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화장품 냄새· 자동차 매연 싫어해요"

청정섬 완도 난대림 수목원, 호수와 꽃이 만든 천연 숲

등록 2007.05.09 20:39수정 2007.05.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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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대교를 건넌 뒤 우회전해서 서부도로로 접어든다. 길가에는 여전히 유채꽃이 피어 있다. 가는 데마다 훌쭉 큰 키에 노란 꽃망울을 달고 간들간들 인사를 하며 반긴다.

대문리 저수지에서 바라본 수목원
대문리 저수지에서 바라본 수목원이현숙
우리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완도수목원. 완도수목원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서 들길을 달리니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큰 저수지가 나온다. 수목원 주소가 완도군 군외면 대문리여서 그런지 이 저수지는 대문리 저수지란다. 아스라이 보이는 저수지 끝으로 시설물들이 조그맣게 눈에 들어온다. 물을 보니 눈이 시원해진다.


완도 수목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난대수목원이고 면적은 2050ha다. 난대지방을 대표하는 동백나무를 비롯,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 조경 및 식·약용가치가 높은 상록활엽수 자생수림만도 200여ha에 이르는 천연의 산림군락이다.

규모면에서는 우리나라 세 번째라지만 경치면에서는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싶은, 대단히 수려한 풍광이다. 비탈길을 올라 온실 앞에 차를 세운다. 식물원 마당에는 몇몇 분들이 모자를 쓰고 땀을 닦으며 정원을 가꾸고 있다. 잠시 서서 수고하는 분들을 바라보고 그분들이 흘린 땀을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잘 가꾸어진 온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관리하는 분이 있다. 계단 위 높은 곳에서 식물에게 물을 주고 있다. 그런데 식물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식물들이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화장품 냄새나 자동차 매연을 싫어한다고 한다.

온실 앞 수생식물원.
온실 앞 수생식물원.이현숙

이 작은 생명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 수 있을까?
이 작은 생명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 수 있을까?이현숙
열대식물원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바로 수생식물원이다. 수생식물원은 데크가 마련돼 있어 가까이에서 식물을 관찰하게 되어 있고 길옆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휴식공간도 있다.

수생식물원을 보고 돌아서는데 새 한 마리가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빤히 들고 나를 바라본다. 이상하다. 바짝 다가가 보니 풀쩍 난다. 움직임이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왜 그럴까? 다시 다가가는데 또 한 번 풀쩍 난다. 제 깐에는 나를 피해 죽을 힘을 다해 나는 것 같은데 날아 봐야 겨우 내 앞이다.


어쩌지. 새가 안쓰러워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디가 아프니? 난 너를 해치지 않아'라고 말을 해보지만 새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느낌.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지만 그도 역시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 새를 구해줄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온실로 다시 들어와 일하고 있는 남자 분한테 말해보지만, '그래요'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아 하는 답변만 돌아온다. 그깟 새 한 마리 고통 쯤 아무 것도 아니란 반응. 나로서도 속수무책 손을 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지금도 그 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어떻게 해야 그 작은 새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었는지, 여전히 답은 얻지 못했다.


"여러분 예쁘게 웃으세요" 독특한 남도의 인심

수목원 온실과 밖의 풍경. 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제 1전망대, 그 옆과 아래는 전망대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
수목원 온실과 밖의 풍경. 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제 1전망대, 그 옆과 아래는 전망대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이현숙
관람객이 없어 그런지 자동차로 이동을 해도 막지 않는다. 산으로 더 거슬러 올라 제1전망대에 오른다. 제일 아래 수변공원과 산을 헤치고 난 작은 도로들이 구불구불 허옇게 드러난다. 전망대 위에도, 앞에도, 뒤에도 모두 난대림으로 우거진 산이다. 몇몇 시설물들을 제외하면 그냥 자연림처럼 보이는 게 천연의 산림군락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교육관리동 앞에 차를 세우고 수변데크 쪽으로 걷는다. 저수지라기보다 호수 같은 느낌이고 물도 맑아서 물위를 걷는 느낌이다. 봄철이라 어딜 가나 조무래기들의 소풍행렬과 마주친다. 여기서도 역시 카메라를 들면 인솔하던 선생님은 '여러분 예쁘게 웃으세요'하면서 아이들이 멋진 포즈를 취하도록 유도해준다. 참 이런 게 다 남도의 인심인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수변데크... 여기를 걸으니 신선이 된 느낌이었다
수변데크... 여기를 걸으니 신선이 된 느낌이었다이현숙

