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학부모로 본 스승의 날

스승의 날 유감, 그 바람직한 대안을 생각해 보며...

등록 2007.05.14 16:14수정 2007.05.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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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승의 날 유감

다시 오월이다.

꽃 중의 꽃이라는 장미가 그 자태를 뽐내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성년의 날이 들어 있으며, 청소년의 달로 불리어 가정과 가족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달이다.

그러나 이즈음의 가정은 자녀를 낳아 사랑과 관심으로 키우고, 부모를 효로써 공경하는 가정의 기본적인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지 회의스러울 때가 많다.

아직도 부모에게 감정적으로 폭행당하는 자녀가 많고, 낳기만 낳았지 양육되지 못하고 방치된 아동도 많으며 나이 든 부모를 방치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 사회의 복잡다단한 사유들과 얽혀 가정폭력, 이혼, 등 긴장과 대립으로 파괴되는 가정이 많으며 더 심한 경우 부모의 유산이나 보험금을 포함한 물질적인 이익을 둘러싸고 가족 간 갈등이 법정소송, 폭행 살인까지 이르게 된 경우를 접하기도 하고, 생활고나 우울증으로 자녀와 동반 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하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은 '가족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대다수 가정을 사회의 한 근간으로 유지시켜 주고 있긴 하다. 물론 건전한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달의 한가운데 끼어있는 '스승의 날'은 전혀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스승의 날'이라는 어감의 무게에 눌리고 깔려서 활짝 핀 오월의 장미가 아련한 안개꽃이 되기 십상이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학부모의 접대, 회식제공', '촌지', '스승의 날 선물' 등의 얘기가 실제 있었던 일부터 과대포장되어 언론을 중심으로 집중포화를 맞게 되고, 교사를 포함하여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까지 부도덕한 일에 연루되어 마치 학교가 교육하는 곳이 아닌 무슨 범죄자 집단으로 여겨지기까지 하니 사회의 건강성 정도를 볼 때 심각한 병리현상의 표출로 보여진다.


그 결과 학교 측에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대응이 '임시휴업'을 하여 아예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지 않도록 해서 그 오해를 사전 차단하자고 하는 입장이 있으며, 반면 휴업을 하는 것은 과장된 일부의 여론을 인정하는 것밖에 안 되니 학교에 등교를 하여 평상시대로 일과 운영을 하거나 아니면 꽃을 달아드리고 '스승의 은혜' 노래 부르는 정도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인 풍토이다.

휴교를 하면, '그렇다고 휴교를 하면 어떡하느냐?', 등교를 시키면 '학부모가 부담이 되지 않느냐?' 학교는 어떤 선택을 해도 이래저래 어려운 처지이기는 마찬가지인 이런 경우를 두고 '모순'이라는 말 딱 그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역시 과반수 학교가 휴교를 한다는 비율(경남도내 53%)을 언론이 내놓고 있고,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자는 의미의 1인 시위가 '참교육학부모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당사자인 교사들이 앞장서라는 분위기도 일고 있다.

2. 교사의 입장에서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살다 보면 매사에 형식이 있고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은 없고 마지못해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형국의 '스승의 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있든 없든, 2월로 가든 7, 8월 방학으로 가든….

지금 우리 사회는 '정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삶의 도리'가 필요한 것인지, 인간의 삶에서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개념에 무감각한 한마디로 '철학'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인간은 의식주 해결, 즉 물질적 양육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나기까지 올바른 정신이 중요하고 그 가운데 '교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는 것이 전제될 때 떳떳하게 스승의 날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지 교사에게 배우는 학생 자신들이 그런 고마움을 지니지 않는 데다 학부모들마저 '월급받고 당연히 하는 일'로 치부하니 교육의 주체는 비켜 서 있고, 학교 밖에서 왈가왈부하는 자체가 우리 교육현실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반증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그런 생각을 지니지 않게 된 데는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올바른 정신을 일깨우지 못하는 교사' 또 '교사답지 못한, 교사로 대우할 수 없는' 등 교사 당사자들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그러나 그게 과연 교사들만의 책임일까? 하는 억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정말 원인이 그것뿐이라면 처방이 의외로 간단할 수 있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고쳐서 제자리를 잡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이 보여지기에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몰고 온 세계사적인 흐름에 따른 교육여건의 변화, 학벌주의에 따른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만들어 내는 교육정책 입안자들, 학문의 전당이라기보다 일종의 기업경영이라 할 사학 경영, 자녀를 특권층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라면 가정의 행복도 기꺼이 유보할 수 있고(기러기 아빠),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학부모의 교육적 열의는 이 땅의 엄마들을 노래방 도우미나 궂은 식당일도 마다하지않게 만든 풍토 속에서 가공할 사교육 시장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기까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교육현상을 꺼리로 하여 바람직한 교육발전을 위한 진지한 고민에서라기보다는 표피적이고 말초적인 자극을 연일 제공하던 미성숙한 언론.

