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살아있는 글의 힘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펴낸 안건모의 삶과 책

등록 2007.05.09 19:21수정 2007.05.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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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저자 안건모씨는 20년간 버스운전을 해온 버스기사이다. 그는 자신을 어둠에서 이끌어 낸 것은 책이며, 그 책을 스스럼없이 <쿠바혁명과 카스트로>를 꼽는다.

'쿠바' 하면 공산주의 국가, 카스트로 하면 '독재자'란 인식밖에 없었던 그가 만화책으로 엮어진 <쿠바혁명과 카스트로> 첫 장에 쓰인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 쿠바의 민중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바친다"라는 글귀 하나로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갖게 된다.


그 후로 그는 세상을 뒤집어 볼 수 있는 책들만 골라 읽으며 수십 년 편향된 시각을 바꾸어 나간다.

그의 그간의 행적을 알기에 무조건 그를 찾아가 강의를 듣고 싶다고 떼거지를 썼고, 그 자리에서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사 가지고 왔다.

맞춤법조차 모르던 그가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신념을 지닌 이오덕 선생을 만나면서 글쓰기를 시작하고, 조금씩 삶의 터전에서 변화를 이끌어 낸다.

그는 마침내 1985년부터 2004년까지 근 20년 일하던 버스 운전을 끝내고, <작은책>이라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책 발행인 겸 편집자가 되었다. 이오덕 선생의 신념대로 글쓰기를 통해 일터와 세상을 바꾸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는 2006년 연재했던 글을 모아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라는 책을 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버스기사의 눈으로 본 세상과 일터의 풍경이다.


버스기사로 보고 느낀 동떨어진 법과 억지단속, 기사가 아닌 손님이 돼 깨닫는 손님의 마음 등을 쓴 제1장 '시내버스, 알고나 탑시다'. 단골손님부터 괴상한 버릇을 가진 괴짜 손님까지 승객의 모습을 카메라처럼 담은, 제2장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들'.

이제는 낯선 단어가 돼버린 삥땅 전쟁과 감시카메라 설치, 관리자들과 동료, 마지막 운전 등 치열한 일터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제3장 '삶이란 싸움이다'. 마지막으로 개인 삶을 기록한 제4장 '시내버스를 정년까지' 총 4장까지 300쪽이 넘는 책이지만 잡은 순간 쉽게 놓지 못할 만큼 흡인력이 있다.


사실 안건모가 주장하는 '생활 글'은 여느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활 글'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그는 진실과 이 사회 부조리를 다른 이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자기주장과 사상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하면서 솔직하고 꾸밈없이 자기만의 목소리로 쓰는 글을 '생활 글'로 정의한다.

전에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인터뷰이가 내가 끼적인 글을 보고 '말과 글의 간극이 짧은 글'이라는 평을 한 적이 있다. 위의 말은 안건모식 '생활 글'의 정의와 걸맞다.

그는 이오덕 선생과 <작은책>을 만난 이후, 그 자신이 그런 글쓰기를 계속해 왔다. 글을 읽으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맞아 맞아 정말 그래'를 연발하며 통쾌하게 책 마지막 장을 덮었지만 어쩌면 앞으로는 선뜻 글을 쓰기가 두려워질 것이다.

'울림'과 '떨림', 그리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글'이 살아있는 글이라면 안건모의 글은 확실히 살아있다.

단숨에 책을 읽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솔직히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앞선다. 혹시 지금까지 거짓 글을 쓰며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을 속이고 그들의 가슴에 답답함을 더해 주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그의 글은 글마다 가시와 뼈가 있지만 그 뼈와 가시가 오랫동안 목에 걸렸던 다른 가시를 시원하게 빼내어 주니 책을 읽은 보람과 효과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나이 마흔 무렵에 '열심히 일만 하는 근로자'에서 '이 세상 주인 노동자'로 삶을 바꾸었다는 58년 개띠 남자 삶의 궤적을 아마도 나는 오래도록 지켜보게 될 것이다.

저자 안건모는

안건모는 1958년 개띠로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생활, 검정고시를 거쳐 들어간 한양공고 2년을 중퇴한 후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했다. 1985년부터 2004년까지 20년 동안 시내버스와 좌석 버스를 운전했다.

1997년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라는 글로 제7회 전태일 문학상 생활 글 부문에서 우수상을 탄후, 버스 운전을 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한겨레>와 <작은책>에 연재하며 세상의 변화를 위한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2004년 20년간 일터 삼았던 버스 운전기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작은책> 발행인 겸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2006년 연재 글을 모아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냈다.

덧붙이는 글 | 거꾸로 가는 시내 버스/안건모 씀/보리/8,500원

덧붙이는 글 거꾸로 가는 시내 버스/안건모 씀/보리/8,500원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보리, 2006


#안건모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보리 #운전기사 #생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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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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