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의 추억? "삶의 현장에서 다시 깃발들자"

[포장마차 토크] 전대협 세대들의 20년만의 만남

등록 2007.05.14 11:24수정 2007.05.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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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대협 세대들의 20년만의 만남

전대협 세대들의 20년만의 만남 ⓒ 오마이뉴스 장재완

a 어깨 동무를 한 채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는 참석자들.

어깨 동무를 한 채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는 참석자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그대들은 낳아주고 길러준 조국에 무엇으로 보답하겠는가?"

이같은 물음에 짱돌과 화염병을 든 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조국이 처한 현실을 정의감과 용기와 패기로 개척해야 한다고 믿었다. 1987년 출범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도 그 중 하나다. 전대협은 1992년 해산했지만 지금도 386세대의 허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 시대 인터넷이 보급됐다면 최루탄, 억압, 민중, 평등, 자주, 해방, 통일, 부정부패, 조국과 같은 낱말이 검색어 1위를 차지했을 게 분명하다. 그들은 부자유에 맞서다 고문과 구속 등 독재의 폭압에 고통스러하면서도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를 외치며 동시대를 풍미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남을 위해 공부하고,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그들이 살아온 삶과 고민은 무엇일까?

12일 늦은 밤, 그들 중 일부가 전대협동우회 주최로 대전의 한 해장국 집에서 만났다. 이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 늦도록 '전대협 이후 20년' 이야기를 쏟아냈다.

죽은 자 얘기로 시작된 '대전대협'


a 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

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장재완

대전대협(대전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첫 이야기는 지병으로 세상을 뜬 '윤재영'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됐다. 그의 이력은 얄궂게도 전대협의 처음과 끝에 맞닿아 있다.

윤재영은 87년 충남대학교 총학생회장 겸 제 1기 전대협 부의장을 역임했다. 이후 구속과 수배, 청년회 창립, 노동운동의 과정을 걷다 전대협이 해산되던 92년 천식으로 사망했다. 이날 모임에 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참여한 것도 윤재영과의 인연 때문이다.


당시 전대협 의장을 지낸 이 의원은 "재영이가 자기의 진로를 상의해와 조언을 많이 했다"며 "조언을 받아들여 현장에서 일하다 쇄골을 다쳐 천식이 도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이 일로 부채의식에 울기도 많이 울고 후회도 많이 했다"며 "그 뒤에는 '목숨 걸고 뭐 하자'고 말을 못했고, 가졌던 원칙에도 관대해졌다"고 말했다.

동료였던 양동철(87년 충남대 문과대 학생회장)씨는 "재영이는 의식도 확고하고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했다"며 "살아있었다면 대전지역에서 많은 일을 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양씨는 "지금도 재영이가 못다 이룬 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들의 삶은 죽은 자와 87년 6월항쟁-전대협 출범과 맞닿아 있다. 양동철씨는 대전에서 6월항쟁을 주도하고 유인물을 돌리다 구속됐다. 양씨는 "당시 전대협 출범을 생각하면 아직도 감동이 남아있다"며 "졸업 후 직장생활,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등 일을 하다 지금은 작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용옥(충남대 85학번)씨는 "학교 졸업 후 충남민족민주운동연합 간사일을 하다 90년대 중반까지 청년단체 일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 때 탈패 동아리 활동을 한 이용운씨 (87년 목원대 투쟁위원장)는 줄곧 문화 관련 일을 해오고 있다.

윤종일(충남대 88학번)씨는 "'전대협은 한 때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이름이었다"며 "한총련으로 바뀌고 학생운동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386정치권의 독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a 어깨 동무를 한 채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는 참석자들.

어깨 동무를 한 채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는 참석자들. ⓒ 오마이뉴스 장재완

한동안 잊혀졌던 전대협이 다시 언론지상에 오르내린 것은 수년 전 제도 정치에 참여한 386세대들이 폭이 넓어지면서부터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실패한 386'이라는 꼬리표가 나붙었다. 대다수 언론은 이들이 민주화 이후의 전망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무능'으로 한국 정치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혹평했다.

이 의원은 "민주화세력이 2004년까지 줄곧 세상을 바꾸기 위한 공세적인 역할을 해오다 2005년 이후 수구 냉전세력들로부터 역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그동안 사회 전반에 긍정적 방향으로 물길을 내고 역사를 진전시켜왔다"며 "지금은 지난 20년의 역사적 성과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이를 톡 털어낼 것인가를 결정짓는 재편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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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장재완

하지만 386 내부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386의 실패가 '386'으로 불리는 상당수 전대협 학생회장 출신과 당시 간부들이 평화와 인권,평등의 가치를 망각한 정치행보에 따른 것인만큼 '일부 386 정치인들의 실패'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전대협동우회를 '전직 전대협의장 및 각급학교 전직회장 동우회'로 명칭을 바꾸라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정치권이 잘못했으니 독박을 쓰면 끝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는 "일예로 시민단체가 정치와 거리를 둔다고 시민사회와 우리 사회가 행복해 지는 게 아니라, 함께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면서 "우리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삶의 가치와 방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대협 세대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정완숙 사무국장은 "전대협의 존재 이유와 활동 목적이 유의미한 이상 각자의 마음을 가다듬고 이를 확신시키는 공동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오늘 모임은 잔물결이지만 멀지 않아 20년 전처럼 큰 파도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그 때의 6월로 되돌아가 어깨를 걸고 '아침이슬'을 목놓아 불렀다. 당시 청년학생이었던 옆자리 동지들의 얼굴은 30대 후반∼40대의 중년으로 변했다.

이날 대화도중 가장 많이 등장한 낱말은 '6월 항쟁'이었고 자주 오르내린 말은 전대협, 삶의 가치, 미래, 전망, 모임 등이다.

#전대협 #윤재영 #386 #6월 항쟁 #아침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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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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