소풍 온 아이들. 해맑은 표정이 꽃보다 아름답다
소풍 온 아이들. 해맑은 표정이 꽃보다 아름답다이현숙
데크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야외무대다. 숲 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도 꽤 큰 마당이 있고 정자가 있고 숲이 있다. 정자에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 저희끼리 속닥거리며 놀고 있다. 숲보다 꽃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다. 몇 살이냐니까, 모두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인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 여기서 난 왜 소풍 가서 잃어버렸다며 TV에 사진이 나오던 그 아이가 생각났는지, 마음속으로 그래 잘 놀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라고 기원하면서 천천히 숲길을 걸어 내려왔다.

수목원에서 나와 서부도로를 달리니 청해포구가 나온다. 해신촬영 세트장이다. 신라시대에 살아보지 않아 그때와 똑같은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며 골목길도 걸어보고 바닷가도 걸어본다.

해신 촬영셋트장 전경. 의도하지 않았지만 방파제의 술취한 아주머니들이 찍혔다
해신 촬영셋트장 전경. 의도하지 않았지만 방파제의 술취한 아주머니들이 찍혔다이현숙

난파선 같기도 하고 해적선 같기도 한, 그래서 멋있는 배.
난파선 같기도 하고 해적선 같기도 한, 그래서 멋있는 배.이현숙
방파제로 걸어나가 먼 바다도 바라본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세 아주머니가 거기, 방파제에 있다. 한 분은 아예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한 분은 인사불성 상태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고, 한 분은 앉아서 바닥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빨리 119를 부르라고. 단체여행객인 것 같은데 만취한 상태다. 일행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척도 안 한다.

여기서 이렇게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
여기서 이렇게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이현숙
우리의 문화가 한의 문화라나? 그래서 여행이라도 떠나면 한을 풀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면서 푼다나. 나 같으면 오히려 한이 쌓일 것 같은데. 각자 취향이라지만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고성방가니까 다른 사람들을 시끄럽게 하는 게 되고 또 같은 일행들을 귀찮게 할 게 뻔하니까.

화흥포항으로 가는길, 우리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익숙한 풍경을 만났다. 넓은 목초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누렁 소다. 그것도 각각 떨어져 있는 두 마리, 아니 한 마리는 누워 있는데 옆구리에 송아지도 같이 누워 있다. 차를 세우고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 사진을 찍는다. 예전에는 정말 흔하디 흔한 풍경이었는데.

넓은 목초지에 누렁소가(옆에 송아지와 같이 누운소는 이어 붙임)
넓은 목초지에 누렁소가(옆에 송아지와 같이 누운소는 이어 붙임)이현숙
화흥포항에서는 보길도로 가는 배가 떠난다. 그러나 해남에서 가는 게 더 짧고 편리해 다음 일정으로 미루었다. 마침 배가 떠나고 있다. 부두에서 멀어지는 배를 바라보다 점심이나 먹자며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화흥포항 휴게소 겸 식당이다. 우리가 시킨 메뉴는 백반. 동태찌게와 나물 몇 가지가 나왔다. 값은 둘이 만원인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맛있었다. 불현듯 어제 먹은 6만원짜리 저녁이 생각나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다시는 비싼 것 먹지 말아야지.'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면서 충전을 위한 짧은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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