학교가 그러한 사회를 떠나 어디 홀로 '섬'으로 존재하기 않는 이상 그 한가운데 학교가 있고, 학생이 있고, 교사가 있다.

또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교사의 가르침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의해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봐야 하며 요즘같이 언론매체나 정보통신의 영향력이 막강한 시대 '상업주의적인' 속성에 의해 가치관이 형성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적 속성과, 그에 부응하는 교육정책들이 현실에 맞는지 아닌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구조조정'이니 '노동의 유연성'이니 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구실로 삼은 정부정책이 그렇고, 그 결과 교사를 '지식을 파는 장사꾼'쯤으로 만들어가는 사회 일각의 풍토가 그렇고, 일부교사의 잘못을 전체교사인 냥 확대하여 부풀리는 언론에, 교육을 "매개"로 돈벌이하는 사교육 시장의 이해관계에 놀아나는 사회분위기가 그렇고, 교육수준이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학부모들을 포함하여 역시 교사를 '별 잖게' 보는 풍토들이 그렇고 어찌 그 원인이 한두 가지겠는가?

최근 의미도 없는 '스승의 날' 때문에 학교는 전전긍긍이다.

학부형들이 "촌지"나 "선물"이 부담된다고 하여 요근래 아예 휴교를 해서 학교를 하루 쉬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지자 그런다고 또 휴교를 하느냐? 그런다고 선물 줄 사람이 안 주느냐? 어떤 학교의 경우, 아예 그날을 끼워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가서 교사가 24시간 학생들과 교육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학부모측의 불만이나 요구들, 교육관계자들의 미성숙한 대응들이 다 서글픈 한국의 교육현실들이라 가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결론적으로 교사로서 내 개인의견을 말하자면 대다수 선량하고 양심적인 교사들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면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면에서 오히려 없애는 것이 사회적 통합을 위해 바람직하며 그런 형식을 없앤 상태에서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교육적인 의미에서 '학교문화'를 새로 만들어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모을 수 있고, 또 위기에 강하다는 것이 우리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보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 두 가지 예시가 그 대안 책이 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예 하나]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소풍 날 얘기다.

담임교사가 출발하기 전에 "너희들 선생님 주려고 가져온 것 있으면 산에 가져 갈 필요 없이 여기 가져와 봐라" 하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나와서 선생님 책상 위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사탕 한 개, 껌 하나, 귤 하나, 요구르트 한 병….

아이들의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게 교육이다.

[예 둘]

초등이냐 중등이냐 학교 단계 급별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학생들에게 있어 '스승의 날'은 어떤 의미일까?

'스승의 날'을 핑계로 학생들은 한두어 시간 수업 빼먹는 재미가 있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는 하나의 '이벤트'라고 하면 맞는 말이다.

"선생님! 저희들이 모시러 올 때까지 교실에 들어오지 마세요"하고는 어떤 반은 신문지로 창을 막아놓고 무얼 하는지….

그래서 나중에 들어가 보면 온 교실을 풍선으로 장식을 하거나 칠판 가득 '선생님 사랑해요' ' 감사해요' 낙서를 해 놓고, 축포를 터뜨리거나 초코파이나 케익에 촛불 꽂아놓고 스승의 은혜 노래 부르는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러면서 그 속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고, 스승에 대한 감사함이 있고, 딱딱하기 쉬운 학교생활에서 활력을 찾으면서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게 되는 '학교 문화'가 있다는 말이다.


