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가 교훈인 학교, 인사부터 다르다

인성교육에 힘쓰는 김포시 대곶중학교

등록 2007.05.13 08:42수정 2007.05.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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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친애.정성.염치'라는 교훈 아래 무엇보다 인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대곶중학교.

'친애.정성.염치'라는 교훈 아래 무엇보다 인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대곶중학교. ⓒ 김정혜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에 위치한 대곶중학교. 선생님 16명과 학생 280명이 한 가족처럼 생활하는 학교다.

선생님은 부모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듬고, 아이들은 자식 같은 마음으로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대곶중학교 선생님과 아이들. 말 그대로라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교육 현장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결코 빈말이 아님은 학교의 교훈에서도 또 그것에 기인한 선생님과 아이들의 인사 예법 하나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친애. 정성. 염치.'

세 가지가 바로 대곶중학교의 교훈이다. 그 중 '염치'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없다.

염치가 교훈인 대곶중학교

a 인조 잔디가 시원스레 펼쳐진 대곶중학교 운동장.

인조 잔디가 시원스레 펼쳐진 대곶중학교 운동장. ⓒ 김정혜

"요즘 아이들에게 '염치'가 없다고 탓해선 안돼요. 그건 아이들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래요. 오직 공부, 나아가 대학만이 중요하다 보니,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미처 그런 걸 가르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겁니다. 세상은 지식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고 봐요. 그보단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가 지식보다 더 중요한 법이고, 삶의 지혜 중에서도 최소한의 '염치'를 아는 마음이 또한 중요한 것이지요."

염치란 교훈의 필요성에 대해 한영애 교감은 그렇게 설명했다. 이와함께 '아이들은 내 자식이듯, 선생님은 내 부모이듯' 서로 믿고 따르는 진실한 교육을 강조한다. 따지고 보면, 선생님도 선생님이기 이전에 부모라는 것이다. 하여, 선생님들은 부모가 자식 가정 교육시킨다는 마음으로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부모처럼 믿고 따르더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람직한 교육이 아닐까?


'염치'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더불어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알고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염치'로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염치의 부재 시대'에 살고 있다.


기성세대라면 한번쯤 다음과 같이 주절거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예의를 너무 몰라. 요즘 아이들은 어른도 몰라봐. 요즘 아이들은 너무 제 멋대로야"라고.

단적으로 말하긴 곤란하겠지만 그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염치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a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주고 받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주고 받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 김정혜

그러나 대곶중학교 아이들은 다르다. 이들은 염치라는 쉽고도 어려운 인간의 도리를 배운다. 염치라는 큰 틀 아래 대곶중학교에서 추구하는 참 교육은 바로 인성 교육이다. 그중 가장 기본으로 가르치는 것이 인사다. 복도를 지나며 유심히 살펴보니 아이들 인사법이 매우 공손하다.

먼발치에 선생님이 보이는 순간, 하하 호호 수다를 떨던 여학생들이 두 손을 포개 아랫배 부분에 얌전히 붙이고 선생님을 향해 허리를 깊숙하게 구부려 인사한다. 가까이 다가선 선생님도 역시나 같은 모습이다.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과 아이들. 아주 잠깐이지만 선생님도 아이도 더할 수 없이 공손한 몸가짐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한편 아름답기까지 하다.

대곶중학교 아이들의 인사가 이처럼 공손할 수 있는 것은 인사에 대한 근본적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알기 때문이다. 구용(九容)과 구사(九思) 즉, 아홉 가지 몸가짐과 아홉 가지 마음가짐으로 이 아이들은 인사를 한다.

