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촬영 도와달라고 할 땐 언제고...

방송 출연 '가문의 영광'인 서민들, 일방적인 일정 변경에 상처받는다

등록 2007.05.09 13:34수정 2007.05.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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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사는 이야기'를 주로 쓰다 보니, 내 기사를 통해 방송 섭외가 꽤 들어오는 편이다.

실제로 내가 쓴 기사를 통해서 방송사 여러 군데에 출연하느라 바빴던 이석수 대표(관련기사 기사 참조) 같은 사람도 있었다. 최근에도 이런저런 기사 때문에 방송국에서 연락을 받곤 했다. 최근에는 '개그우먼 뺨치는 100년짜리 할머니의 개그'라는 기사를 통해 방송사 두 군데에서 연락을 받았다.

기사 때문에 방송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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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뺨치는 100년짜리 할머니의 개그'라는 기사에 나간 두 주인공 할머니. 오른쪽이 이복례(98세)할머니이고 왼쪽이 딸 조봉희(76세) 할머니다. ⓒ 송상호

이복례 할머니의 촬영 협조를 요구한다면서 두 군데서 전화를 받았지만, 결국 실제로 촬영을 결정하고 진행한 것은 한 군데였다.

방송사에서 초기 촬영도 하고, 동태 파악도 하기 위해 촬영 첫날(6일) 저녁에 오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기자님. 딸 조봉희 할머니가 몸이 안 좋으셔서 그런지 촬영하기를 거부하세요. 어제까지는 된다고 하셨는데. 좀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예. 그래요. 그럼 제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죠."
"그럼 우리 담당 피디가 할머니 댁에 갈 때 기자님 부인과 함께 동행을 좀 해주시죠."
"그거 어려운 부탁 아니네요. 그러죠 뭐."
"그런데 시간이 조금 늦어질지도 몰라서. 밤9시 정도가 될 거 같은데요."
"상관없어요. 할머니 두 분이 문제지 저야 뭐."


이렇게 약속을 하고 몇 시간을 집에서 전화 오기를 기다렸다가 촬영팀의 전화를 받고 약속 장소로 가게 되었다. 나와 아내가 탄 차의 인도로 할머니 댁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도착해서 두 분 할머니 댁 방문을 열고 보니 벌어진 광경이 가관이 아니었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우리 딸이 이틀째 이러고 있다니께."


딸 조봉희 할머니가 급체를 하신 것이다. 나는 얼른 바늘을 찾아서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 모두를 피를 통하도록 따 드렸다. 그렇게 하고 나니 할머니가 조금 정신을 차리고 기운이 돌아왔다.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등을 두드려 드리니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아온다.

실은 기사 때문에 두 분 할머니에게 방송사에서 계속 전화가 오니까 신경이 쓰여서 조봉희 할머니가 급체를 하신 것이다.(기사를 낸 사람으로서 두 분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그래서 촬영을 오겠다는 방송관계자들에게 몸이 안 좋으니 오지 말라고 한 것이다.

덕분에 내가 동행하여 할머니도 소생을 하시고 예정대로 초기 촬영이 진행되었다. 나름대로 분위기는 참 좋았다. 98세가 된 이옥례 할머니는 평소 개그 입담 실력대로 말씀을 많이 하시면서 방송 촬영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셨다.

그렇게 밤 11시 넘어 까지 촬영과 대화를 하고서 첫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좋았다. 다행히 조봉희 할머니에게도 촬영을 계속 하라는 허락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문제는 다음날(7일)이었다. 방송국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집에 방문하여 돌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내에게 동반 촬영을 요구해왔고, 아내는 재가케어팀과 의논하여 간병 방문계획을 조정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약속했던 시간이 지났는데 방송팀에서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저기 오늘 방송 촬영하기로 했는데 아직 안 오셔서 전화 드렸어요."
"예……, 그게 저…… 촬영을 안 하기로 결정이 나서요."
"그런데 왜 연락을 안 주셨어요?"
"그게……, 저 연락을 드리려다가 바빠서… 그만…."
"그런데 갑자기 왜 촬영이 취소가 되었는지?"
"그건 두 분 할머니가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 우리가 계획한 이벤트를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서요. 그래서 다른 팀이 다른 곳에 가서 촬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건 좋은데요. 왜 결정되고 바로 연락을 안 주신 건가요?"


이렇게 시작된 전화 통화는 10분 정도 이어졌다. 어제는 몸이 안 좋아 오지 말라던 조봉희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를 대동하고라도 촬영을 강행하던 그들이 갑자기 다음날 아침에 계획을 바꿔 촬영을 안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계획이 변경되면 아침에라도 일찍 전화를 줬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 아내가 다니는 안성의료생협 재가 케어팀 전체가 아침에 긴급회의를 거쳐 계획을 조정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몸이 불편하면서도 촬영에 협조하시던 두 분 할머니에겐 그나저나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했다.

다음에 이러지 말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뒷수습에 나선 것은 나였다. 기사를 쓴 죄(?)로 책임을 진 것이다. 아내의 직장 동료들에게 사과를 전하고, 할머니 두 분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했다. 다행히 그렇게 뒷수습은 되었지만, 씁쓸한 입맛은 가시지 않았다.

이런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소위 방송 3사 관계자들의 방송 섭외를 받아보면서 몇 번이나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때마다 방송관계자들은 계획이 변경되면 미리 전화해주지 않았다.

하도 답답해서 내가 먼저 전화를 하면 그제야 계획이 변경되었다고 일러준 경험이 네 번 정도 있었다. 심하게는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주변에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아는 이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그렇게 한 번 농락(?) 당하고 나면 속상함도 배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속상함은 둘째 치고 그 촬영을 위해서 약속과 일을 제쳐 두고 기다리면서 손해 아닌 손해를 본 것은 또 어쩌란 말인가.

방송관계자들 나름대로 사정은 있겠지만, 이런 점을 간과한다면 오히려 방송사 자신에게도 악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두 가지 정도를 제안하고자 한다. 방송관계자들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이런 점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첫째는 방송사로부터 이런 일을 당하여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엔 보상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보상이란 꼭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해당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둘째는 하루에도 수많은 섭외와 촬영이 이루어지는 방송사 내부에서 이런 일이 최소화되도록 자체 교육 및 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냥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문서화하고 시스템화 되길 기대해 본다.

방송의 긍정적인 기능이 더 빛을 내려면 위와 같은 일을 제도적으로 보완, 검토되어야 하지 않을까.
#방송사 #이복례 #할머니 #10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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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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