사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또 교사도 직장으로서의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딱딱한 교과학습 이외에 인간적인 정서로 만나고 서로 소통하는 그런 문화의 장(場)들이 학부모들의 지나친 과잉애정에 의한 물질공세와 부정적인 부분에 지나친 관심이 집중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부모님들이 먹이고 입히고 양육하지만 사람은 의식주의 기본만 해결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인간이 지닌 최고의 가치 '사고력, 정신 이성'을 다듬고 연마하여 성숙한 인격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학생들의 건전하고 바람직한 성장을 조력하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선생님들이 한다고 보면 학생들 본인이 교사에 대해 지니는 감사의 마음, 그것이 '스승의 날의 핵심인데, 언제부턴가 그 감사함을 어른(학부모)이 대신 표현하게 되고 감사함의 마음보다 물질이 우선하게 되고 하면서 나오게 된 '스승의 날'에 대한 폐단이 결국 '교사에 대한 학생의 감사함'이라는 원래 정신이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부정적으로 확산된 사회 전반의 '교사'에 대한 폄하는 결론적으로 아이들이 교사의 올바른 교육적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서 그 폐단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결국 이 사회가 떠맡아야 할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학교 주변의 주택가나 공터, 아파트 지하를 찾아다니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도 붙잡아 와서 꿇어 앉혀 놓았다가 반성문 하나 쓰고 돌려보내는 것 이외 방법이 없고, PC방, 게임방, 노래방 등 성인에게 허용된 생활이 몸에 익어 있고, 그러다가 기분 상하게 하는 후배나 다른 아이를 폭행하여 문제가 되어도 교내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이수라 해봐야 상담 좀 받고 노인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 며칠 시키는 것 이외에 학교나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부모님께 전화를 해도 "요새 애들 다 그렇잖아요. 학교 가보니 우리 애보다 더 심하게 가출하고 아이들 폭행하고 그러던데 그 정도는 자라는 아이들 다 그렇지 않아요?"

아니면 문제가 있는 학생 대다수 학부모가 이미 아이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학부모에게 전화하는 것을 무서워하지도 않을뿐더러 해결되는 것도 없기 때문에 아이의 문제행동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생님 저 정말 담배는 못 끊겠거든요. 아이들 보는데서 안 피울 테니 그냥 모르는 체 눈감아주시면 안 돼요." 어떤 부모님은 하다 하다 안 되니 밖에 가서 피우면 손가락질 받고 욕먹으니 방에서만 피우라고 하기도 한단다.

이 학생들이 몇 살이냐 하면 빠르면 초등 5, 6학년부터 만 13, 14세의 중 2, 3 아이들 얘기며, 아직 키가 140-150㎝도 안 되기도 하는 여학생들의 얘기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밖에서 보면 도대체 담배를 물고 있는 걸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아직 앳된 얼굴의 순진무구해 보이는 여학생들이다.

그러나 규칙을 어기는 짓(수업 중 핸드폰 사용, 흡연, 무단외출 등)을 해서 현장에서 적발이 되어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기 일쑤이고, 상스런 욕설을 입에 달고 있으며 교사를 포함한 어른들에게 "지랄하네… 미쳤네" 하며 말 함부로 하기부터 정당한 교육적 지도를 거부하고 심지어 반항하는 아이들을 보면 인간에게 있어 '건전한 정신'이 소홀해진 사회의 풍토가 어떤 대가로 돌아올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교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자녀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한 옛 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돋보이면서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시절인 것이다.

하긴 '스승의 날'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번은 선생님 머리에서부터 케이크로 뒤집어 씌워서 범벅 칠을 하는 바람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고 보면, 결코 실수나 우연이 아닌 장난으로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심한 일들이 아무 생각 없이 행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고마움을 알고 표현하는 마음을 잃고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소풍 가서 '선생님 우리 엄마 솜씨 좋은데 김밥 하나 드셔 보실래요?' 수학여행 가서 하루종일 운전하시는 기사 아저씨께 음료수 하나 내밀 줄 아는 마음.

아니래도 자식 하나 아니면 둘, 금이야 옥이야 키웠더니 자기밖에 모르고 남을 배려 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가 되는 건 아닐까?

