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히틀러의 출현, 괜한 걱정일까?

등록 2007.05.11 11:31수정 2007.05.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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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독일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 중 하나는 ‘일본은 과거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데 반해, 독일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반성을 하지 않고 독일은 반성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 독일은 반성을 하는데 일본은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두 나라 국민의 기질과 심성이 다르기 때문일까?

과거 범죄에 대해 두 나라가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두 나라에 대한 전후처리가 각기 달랐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잘 알고 있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은 독일과 일본에 대해 각각 다른 태도를 취했다. 독일은 죄인으로 다루었지만, 일본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일이라서 해서 자신의 잘못을 항상 인정하란 법이 없고, 일본이라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항상 부정하란 법은 없다. 이것은 결코 국민성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독일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압력이 가해진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그 같은 절실한 압력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이 세상에, 경찰이 체포해 가지 않는데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면서 스스로 교도소에 들어갈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일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전범 국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예전의 국력을 온전히 회복했을 경우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에게서 사과를 받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런 사과도 하지 않는 나라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사과할 줄 모르는 일본이 향후 어떤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있는가를 살펴보려면,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제대로 반성할 줄 몰랐던 독일’이 궁극적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제2차 대전 후의 독일은 세계 인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제1차 대전 후의 독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1919년에 체결된 전후처리협정인 베르사이유 강화조약이 유럽 열강 간의 적대감을 해소시킬 만한 근본적인 장치를 만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범국 독일에 대해서 확실한 응징을 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전범국 일본을 확실히 응징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베르사이유 강화조약도 독일에 대해 그런 태도를 취하고 말았다. 그래서 제1차 대전 후의 독일 국민들은 제2차 대전 후의 일본 우익들과 유사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제1차 대전 후에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나타난 뚜렷한 경향은 자신들의 패전을 ‘화끈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전승국들이 독일 앞에서 전승국답게 행동하지 못한 것이 일차적인 원인일 것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독일 국민들이 자국 영토 안에서 전쟁을 목격한 적이 없다는 점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제1차 대전 당시 전쟁은 독일 외부에서만 벌어졌다. 독일 국민들은 자국 군대가 적국 군대에게 밀리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 국민들은 ‘우리 군대는 잘 싸웠는데, 내부의 적들 때문에 패전했다’며 원통한 심정을 갖게 되었다. 그 내부의 적이라는 것은 자유주의자·사회주의자·유태인과 같은 반전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굴욕적’인 베르사이유 조약은 언젠가는 폐지되어야 하며, 제1차 대전 때의 치욕을 훗날 반드시 설욕해야 한다는 인식을 품고 있었다. 이처럼 당시의 독일인들은 전쟁 도발을 후회한 것이 아니라 ‘잘할 수도 있었는데, 원통하다’는 심정을 갖고 있었다. 반성이 아닌 복수의 정서가 독일인들을 지배했던 것이다.

그런 내면의 인식이 독일인들의 마음속에서만 머문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독일 군대가 비밀리에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대전 종결 직후인 192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패전으로 독일의 병력 수가 10만 명으로 제한되자, 그들은 비상시를 대비하여 ‘사병의 간부화’를 추진하였다. 전쟁이 발생하면 곧바로 병력 수를 신속히 확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독일은 베르사이유 체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소련을 끌어들여 1922년의 라팔로 조약을 통해 우호관계를 형성했다. 다음 전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독일인들이 패전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복수를 꿈꾸는 상황 하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히틀러였다. 히틀러 같은 인물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에 그런 인물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히틀러는 스스로 태어난 게 아니라 독일 국민에 의해 창조된 작품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 국민의 여망에 따라 히틀러는 독일의 복수를 위해 또다시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물론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에 의해 그의 이미지가 한층 더 나빠진 측면도 있지만, 제1차 대전 후의 ‘뻔뻔한 독일’이 히틀러라는 인물을 배출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옆의 이웃나라가 제1차 대전 후의 독일과 유사한 행동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제1차 대전 후의 독일처럼 자신들의 패전과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2차 대전 전승국들을 위협할 만한 세계 정상급의 군대와 경제력까지 이미 보유하고 있다.

제1차 대전 당시의 독일처럼 제2차 대전 당시의 일본도 자국의 영토 안에서 전쟁을 겪지 않았다. 그들이 자국 영토에서 목격한 것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원자폭탄뿐이었다. 오늘날 일본 우익이 패전에 분개하는 이유를 이로부터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후 동아시아의 역사 교과서도 일본 우익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전후 질서에서 한·일 양국 교과서에서는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역할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국주의 일본을 패망으로 몰아놓은 진정한 원동력인 한·중 두 민족의 항일투쟁은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자신들이 한·중 두 민족에게 패배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킬 마음을 품기 힘들겠지만, 한·일 양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한·중 두 민족의 항일투쟁 대신에 미국의 원자폭탄만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 우익들은 ‘원폭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착각은 그들에게 오판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1차 대전의 전승국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제2차 대전의 전승국들도 일본을 죄인처럼 다루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면, 이 관계는 분명 ‘교도관’과 ‘죄수’의 관계라 할 수 없다. 미국은 교도관으로서의 본문을 망각하고 일본을 친구처럼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 것은 일본인들의 기질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런 사과를 하지 않고도 일본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과 관련하여, 우리는 최근 일본 정치에서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전후 일본의 성장을 바탕으로 ‘일본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있다. 도쿄도 지사 선거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일본의 자존심’에 호소하는 우익적 인물들이 계속 득세하고 있다.

제1차 대전 후의 독일과 제2차 대전 후의 일본이 이처럼 유사한 것을 보면서, ‘일본판’ 히틀러의 등장을 우려하는 것은 그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아베 신조는 그나마 양반이었다고 할 정도로, 훨씬 더 강경한 인물이 향후 일본에서 등장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것은 공연한 걱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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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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