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탁발순례단을 길에서 맞고 보내다

5월7일, 충북 괴산 감물마을에서 만난 순례단

등록 2007.05.12 15:17수정 2007.05.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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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감물면내를 지나 농장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순례단이 걷고 있습니다. ⓒ 이우성

지난 5월 7일에는 2004년 3월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된 생명평화탁발순례단 일행이 제가 사는 충북 괴산 감물마을을 찾아왔습니다.

국토순례에 나선 생명평화탁발순례단(단장 도법스님)은 3월 6일 영동군을 시작으로 충북 전역 대장정에 나서 5월 27일 단양군을 끝으로 충북순례를 마칩니다.

5월 1일부터 일주일간 괴산순례에 나섰는데 7일은 제 마을과 제가 농사짓는 땅에 와서 농작업을 함께 하고 돌아갔습니다. 도법스님을 비롯한 순례단 일행은 맨발로 땅을 밟으며 옥수수를 함께 심고 북을 주고 고추 모종도 함께 심었습니다.

생명의 씨앗을 심는 이들의 몸짓은 너무도 진지하고 열심이었습니다. 덕분에 하루종일 해야할 일을 오전 중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들밥과 막걸리를 함께 먹으며 노동의 즐거움도 맛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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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이 맨발로 흙을 밟으며 농사일을 돕고 있습니다. ⓒ 이우성

생명평화 의식을 실천하고자 결성된 연대단체인 '생명평화결사'는 지난 2003년 11월 창립됐으며 2004년 제주·부산·울산·경남, 2005년 전남·광주·경북·대구, 2006년 전북·대전·충남을 걸었습니다. 1만 9100리길을 걸으며 5만 4000여명을 길에서 만나 소중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길을 떠나 다시 길을 찾는 스님과 순례단을 반갑고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습니다. 생명 평화라는 화두를 들고 오랜 시간 고행의 길을 걸어오셨을 이들을 두 팔 벌려 따뜻이 맞이했습니다. 스님이 길을 떠난 이유를 어렴풋 저는 길에서 찾습니다.

세상이 생기고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는 길이었습니다. 한적한 시골 산길에도 뭇짐승이 먼저 산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사람이 다닙니다. 땅은 트임의 공간, '트임'은 어떠한 속 좁음도 포용하지 않던가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는 다름 아닌 길 위에 놓인 사람임을 알고 그 사람들을 껴안으시는 듯했습니다.

타박타박 길을 걸으며 궁구하실 것을 아둔한 제가 몇 마디로 짐작하는 것조차 불경임을 알지만, 짐작컨대 길에서 만나는 사람을 통해, 문화를 통해 사람의 길에 놓인 등댓불을 환히 켜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제일 먼저 '자신의 길'을 제대로 알자고 말씀하십니다. 남의 무게는 짐작하려고 하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너무 가까이 있어 잘 모르는, 잘 챙기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자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무릎을 칩니다. 나 자신에게 나는 얼마나 무심하고 학대했던가. 모든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인데 왜 그리 모르고 살았던가. 그리하여 저는 나를 아는 그 첫걸음에 자기 반성을 먼저 올립니다. 깨끗이 자신의 정신을 정화시키고 맞는 자신은 밤을 새우고 맞는 새벽처럼 신선하고 뺨을 차갑게 때릴 것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은 체 한 제 안의 허위의식을 반성합니다.
알량한 지식을 이용해 뜻에 따라오기만 강요한 제 안의 복종문화를 반성합니다.
제 한 몸 건사하자고 남들을 짜증나게 하고 분노하게 한 것을 반성합니다.
내가 깨끗하면 밖의 환경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더러움으로 오염될 터, 그저 무심하게 물 많이 쓴 걸 반성합니다.
길거리에 담뱃재를 턴일, 휴지를 버린 일, 침을 뱉은 일, 무단횡당한 일들을 반성합니다.
좀 일찍 가기 위해 끼어들고 차선 위반하고 속도위반하고 남들에게 익명성을 가장해 위협을 가한 일을 엄청 반성합니다.
종일 담배 뻑뻑 피워대며 공기를 나쁘게 한 일, 종이 많이 쓰고 휴지 많이 쓰고, 돈 많이 쓰고 밥 많이 먹고, 감정 낭비 많이 한 죄, 반성합니다.
길을 묻는 사람에게 엉뚱하게 길을 가르쳐준 큰 죄에 대해서도 반성합니다.
세상사 힘든 일을 토로하는 사람에게 건성으로 들은 죄, 입에 발린 소리하며 삶의 목적지를 잘못 가르쳐준 죄, 반성합니다.
핑계 대고 아이들과 못 놀아준 죄, 아내에게 짜증낸 죄, 부모님 살뜰히 보살펴 드리지 못한 죄, 이웃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일하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내 안의 허영기만 강요한 죄, 무계획적인 생각만 일방적으로 털어놓은 죄, 이 엄청난 죄들을 반성합니다.
반성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제 안의 의식 없는 뉘우침을 또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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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입고 함께 걸었던 순례단의 조끼입니다. ⓒ 이우성

