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문집
커피도 일종의 기호품이어서, 자신이 즐기는 브랜드에 대한 중독성이 강한 식품이다. 그래서 평소에 즐기는 종류 말고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법이다. 나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에는 언제나 '클래식 네스카페'였다.
그런데 듣도 보지도 못한 브랜드의 커피를, 그것도 시중의 다른 커피들보다 30~40% 정도 더 비싼 가격의 커피를 사왔으니 어찌된 일인가.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적당히 섞은 달짝지근한 인스턴트 커피 맛에 길이 들어있는 내 입맛에 변화라도 생겼던 말인가.
내 입맛이 변한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이 변한 것이다. 식사 후에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마셔왔던 커피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뀐 것이다.
내가 그동안 마셔왔던 커피에는 가난한 커피재배 농부들이 흘린 피땀이 녹아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농부들에게 제 값을 치르지 않고 헐값을 지불해 온 나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뒤늦은 깨달음과 부끄러움은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왔다. 멕시코의 가난한 커피재배 농부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한 신부와 그들이 재배한 커피를 세계시장에 제 값을 받고 팔기 위하여 '공정 거래'를 개발한 한 시민운동가가 함께 쓴 <희망을 거래한다>가 바로 그 책이다.
원조나 동정이 아니라 제 값을 지불하는 공정한 거래야말로, 제3세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멍에처럼 짊어지고 있는 가난을 덜고 개선하는 길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 이 책의 주장이 내 양심을 깊이 설득했던 것이다.
그들은 거지가 아니다, 동정이 아니라 공정이 필요하다
<희망을 거래한다>는, 부자와 빈자로 양극화되어가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우리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원조가 아니라 공정한 거래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킨다.
이것은 이 책의 지은이 프란스 판 데어 호프와 니코 로전이 1985년에 처음 만나서 논의하고 추진하고 마침내 결실을 본 막스 하벌라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막스 하벌라르 프로젝트의 기저에는 '우리들은 당신들의 선물이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거지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공정한 가격으로 지불해 준다면 우리는 원조 없이 홀로 설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인디언 커피재배 농부들의 말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신학적 측면이나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커피재배 농부들의 주장은 내가 할 일의 핵심이었다. (38쪽)"
제3세계 농부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싼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는 다국적 기업체들의 커피와는 달리 막스 하벌라르 커피는 생산자에게 보다 공정한 가격, 즉 제값을 지불하려는 기획이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프란스 신부는 멕시코의 가난한 커피재배 농부들을 조직화하여 커피협동조합을 설립함으로써, 그동안 농부들과 커피 거래회사 사이에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던 중간상인을 배제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네덜란드에서는, 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일하고 있던 니코가 미온적이고 때로는 악의적이까지도 한 커피 제조사들과 슈퍼마켓 체인점들과 수없이 접촉한 끝에 막스 하벌라르 재단을 설립하여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시장에 진출하는 데 마침내 성공한다. 프란스 신부와 만나 막스 하벌라르 프로젝트를 처음 논의하고 난 지 3년 반만의 일이었다.
공정거래, 인간 뿐 아니라 지구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