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환영회와 군국주의 일본

등록 2007.05.14 08:45수정 2007.05.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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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일전쟁(1904년)을 전후한 군국주의 시대를 다룬 일본 역사서들을 읽으면서, 중학교 때부터 늘 품고 있던 어느 이미지의 배경이 비로소 선명해지게 되었다. 대통령 전두환 환영회에 단골로 동원되던 중학생 시절부터 생긴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필자가 다니던 영등포의 한 중학교는 김포공항-여의도-청와대를 잇는 중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어서, 대통령 전두환이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학교 전체가 가두 환영회에 동원되곤 하였다. 당시 TV 뉴스에 보도되던 ‘열렬한 환영 인파’에는 필자가 다니던 중학교 학생들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전두환이 ‘뜨는 날’에는 교사와 학생 전체가 강서구 등촌동까지 한참 걸어가서 전두환 행렬을 기다렸다. 학교에서 등촌동 대로변까지는 버스로도 몇 십분 가는 거리였지만, 학생들은 처음에는 피곤함을 몰랐다. 왜냐하면, 그런 날에는 오전 혹은 오후 수업이 아예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런 ‘즐거움’이 피곤함을 해소해 주곤 했다.

강서구 대로변의 나무 그늘 아래에 진을 치고 있던 전교생들은 전두환 행렬이 지나가면 일제히 일어서서 국기를 흔들며 환호성을 질러야 했다. 마치 산중에 매복해 있다가 적군이 지나가면 고함을 지르면서 화살을 쏘아대는 것 같았다.

그런 환영회에 여러 번 동원되었는데, 그중 딱 한번 전두환의 실물을 본 적이 있다. 외국에서 돌아오던 전두환이 승용차 밖으로 얼굴을 약간 내밀고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든 것이다. 그날 햇볕이 따사로워서 그런지, 전두환의 인상을 더욱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다. 전두환을 본 학생들은 더욱 더 열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 사이에는 환영회 동원에 대한 불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업이 면제된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환영회에 나갔지만, 그런 일이 자주 되풀이되고 또 더운 날에 먼 거리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불평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강서구까지 힘들게 걸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업 시간에 지혜롭게 조는 편이 더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강서구에 있는 중학교도 나오지 않는데, 왜 영등포에 있는 우리 학교가 꼬박꼬박 동원되어야 하는가?”가 불만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나라에서 표창장을 받은 이후로는 행사 동원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속셈’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간혹 흘러나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교장 선생님의 성명이 대표적 친일파의 이름과 똑같았다.


그 당시에는 ‘교장 선생님이 교육청과 정부에 잘 보이려고 학생들을 대통령 환영회에 동원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성장한 다음에는 ‘권위주의 국가가 그런 식으로 학생들을 동원했다’는 쪽으로 인식이 미치게 되었다. 그런데 근래에 러일전쟁 시기의 일본을 다룬 책들을 읽으면서, 이런 전통이 제국주의 일본에 뿌리를 둔 것이라는 점에 인식이 도달하게 되었다.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일본은 국민통합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그 얼마 전인 메이지 유신(1868년) 이전의 일본은 기본적으로 지역 분권적인 나라였기 때문에 국가의 국민 통합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국민통합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진행되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소학교 학생들에 대한 통합정책이었다. 군국주의 일본은 각종 행사를 매개로 국가와 소학교 학생들 간에 유기체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이런 방법을 통해 군국주의 일본은 국민의 개별적 삶을 국가의 전체적 삶으로 변형시키려 한 것이다.

일본이 어떤 구체적 방식으로 소학교 학생들을 통합하고자 하였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 학계에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시즈오카현(현재의 시즈오카시) 아베군(郡) 오사다촌(村) 소재 오사다미나미 소학교의 1898~1919년 <교무일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이 <교무일지>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소개하기로 한다.

a 오사다미나미 소학교의 홈페이지.

오사다미나미 소학교의 홈페이지. ⓒ 오사다미나미 소학교



<교무일지>에 따르면, 학생들을 통합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로서 해군 기념일(5월 27일), 육군기념일(3월 10일), 운동회, 수학여행 등이 있었다. 이 외에 필자의 관심을 끈 것 중 하나는 일왕(소위 ‘천황’) 환영회라는 동원 행사였다. 전두환 환영회를 연상케 하는 행사다.

오사다미나미 소학교의 학생들이 일왕 환영회에 동원된 이유는 오사다촌의 중앙을 도우카이도센(東海道線)이라는 철도가 통과했기 때문이다. 일왕이나 왕족이 열차를 타고 이곳을 통과할 때마다 교사와 학생들이 반드시 환영회에 동원되곤 했다.

메이지 31년인 1898년부터 다이쇼 7년인 1918년까지 이 소학교 학생들은 총 87회의 환영회에 동원되었다. 이 중에서 국왕 환영회가 26회, 왕세자 환영회가 46회, 왕후 환영회가 8회, 기타 왕족 환영회가 5회, 영국 왕족 환영회가 2회였다.

21년 동안 연평균 4.1회씩 환영회에 동원된 셈이다. 그리고 일왕과 왕세자에 대한 환영회가 도합 72회로 전체의 83%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환영회 동원의 의미에 관한 일본 학자들의 평가는 ‘이 환영회는 애국심 고취, 일왕에 대한 충성심 고취 등을 위한 행사’라는 것이다. 어린 아이 때부터 국민들을 군국주의 일본에 통합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원의 기본 의도는 어릴 적부터 국가의 부름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국가의 동원에 익숙해진 일본인들은 청년이 되어서는 제국주의 군대에 동원되고 또 국민 총력전 정책에 동원되곤 하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가 국민을 좀 더 수월하게 동원하기 위해 소학교 학생들에 대해서까지 치밀한 동원전략을 구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20세기 초반에 국민 전체를 동원하여 ‘대형사고’를 저지를 수 있었던 기본 배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1980년대의 전두환 환영회와 1890년대 이후의 일왕 환영회는 동일한 취지 하에서 어린 학생들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는 일본에 비해 근대 국가의 전통이 뒤늦은 한국의 군부정권이 군국주의 초기의 일본을 모방하여 국민통합을 시도했음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은 그 같은 국민동원의 결과로서 결국 ‘대형사고’를 쳤지만, 전두환 등의 한국 군부정권은 그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과거 한국의 군부정권이 매우 세세한 부면에서까지 군국주의 일본의 것을 모방하면서 국민들을 치밀하게 통합하려 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독도 이슈를 무기로 국민의 반일 애국심을 부추기기도 한 그들은, 실제로는 이와 같이 철저히 일본적인 향취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일본적인 방법으로 국민을 다스리는 게 효율적이라고 인식하면서 일본적 가치관에 푹 빠져 있던 그들이 과연 독도 이슈를 제대로 해결하고 또 친일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었을까? 또 그처럼 국민을 이용하는 기술만 궁리하던 그들이 과연 국민을 내 부모형제처럼 생각할 수 있었을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절이 우리의 ‘추억’이 된 것을 이제는 기뻐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이 비록 ‘불쾌한 추억’일지언정 우리에게는 기뻐할 이유가 있다.

그것이 ‘추억’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현실이라면, 우리의 삶은 불쾌한 추억보다도 더 불쾌한 상태일지 모른다. ‘불쾌한 추억’일지언정 그것이 현실이 아닌 ‘추억’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기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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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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