어느 선생님이 아들 하나 키웠더니 뭐 맛있는 것 있으면 부모가 먹는 것도 아까워하면서 지만 알더라고 한 얘기가 생각나고, 최근 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재벌가의 빗나간 자식 사랑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어 학교에 부르게 되는 대다수 학부모가 이미 그런 전철을 밝고 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3. 학부모로서 입장

그런데 문제는 학부모가 되고 나서의 입장변화가 자신을 모순 속에 빠져들게 하면서 대다수 학부모도 나와 같은 입장에 처해 보았으리라 여겨지게 되었다.

맏딸로서 하다못해 아는 집을 방문해도 맨손으로 못 가고 음료수라도 들고 가야하고, 다른 사람의 기념일은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불문율로 여기면서 막상 내 생일이나 기념일은 '뭐 많은 날 중의 하나'로 치부할 뿐 별 의미를 두지 않기에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이다.

특히 물질적인 부분에서 부도덕하게 다른 사람들의 지탄이 되는 뇌물, 청탁 등에 대해서는 심할 정도의 결벽증을 지녔으니 스승의 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교사 발령받고 내가 학부모에게 받은 첫 선물이 '계란 꾸러미'나 '고구마 삶은 것' 등인데 그것들은 돌려주지를 못하고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학교 사택 부엌에 가져다 놓고 가버리면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기에 돌려줄 수도 없거니와 그 후에도 '내가 갖다 놓았다'고 끝까지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누군지 모르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마음을 고맙게 여기면서 먹는 수밖에 도리가 없고, 더 힘내서 아이들 잘 가르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직접 학부모를 대면하면서 받은 것은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요구르트 두 줄이었던 것 같은데, 하도 당황해서 그 당시 나이 지긋한 교무부장님께 이걸 어째야 하느냐고 물었고, 그걸 받아서 우리 부서에 속했던 선생님들께 하나씩 돌려서 마신 적이 있다.

한번은 상품권 같은 것을 돌려보내서 어떤 학부모에게 무지 욕을 먹었던 적이 있다. '우리 집안에도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학생이 성의껏 준비한 건데 그걸 돌려보내서 학생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아느냐?'는 얘기가 요지이다.

문제는 미혼일 때는 나만 옳으면 된다 싶어서 촌지나 선물을 돌려줘서 욕도 많이 얻어먹기도 하고 또 어떤 어머니들은 "어휴, 선생님 실수했습니다"하고 이해해 주기도 하지만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게 되면서부터 내 자신의 모순에 부딪히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개학하고 담임선생님이 정해진 날 '담임 샘 어떤 분이야? 나이가 많으시니? 여선생님이야, 남선생님이야?' '어떤 과목 선생님이야?' '학 급아이들은 어때?'

사실 눈 뜨고 맑은 정신으로 있을 때 대부분 시간을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낸다.
어릴 때 부모 손이 많이 갈 때 얘기지 사실 학교 입학하고 나서 중학교라도 진학하고 나면 집에서는 쉬고, 휴식하고, 자고 가는 곳일 뿐 대개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 아이만 잘 봐달라는 것 이전에 아무 바라는 것이 없어도 우리 아이가 성장하는 일년간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바르게 이끌어 주는 담임선생님 얼굴도 몰라서 되겠느냐는 생각에서 학기 초가 되면 아이를 닦달한다. '학급에 뭐 필요한 것 없어? 화분 하나 사서 보낼까?' 혹시 길거리나 시장에서 스쳐 지나거나 차를 타고 가다 접촉사고가 나서 애 선생님인 줄도 모르고 싸우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맛있는 김치나, 시골에서 올라온 '무농약 웰빙 식품'이라도 접하게 되면 '담임 샘 좀 보내드리면 좋을 텐데' 하는 맘이고 소풍날 솜씨만 있으면 점심도시락 하나 정도 손수 싸 드리고도 싶지만 마음만 있지 솜씨도 없고 애 밥도 겨우 싸 보내는 정도로 그치고 만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딸은 한 번씩 요구를 했다.

"엄마! 어린이날 누구 엄마가 학용품 주고, 누구 엄마가 티 돌렸는데 나도 한번 해 주시면 안되요?" 그러던 딸이 중학교 진학하면서 태도가 싹 바뀌었다.

