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그녀들, 어디서 많이 본 듯

<핼로 애기씨>에서 <마녀유희>까지. 국내 로맨틱 코미디의 계속된 침체

등록 2007.05.15 10:00수정 2007.05.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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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혹은 정통멜로 등으로 대표되는 트렌디 드라마는 한때 안방극장의 대표적인 흥행보증수표였다. <질투>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에 이르기까지. 역대 로맨틱 코미디의 히트작들은, 모두 내로라는 스타 배우들과 감각적인 소재를 앞세워 당대 젊은이들의 변화하는 시대상과 문화적 코드를 잘 짚어낸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청춘드라마들의 약발이 예전만 못하다. 불과 1년전인 2006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궁>, <마이걸>같은 흥행작들이 20%를 넘는 시청률로 꾸준한 인기를 누려온 것과는 격세지감이다. <핼로 애기씨>, <마녀유희>, <궁-에스>, <케세라세라>, <사랑에 미치다>같은 올해 상반기 방영된 대부분의 멜로드라마들이 대부분 저조한 성적표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궁-에스>는 성공한 전작의 속편이라는 후광에도 불구하고 내내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쳤고, <사랑에 미치다>, <케세라세라>같은 작품들은 인지도 높은 스타배우들을 내세우고도 별다른 화제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마녀유희>는 종영이후 최근 시청률 부진과 관련하여 주연배우의 소속사가 보도자료를 통해 드라마 제작진과 작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초유의 사례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트렌디 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첫 번째로 다매체 다채널 환경으로 시청층이 다변화되고, 대중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속칭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로 불리는 수준 높은 해외드라마들을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면서 국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인터넷과 케이블의 발달로 예전처럼 지상파 TV의 본방 중계시간에 따른 시청률 집계가 큰 의미가 없어졌다. 방송가에서는 시청률에 관하여 고정팬층이 확고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가족드라마와 시대극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최근의 트렌디 드라마들이 '트렌디'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변화하는 사회상이나 젊은 시청자들의 코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시대는 달라졌음에도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물의 소재와 구성은 10여년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종영한 <궁-에스>나 <핼로 애기씨>, <마녀유희>같은 작품들의 경우, 기존 히트작들의 '짜집기 혹은 재탕'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식상한 설정들을 남발했다. 개연성 없는 이야기 구조, 과도한 삼각-사각관계의 남발, 주인공들의 '출생의 비밀'이나 신데렐라 스토리, 계약관계로 얽혀드는 구성 등은 완전히 새로운 드라마임에도 이미 '어디서 아주 많이 본듯한'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일례로, <핼로 애기씨>에서 '애기씨' 이수하의 캐릭터나 '종갓집' 계약을 둘러싼 갈등구조, 재벌 2세들과의 삼각관계가 얽혀진 전개 등은, 어딘지 모르게 여주인공 이다해의 전작 <마이걸>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녀유희>에서 채무룡(재희)이 마유희(한가인)의 연애·가사 도우미로 고용되는 과정, 마유희의 '마녀' 캐릭터 묘사나 우연이 반복되는 만화적인 이야기 구성 등은, <환상의 커플>이나 <쾌걸 춘향>의 장면들과 상당부분 겹친다.

스타성에 비하여 연기력이 검증되는 않은 배우들의 미숙한 연기는, 기존 캐릭터와의 차별화에 실패하거나 혹은 너무 쉽게 전작의 이미지에 편승하려는 안일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과거 <내 이름은 김삼순>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자, 한때 방송가에서 '솔직한 노처녀'캐릭터나 '요리' 소재의 트렌디 드라마들이 우후죽순으로 범람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작품도 원조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불변의 흥행 공식이나 스타 파워라는 것은 결국 허구이며,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검증된 기존 공식에 의한 재탕으로는 달라지는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국내 드라마가 아직 대중의 눈높이를 따라올 만큼,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소화할만한 전문 작가군이나 제작 노하우를 갖추지 못한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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