구용(九容)에는 발을 옮길 때는 무겁게(신중하게)해야 하는 족용중(足容重), 손을 쓸데없이 놀리지 말고 두 손을 모아 공수하고 공손한 자세를 취하는 수용공(手容恭), 눈은 단정하고 곱게 떠서 지긋이 정면을 보아야 하는 목용단(目容端), 입은 조용히 다물어야 하는 구용지(口容止), 말소리는 조용하고 나직해서 잡소리를 내지 않아야 하는 성용정(聲容靜), 머리를 곧게 들고 몸을 비틀거나 공연히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두용직(頭容直), 호흡을 조용하게 고르고 전체의 몸가짐을 엄숙하게 하는 기용숙(氣容肅), 서 있는 모습이 그윽하고 덕성이 있어야 하는 입용덕(立容德), 얼굴의 표정은 씩씩하고 명랑하며 발랄해야 한다는 색용장(色容莊). 이상 아홉 가지이다.

다음으로 구사(九思)즉, 아홉 가지의 마음가짐이다. 눈으로 볼 때는 밝게, 바르게, 옳게 보아야 되겠다는 마음가짐인 시사명(視思明), 귀로 들을 때는 무엇이든지 밝게 지혜를 기울여 진정한 것을 들어야 하는 청사총(聽思聰), 표정, 즉 낯빛은 항상 온화하게 가져야 하는 색사온(色思溫), 몸가짐이나 옷차림 등은 공손하게 해야 한다는 모사공(貌思恭), 말을 할 때는 진실되게 해야 한다는 언사충(言思忠), 어른을 섬기는 데는 공경스럽게 해야 한다는 사사경(事思敬),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물어서 깨달아야 한다는 의사문(疑思問), 분하고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참고 삭여야지 그대로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는 분사난(忿思難), 재물이나 명예나 무엇이든 자기에게 보탬이 되는 경우에는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견득사의(見得思義)가 그것이다.


이렇듯 인사 하나에도 전제되어야 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있다. 이를 배운 아이들이니 그들이 하는 인사에 공손함이 절로 묻어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근본적인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공손한 인사를 할 줄 아는 아이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이 아이들은 인간의 기본 도리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 것이며 나아가 염치가 어떤 것인지도 충분히 알 것이다.

인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학교

a 지금까지 대곶중학교를 졸업한 졸업생 하나 하나의 사진이 걸려 있는 역사관 모습.

지금까지 대곶중학교를 졸업한 졸업생 하나 하나의 사진이 걸려 있는 역사관 모습. ⓒ 김정혜

대곶중학교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인성 교육에는 방과 후 특별활동을 꼽을 수 있다.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물놀이와 충효바라반 그리고 시조창반이 그것이다. 이는 굳이 전문 무용이나 국악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취미 활동을 통해 전통문화를 직접 접해 보고, 더불어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인성 교육의 장으로서 톡톡한 한몫을 하고 있다고 선생님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이외에도, 미술반, 컴퓨터반, 한지공예, 리본아트 등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이 있는데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아이들의 참여 태도다. 그 시간만큼은 그리 열정적일 수 없으며 그 열정이 곧 행복이라고 아이들은 말한다. 대학이란 목표에 열정과 꿈을 담보 잡힌 여느 아이들과는 대조적이다.

a 선생님은 부모이듯, 아이들은 자식이듯, 그렇게 서로 보듬고 사랑한다는 권태훈선생님과 대곶중학교 아이들.

선생님은 부모이듯, 아이들은 자식이듯, 그렇게 서로 보듬고 사랑한다는 권태훈선생님과 대곶중학교 아이들. ⓒ 김정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단지, 성적 부진한 아이들을 위한 쉬운 위로의 말일까. 아닐 것이다. 기성세대라면 이 말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 것이다. 뒤집어,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만약 우리의 아이들이 물어 온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해답을 제시해 줘야 할까.

행복한 삶이란,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다운 삶이란 인간의 도리를 망각하지 않는 삶일 것이며, 인간의 도리는 최소한의 '염치'를 아는 것이지 싶다. 그런 면에서 대곶중학교 280명 아이들은 이미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5월 11일에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5월 11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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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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