엄마는 뭐 받는 것 칠색 팔색을 하면서 "왜 우리보고는 가져가라고 하느냐"는 것이 그 요지이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잘 봐 달라고' 한다면서 수군거리고 눈치 받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들은 더하다. 5학년인가 6학년인가 만화로 된 재미있는 CD가 있어서 교재로 쓰시라고 학기 초에 편지와 함께 보냈는데 연말에 책장 정리하는 사이에서 그대로 나와서 기가 막히기도 했다.

그나마 '스승의 날'은 그래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날이니, 그것도 가격 부담되는 건 뇌물처럼 여겨져 선생님 입장 곤란할까 싶어 여름용 양산이나, 녹찻잔 정도, 아니면 내가 평소 잘 아는 분야가 책이니, 좋아하는 책 두어 권 정도 사서 선물했는데 그나마 요 몇 년은 지탄받는 사회분위기 따라, 교사인 나부터 앞장서야 한다 싶어 그것도 못하고 있다.

요즘 '스승의 날'을 학년을 마치는 2월로 옮기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학부모 맨 처음부터 학년말 마치는 2월에 간단한 선물하는 걸 신조로 삼아왔다.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순수하게 1년간의 노고에 감사함을 담아서 말이다.

물론 직업마다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교사가 어렵다고 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도 하지만 사실 학교에 있는 우리나 교사의 어려움을 알지 누가 정확하게 알겠느냐 싶긴 하다.

교생실습 나와서 한 달 보내고 가는 학생들의 말이 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선생님들은 퇴근시간 정확하지, 휴일에 쉬지, 방학 있어 또 쉬고 체육대회니 학예회니 수련활동 등 학교에서 아이들 데리고 잘 놀다 보면 월급 나오지 등등…. 바깥에서는 교사를 비교적 쉬운 직업으로 보고 특히 여교사는 직업 중 최고로 쳐서 딸을 장래 교사로 희망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방학이 되어 자녀 한두 명을 데리고 씨름을 해 본 학부형은 알 것이다.

'왜 늦잠을 자느냐? TV만 보고 있지 말고 공부 좀 하지, 컴퓨터 좀 그만 해라, 왜 그렇게 시내를 싸돌아 다니느냐? 또 돈을 왜 그렇게 많이 쓰냐? 땅을 파 봐라 돈 천원이 나오냐? 부모한테 하는 말투가 그게 뭐냐? 왜 그래 목욕을 안 가려 하느냐? 제발 거울 좀 그만 봐라…'

그렇다. 자라는 학생들은 마네킹이 아니고 한명 한명이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모두 다른 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며,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아이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훨씬 많고, 무지하게 말 안 듣고, 애먹이는 아이들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한 학생이 1년을 보내고 진급이나 졸업을 해 나가는데 한 학생 밑에 달려있는 서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성적을 비롯하여 출결, 학생활동, 봉사활동, 특별활동, 계발활동 수상 여부, 학생상담기록부 등등… 그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착한 애든 애를 먹이는 애든 누구나 마찬가지이고 특히 사춘기를 겪는 초등 5~6학년부터 중학교 과정에 있는 담임교사들은 어떤 학생이든 사춘기를 거치기 때문에 교사들이 얼마나 애를 먹는지 모른다.

한두 자녀들이 가정에서 하는 행동과, 동조성이 강한 청소년기 학교에 무더기로 모여 하는 행동들이 다르며, 특히 가정폭력이나 지나친 학업성취에 시달린 학생, 나이에 맞지 않게 허용적이거나 방임적으로 자란 학생들 중에는 학습충동장애, 공격성을 비롯한 반사회성장애를 지니고 그 표출되는 정도가 심한 학생들이 학급에 몇 명씩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4. 행복했던 스승의 날 행사

전교조가 결성되던 1988-89년부터 그 당시 우리는 이미 스승의 날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을 다 돌려보내기 시작했었다.

'선생님! 이거 뇌물 아닌데요. 엄마가 사주신 거 아니고 제가 용돈 모아서 손수건 한 장인데요. 그것도 안돼요?'