탁발은 얻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얻음이 아니라 주는 이의 처지에서는 나눔의 실천이요, 얻는 이는 겸손과 감사를 배우는 공부입니다. 탁발은 나눔과 섬김, 모심과 살림의 생명평화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생명평화 삶의 문화를 가꾸기 위한 것입니다. 만남, 대화 소통을 통해 이해와 존중, 배려의 풍토를 가꾸고 갈등과 대립을 풀어가자고 호소합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자신을 낮춘 모습은 '절' 의식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가장 낮은 땅에 대고 숙여 세상이 더불어 행복해지는 삶을 가꾸는 생명평화의 절을 매일 합니다. '절 100배'를 하면서 이들은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고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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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은 매일 백배 절을 올립니다. 생명평화에 대한 서원이 담겨 있습니다. ⓒ 이우성

저도 생명평화결사 서약을 했습니다. 내가 곧 생명평화 등불로서 평화를 위한 학습과 수행을 하며, 이웃과 함께 평화를 나누는 삶을 살고자 일곱 가지의 서약을 한 것입니다.

첫째,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겠습니다.
둘째, 모든 생명을 우애로 감싸겠습니다.
셋째, 대화와 경청의 자세를 갖겠습니다.
넷째,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청빈하게 살겠습니다.
다섯째, 모든 생명의 터전을 보존하겠습니다.
여섯째,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한 길에 앞서겠습니다.
일곱째, 끊임없이 깨어 공부하겠습니다.


이들과 함께 괴산 순례 마지막 밤인 7일, 불정에 있는 농민단체 흙살림에서 여러 토론자를 모시고 '한미FTA, 우리농업의 갈 길'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장장 5시간 가까이 이어진 토론에서는 이 땅의 농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저마다 처한 현실에서 얘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구체적인 대안을 찾기 보다는 농업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은 없는지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농업, 농촌, 농민은 그 어떤 것보다 앞서야 하는 소중한 것이고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각성과 국민의식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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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과 함께 5시간 넘게 토론을 했습니다. 우리농업이 갈 길 찾기는 밤이 새도록 이어졌습니다. ⓒ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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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업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흙살림 교육장을 찾았습니다. 말씀 탁발을 해주신 패널. ⓒ 이우성

지금 이 땅 농민들은 더욱 힘들고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습니다. 농사짓는 땅을 잃어버릴까봐, 평생 이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호미 들고 땅을 파는 이 성스러운 일을 그만두게 될까봐 걱정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씨앗을 뿌리고 호미 들고 들로 어김없이 걸어나가 온 들판이 분주합니다.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농사짓는 마음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천민신세로 전락해, 경쟁력 없어 퇴출당할 신세라 화병이 나서 쓰러질 지경이더라도 도시 사람들 굶겨 죽일 수는 없으니, 국적불명의 외국농산물에 국민건강을 무방비로 노출시킬 수 없으니, 오늘도 농부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들로 나가 힘든 노역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속절없는 세상, 목숨 부지하고 산다는 게 농민으로서는 한스럽고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내 먹을 것, 내 가족 먹을 것, 내 이웃 먹을 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석유자원의 고갈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석유자원이 고갈되면 석유에 의존하는 기계는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 크기 이상의 모든 기계는 쓸 수가 없고 자전거나 지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요.

지렁이나 두더지, 미생물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작은 움직임을 부단히 하여 가을에 땀 흘린 만큼의 수확을 올리는 농부의 역할이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움직임으로 되살아날 날이 곧 오리라 믿습니다. 그땐 농민의 신세도 나아지겠지요. 역전되겠지요. 그때까지 어떻게든 목숨 부지하고 살아야겠지요.

스님과 생명평화탁발 순례단이 언제까지, 어느 길로, 어떤 방향으로 가실지 저의 작은 머리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길에서 만나게 될 스님, 또 길에서 헤어질 스님. 부디 순례하시는 동안 몸 성히 다니시어 초록빛 세상을 생명과 평화로 색칠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저도 내일은 오늘보다 다른 나를 가꾸기 위해, 내 안에 작은 빛 한줌이라도 스며들 작은 바늘 침 하나 뚫어 두고 생명평화의 서원을 매일 하면서 살겠습니다. 모두가 생명평화의 등불이 될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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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의 차량문구. '내가 먼저 평화가 되는 등불'이 세상을 덮을 날을 고대합니다. ⓒ 이우성

덧붙이는 글 | 순례단을 보내고 난 후 바로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꿈같은 멋진 순례길이었습니다"
그 순례길에 많은 분들이 동반자로 길 나서길 기원합니다.
FTA와 우리농업의 살길에 대한 토론회는 다음에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순례단을 보내고 난 후 바로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꿈같은 멋진 순례길이었습니다"
그 순례길에 많은 분들이 동반자로 길 나서길 기원합니다.
FTA와 우리농업의 살길에 대한 토론회는 다음에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생명평화탁발순례 #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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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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