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황매산, 구름과 안개의 절경

이 세상 소풍 끝낸 '철부지' 남기용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등록 2007.05.14 20:35수정 2007.05.1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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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구름이 내려앉은 장엄한 황매산.
하얀 구름이 내려앉은 장엄한 황매산.김연옥
황매산(1108m)은 경남 합천군 대병면, 가회면과 산청군 차황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아름다운 철쭉 군락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산에서 그렇게 멀지않은 곳이라 꼭 한번 찾고 싶었던 산이다. 지난 12일 마침 황매산으로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어 따라나서게 되었다.

오전 8시에 마산을 떠난 우리 일행은 10시 10분께 경남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 장박마을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 전날에 들은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려 나는 등산용 비옷을 걸치고 우산까지 폈다.


김연옥
지난해 9월에 꽃무릇 보러 간다고 전남 영광 불갑산 산행을 나설 때도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비가 몹시 내렸다. 그때 고생했던 기억이 자꾸 떠올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하면서 산행을 갈까 말까 망설였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계속 뚝뚝 떨어졌다. 연분홍 산철쭉들이 비에 젖어 후줄근했다. 질퍽질퍽하고 안개까지 뿌옇게 낀 산길을 걸어가는 내 기분도 후줄근했다. 사실 그날은 동요를 부르는 '철부지'의 남기용 선생님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날이었다.

지난 10일 밤에 남기용 선생님이 암으로 결국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가까이 지내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창원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남선생님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분이었다.

오랜 세월 신장염을 앓아 온 아내를 사랑으로 병 수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순수 우리말 또한 끔찍이 아끼던 분으로 하모니카를 신나게 곁들이며 행복한 노래를 부르던 그의 얼굴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김연옥
주룩주룩 내리는 비까지 맞으며 산행을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참 청승맞은 짓이다. 그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하염없이 흘리는 이 세상 친구들의 눈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산행 내내 끝없이 이어지는 연분홍 산철쭉밭을 바라보면서 왠지 찬란한 슬픔 같은 것이 내 마음 밭으로 스며들었다.


바람까지 세게 불던 황매봉(1108m) 정상에서.
바람까지 세게 불던 황매봉(1108m) 정상에서.김연옥
산봉우리 모양이 매화가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황매봉(黃梅峰) 정상에 오른 시간이 12시 20분께. 비가 오는 데다 바람이 어찌나 강하던지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웠다. 할 수 없이 곧장 베틀봉 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30분 정도 걸어갔을까. 하얀 구름이 내려앉은 장엄한 경치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여기저기에서 즐거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희뿌연 안개가 마치 바닷물이 밀어닥치듯 거대한 몸집으로 밀려왔다가 서서히 걷히는 광경 또한 장관이었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던지 숨 죽이고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벅찬 감동을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가 왔기 때문에 맛볼 수 있었던 절경이었다.


마치 바닷물이 밀어닥치듯 희뿌연 안개가 거대한 몸집으로 밀려왔다.
마치 바닷물이 밀어닥치듯 희뿌연 안개가 거대한 몸집으로 밀려왔다.김연옥
김연옥

황매산의 철쭉 군락지는 연분홍색으로 곱게 꾸며 놓은 하늘 공원을 연상하게 한다. 나는 연분홍 꽃밭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서두르다 그만 미끄러져 버려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산악회를 따라 산행을 할 때마다 이상스레 나는 잘 넘어지고 잘 부딪힌다.

충북 청주시에서 왔다는 한 등산객이 갑자기 우리 가곡인 '그리운 금강산'을 멋들어지게 불러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드넓은 자연 속에서 힘차게 노래 부르던 그 남자는 분명 삶의 즐거움을 아는 멋진 사람일 것이다.

김연옥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멋들어지게 부르던 등산객.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멋들어지게 부르던 등산객.김연옥
황매산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단적비연수>와 MBC 드라마 <주몽> KBS 드라마 <서울 1945>가 그곳에서 촬영되었다 한다.

나는 그날 산행 들머리부터 우리 일행과 아예 떨어져 혼자서 느긋하게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해진 하산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모산재(767m,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로 하산하면서 기기묘묘한 모산재 바위들에 제대로 눈도 맞추지 못하고 허겁지겁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김연옥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천상병의 '귀천(歸天)'


황매산은 연분홍색으로 곱게 꾸며 놓은 하늘 공원 같았다.
황매산은 연분홍색으로 곱게 꾸며 놓은 하늘 공원 같았다.김연옥
지순한 사랑으로 아내에게 헌신하고 우리말을 사랑했으며 이 세상의 평화를 노래했던 '철부지'의 남기용 선생님. 이제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그도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것만 같다.
#황매산 #경남산청 #남기용 #철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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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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