아이들의 실망과 낭패감을 마주하며 '선생님은 이미 너희들의 선물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 선물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또 마음은 있어도 가져 올 수 없는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으니 다 돌려보내겠다. 그리고 너희들은 아직 돈을 버는 성인이 아니니 너희들의 예쁜 마음을 담은 편지와 꽃 한 송이 정도만 받겠다'고 공언을 하고 그 이후로도 그러한 신조를 지켜오고 있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다.

대체로 스승의 날 기념행사는 미숙하지만 학생회의 진행으로 기념식이 열리는데 꽃 달아 드리기를 하고 나서 '스승의 은혜' 노래 부르기 정도로 진행된다.

이전에 그 이후 재능 있는 학생들이 바이올린과 플롯으로 스승의 은혜를 연주했고, 또 교사들이 열흘 이상 준비를 했던 중창('사계'를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을 답례로 했다.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사물놀이 공연을 했으며 남학생들과 남선생님들이 축구시합을 했으며, 여학생들은 선생님과 발목 묶고 마음 맞추어 걷기를 하여 참여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다 즐거웠던 하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것도 이전에 하루를 할애하거나 오전수업을 희생시킬 수 있을 때 얘기이고 요즘은 교과목별 연간 수업시수를 지켜야 하므로 '결혼식'을 해서 특별휴가는 다녀와도 그 부족분을 다 보충해야 하는 빡빡한 교육과정 운영이 되고 나서는 그러한 시간도 내지 못하고 정상일과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 '스승'과 '교사', '노동자'

존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스승'에 대한 용어가 교사들에게는 우선 너무 무겁고 힘겹다. 그냥 '교사'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그 정도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다 치고 '교사'를 '노동자'라 부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거부감이 많은 줄 안다.

조선시대 '선비'나 '스승상으로서의 교사'라는 전통적 관점의 사람들에게는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 자신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많이 보게 된다.

일부 네티즌들의 댓글에서는 노골적인 반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래 너희들 교사 자체가 노동자라 부르고 그렇게 행동하겠다면 노동판에 일하는 사람 대우하마' 하는 듯 그 용어 자체 때문에 마치 '교사'가 비하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일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조선시대 성리학적 이념의 직업관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학문하는 선비를 높이치고, 과거를 쳐서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 고상하고 대우받는 직업이며, 땀 흘려 일하는 직업을 천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산업 사회 이후에는 '노동(정신적, 육체적)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 노동자이며 오늘날 대다수 사람이 노동자임에도 우리의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교사가 노동자라는데 대해 매우 강한 거부감을 지니는 듯하다.

그 점은 교사에 대한 시대적 관점의 변화만 제대로 이해해도 그러한 오해가 일부 불식될 것이며 전교조 교사에 대한 과장된 불신도 일부 해소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교사를 보는 세 가지 관점이 있는데, 첫째가 '성직자'관이다.

교직을 '성직'이라 보는 주로 전통적인 관점이고 특히 교사를 '스승'이라 높여 부르면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직'이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그래서 교육자는 세속적 이익보다는 정신적 이상과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청빈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도덕적 윤리적이어야 하며 매사에 존경받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우리의 의식도 이 관점이 가장 강하여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에서 보듯이 그 명예와 지위를 무한한 것으로 여겼고, 따라서 사회적인 존경을 받았으며 교직자 자신도 교직을 명예롭게 여겼다.

그러나 학식과 덕망이 높으면 교육자가 되던 전통시대에 비해 사회가 분업화되고 산업화되면서 현대사회에서는 막연한 사명감만 가진 성직으로서보다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지니고 교과를 지도하고 학생의 생활을 지도해야 하는 '전문직'이라는 관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물질이 발달한 서양에서는 중세 이래로 교사를 (정신)노동자로서의 직업이라는 의미가 강한 '노동직'이라는 관점에서 여겨져 왔다.

