손수 캐고 다듬어 갖은 채소를 바리바리 싸주시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곱던 얼굴에 마른 검버섯이 삶의 생채기처럼 나있습니다. 환자복을 들치고 가슴에 붙어 있는 거즈에 만져보았습니다. 말라 있습니다. 그곳에 약을 뿌려주고 있는데 어머니가 슬며시 눈을 뜹니다.

"아직 안 갔냐. 여기서 자면 고단하니 집에 가서 자거라. 나 걸을 수 있으니 어여 가."
"알았어요. 알았으니 어서 주무세요."

잠이 안 온다며 힘없이 웃으시던 어머니가 어느 결에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곱니다. 그 코고는 소릴 한참 그렇게 듣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어머니의 코고는 소리는 시끄러운 소리였을 뿐인데 병원에서 듣는 소린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위안을 주고 안심을 주는 소리입니다. 코고는 소리가 그렇게 정겹게, 반갑게 들릴 줄을 몰랐습니다. 그 코고는 소릴 들으며 또 망령된 생각이 그림자처럼 달려듭니다. '저 소릴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참 나쁜 자식입니다.

잠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렇게 한참을 있는데 어머니가 손을 움직이더니 내 손을 잡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안 갔냐?" 하십니다. 그리곤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저 오늘 어머니랑 같이 잘래요. 예전에도 그랬잖아요.'
#어버이날 #병원 #검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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