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현장학습이 불법된 까닭

한 초등학교의 민주주의 현장학습 참가 논란

등록 2007.05.10 13:52수정 2007.05.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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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초등학교 5학년 2반 아이들은 지난달 1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민주주의 현장체험학습'에 다녀왔다. 이들은 국회의사당-서울광장-이한열기념관-경찰청 인권보호센터 등을 직접 방문해 체험을 통해 근현대사를 배웠다.

E초등학교 5학년 2반 아이들은 지난달 1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민주주의 현장체험학습'에 다녀왔다. 이들은 국회의사당-서울광장-이한열기념관-경찰청 인권보호센터 등을 직접 방문해 체험을 통해 근현대사를 배웠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 지난달 18일 오전 9시께.
E초등학교(경기도 안산) 5학년 2반 아이들은 '민주주의 현장학습'을 위해 학교를 빠져나갔다. 날씨도 좋고, 한 학급만 나가는 야외 활동이라 34명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첫 번째 행선지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들을 봤다. 동행한 자원봉사자가 국회에 대해 설명했지만 아직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도 배우지 않은 아이들은 중년 아저씨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행선지인 이한열기념관(마포구 노고산동)은 달랐다. 한 아이는 "머리에 최루탄을 맞은 대학생의 사진이 인상깊었다"며 "민주주의가 뭔지 알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또다른 아이는 "반 아이들을 두 조로 나눠 퀴즈도 풀고, 기억에 남는 행사가 많았다"고 만족해했다.

#2. 같은 날 오후 4시께
현장학습에 동행한 담임교사 이정선씨와 학부모 차모씨는 1층 교장실에서 교장에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김모 교장은 차씨에게 "오늘 현장학습은 불법이고, (차씨가 전체 학부모에 돌린) 민주주의 현장학습에 대한 안내장도 잘못"이라고 몰아세웠다. 연가를 내고 동행한 담임교사는 지난달 25일 학교장으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도 공문 발송해 참여 권장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민주주의 현장학습'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아이들은 "교실이 아닌 현장에서 사회를 공부할 수 있었다"며 높이 평가하는 반면, 이들을 인솔한 교사와 학부모는 학교측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다.

학교측은 반 전체가 참여하는 현장학습에 대해 학교장 결재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불법'으로 규정하고, 해당 학급 담임교사에 경고 조치를 하자 학교측의 '과잉반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초등학교 5학년 2반 아이들은 지난달 1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회장 함세웅)가 주최하는 민주주의 현장체험학습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하루동안 민주화운동 현장과 국회의사당 등을 방문해 현대사와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으로, 초등학교 5∼6년생을 대상으로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무료로 교통편과 자원봉사자를 지원한다.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장에 공문을 발송해 참여를 권장하기도 했다.


학교 측 "교장 승인 없는 체험학습은 불법"

하지만 5학년 2반 아이들의 현장학습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출발 당일 아이들이 버스를 타려고 하자 정모 교감이 출발을 막아섰다. 그는 "교실로 돌아가라, 오늘 현장학습은 없다"며 "교육청에 고발하겠다"고 아이들을 다그쳤다. 동행한 학부모 차씨에게도 "형사고발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들 사이에서 "그럼 결석 처리하세요"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 교감은 차씨의 이름과 연락처를 물은 뒤 사라졌다. 출발 이후인 오전 10시께 교감은 차씨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학습이 끝나면 학교 교장실로 오라"고 통보했다.

현장이 있었던 최아무개군은 "교감 선생님이 조금 무서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차씨는 "학부모에게 '불법' '형사고발'을 운운해 당황했다"며 "학부모 전원이 동의한 현장학습이라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장학습이 끝난 오후 4시께 차씨와 담임교사 이씨는 교장실을 찾았다. 이들은 "아무 사고 없이 잘 돌아왔다"는 보고와 함께 이날 오전 교감의 언행에 대해 학교측의 사과를 듣고자 했다.

하지만 교장은 완강했다. 그는 차씨에게 "교장의 사전 동의없이 현장학습을 간 것은 잘못"이라며 "체험학습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은 좋지만, 아이들을 직접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고 다그쳤다. 차씨는 "사전에 학부모 동의를 다 받았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맞섰지만 교장은 "무조건 잘못했다"고 몰아 부쳤다.

교장은 담임교사 이씨에 대해서도 "연가를 낸 것은 잘못"이라며 "연가는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면담은 한시간 동안 진행됐다.

교사 "절차상 유연하지 못했지만, 사실상 허가받아"

a E초등학교 전경.

E초등학교 전경. ⓒ 오마이뉴스 이민정

학교가 문제삼은 부분은 현장학습 관련 절차. 초등학교 현장학습은 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학교 현장학습'과 '학부모 동반 체험학습(연중 7일)'으로 나뉘는데, 이번 현장학습은 두 종류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 학급만 참여한데다, 동행한 차씨가 '학부모 대표'로 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학교장의 사전 동의가 없었던 점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점 ▲현장을 사전에 답사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무단 불법체험학습'으로 규정했다. 또한 "학교장의 불허에도 연가를 신청해 불법으로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했다"며 초·중등교육법, 국가공무원법 등을 근거로 지난달 25일 담임교사 이씨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이씨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절차상 유연하게 처리하지 못한 점은 있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씨에 따르면, 지난달 4일 현장학습에 대한 허가를 얻기 위해 교장실을 찾았지만, 당시 김 교장은 "한 학급만 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씨는 "학부모들이 개별적으로 신청하면 가능하냐"고 물었고, 교장은 "학부모들이 자기 책임하에 가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사실상 허가했다는 것.

현장체험 당일인 18일 시간표 또한 실과·체육·담임 재량시간 등 4교시뿐이라 수업일수에도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씨는 현장체험을 권유했던 학부모 차씨에게 전화해 전체 학부모들에게 안내장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차씨는 참가 여부를 묻는 안내장을 만들어 학부모에게 보냈다. 결과는 34명 전원 참석. 이씨는 연가(1년에 21일) 중 하루를 신청해 동행하기로 했다.

이씨는 현장체험 신청서와 학부모들의 동의서를 현장체험을 총괄하는 교사에게 전달했다. 교감과 교장의 결재를 받기 전이었다. 이씨는 "학부모 전원이 동의한 사안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장체험 전날인 17일 교장·교감을 찾아갔지만, 교장은 학교운영위원회와 회의를 하고 있었고, 교감 선생님은 출장 중이었기 때문에 직접 결재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학부모 전원 동의... "현장학습은 담임 재량권 인정해야"

교사 경력 15년째인 이씨는 "학년 전체가 가는 경우, 규모가 크다 보니 방문 장소나 내용이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며 "현장체험 학습은 담임교사의 재량권을 인정해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차씨는 "학년 전체가 다 같이 가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놀이동산에 가는 등 해마다 비슷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차씨는 애초 민주주의 현장학습을 자녀와 단 둘이 가고자 했지만 학급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라 담임교사 이씨에게 권유했다.

그는 "학교측이 사고위험 등을 들어 학급별 현장학습을 반대하지만, 학년 전체가 가도 사고는 생길 수 있다"며 "여행자보험은 어떤 경우든 적용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주최 측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또한 이번 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육사업팀의 한 담당자는 "E초등학교 일을 듣고 황당했다"며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학생들을 잘 보내는데, 왜 굳이 반대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이에 대해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정 교감은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취재를 거부하겠다, 대답할 것이 없다"면서 일체 언급을 피했다. 김 교장 또한 "교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면서 일체 답변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교육 #현장학습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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