중세 때 발달하기 시작한 서양의 대학은 처음 교수와 학생들의 조합에서 비롯되었고, 학생은 돈을 내고 배웠고, 교수(교사)는 가르친 대가로 봉급을 받았다. 그러다가 현대사회가 서양문화 중심으로 발전되면서 교직이 노동직이라는 관점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의 한국사회에서는 학부모를 비롯한 사회 일반의 분위기가 여전히 '교직은 성직'이므로 투철한 사명감을 지니고 매사에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며 '돈'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고, 일부 교직단체는 정신적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이익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립되면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교직에 대한 전통적 관점과 현대적 관점 사이에 많은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 일반의 시대적 변화와 상관없이 교사에게만큼은 농경시대 '스승'상을 요구하면서 교사를 비난하고 있기도 하다. 또 일부 학부모는 산업사회의 변화에 부응하여 교사를 '직업인'으로 더 나아가면 '지식을 파는 장사꾼'처럼 여기고, 또 실제 그렇게 대하는데 또 일부 학부모들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스승의 날'을 챙기려고 하니 그 혼재됨 때문에 학부모 자신들도 혼란 속에 있다고 할 것이다.

교사는 '월급받고 당연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면서도 '스승의 날' 우리 아이를 맡겨 놓고 그냥 있어서 되겠나? 아니면 혹 우리 아이만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반응하면서 성의를 표하든 안하든 '마음 불편한' '스승의 날'이 되면서 그 한가운데 있는 교사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서로 청탁을 주고받거나 뇌물을 주고받는 공무원과 같은 부도덕한 '범죄자'처럼 만들어 놓고 말았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시절에는 '부자'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죄악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를 합법적인 미덕(물론 남을 희생시킨 대가 혹은 부도덕하게 쌓은 부가 아니라 정당하고 남보다 부지런히 일해서 쌓은 '부(富)'여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산업사회 이후 우리 사회도 극심한 자본주의로 치닫고 있고, 모든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생활인임이 되어 경쟁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혹시 교사들에게만큼은 조선시대에서나 가능했던 성직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되돌아 볼 일이다.

홍세화씨가 자주 인용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어느 아파트 선전처럼 거대한 '자본주의 물결에 떠밀려가면서 삶의 철학을 지닐 여유가 없는 우리 국민들이 아파트 위치나 평수에 따른 가격이 곧 인간의 존재가치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경제력의 정도가 인격마저 결정한다고 생각하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내 금쪽같은 자식만 중요해서 다른 학생들의 인격이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어른들의 사고방식에 우리의 아이들이 희생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좀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서 스승의 날은 없애든지 옮기든지 휴교를 할 것인지 정상일과를 운영하든지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배우는 학생들이 '선생님들은 자신의 인격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기본 생각을 지니도록 교육되는 학교문화, 사회적 풍토만 합의가 된다면 스승의 날이 있든 없든, 언제로 하든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고, 25년이 넘는 교직생활에서 학교에서 자녀의 행동거지가 바른 경우 그 학부모도 참으로 괜찮은 분일 것이라는 믿음이 가고, '자녀를 인생 최고의 보물'로 여기면서 공을 들이는 학부모치고 자녀가 잘못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만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생일' '결혼기념일' 같은 의미를 만들 듯 '스승의 날'을 딱딱하기 쉬운 학교생활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문화로 생각하되 세 가지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스승의 날 학생들 자신이 감사함을 표하게 그냥 두고 어른들이 끼어들지 말라.

'선물'인지 '뇌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진심'이나 '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고마우면 고마운 마음만 표하고 물질은 개입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또 학부형들은 '금쪽같은 내 귀한 자식'이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집단생활에서도 환영받는 사람이 되도록 올바른 인성을 지니도록 자녀를 기르는데 온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옛날 속담에 "귀한 자식일수록 매를 아끼지 말라"는 말이 있다. 서구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요즈음 서양 사람들은 아이를 매로 다스리려면 어릴 때 다스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가 어디 매 댈 때가 있다고'하거나 '아이가 무슨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하면서 허용적으로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자녀가 남에게 피해 입히는 것도 예사로 생각하고, 자신만 편하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로 자라서 집단생활에서 따돌리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웬만하면 매는 대지 않으니 말로서라도 끊임없이 일깨우면서 키워야 할 것이다.

초등 5-6학년, 중학생만 되면 이미 부모가 자녀를 이기지 못해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되풀이해도 그만 포기하게 되고 나쁜 습성을 지닌 채 부정적으로 자라난 자녀를 위해 평생 따라다니면서 뒷감당을 해야 할 경우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스승의 날 #선물 #촌지 #학부모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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