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정과 지석천이현숙
5분쯤 걸어가니, 비탈길 위로 마당이 보인다. 개가 짖기 시작한다. 왕왕 짖는 소리가 무섭다. 이 년 전 혼자 배낭여행을 하다가 개에게 물린 적이 있어 나는 개가 무조건 무섭다.
조심조심 정자를 향해 걸어간다. 여행객은커녕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정자. 광해군 때 양인용이라는 선비가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내려와 시문으로 벗들과 담소를 나누며 유연 자약한 여생을 살았다는 정자다. 마당 끝으로 지석천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정자는 어디나 뒤에는 산이요 앞에는 강이다.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 잡는 것이다.
전남 화순은 운주사만 보면 된다고 했던 우리, 화순에 큰 코 다쳤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달랑 관광지도 하나. 멋모르고 국도를 달리다 영벽정은 놓치고 환산정으로 향한다. 초행길인데다 시내 길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몇 번을 물어보고, 몇 번을 되돌아 겨우 환산정으로 가는 동네로 접어들었는데, 이건 가도 가도 좁은 오솔길이다.
울울창창 숲으로 싸인 길, 앞에서 차가 와도 피할 곳 없는 진땀이 나는 길이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이정표가 얼마나 반가운지, 또 카페나 음식점을 알리는 표시는 어찌 그리 많은지…. 천신만고 끝에 도착은 한 것 같은데, 눈앞에는 만발한 꽃에 둘러싸인 카페와 펜션뿐이다. 펜션 마당에 서 있는 주인인 듯한 남자에게 묻는다.
"여기 환산정이 어디지요?"
"환산정이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런 동네 사람도 모른다면 환산정은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 거야.' 자신 없는 차는 움틀 꿈틀 움직여 조그만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큰 건물이 있는 우측으로 돈다. '저기다.' 순식간에 터져 나온 외침. 거기 연록에 숨은 그림 같은 정자가 물 위에 떠 있다. 연록에 감춰져 간신히 형체만 드러낸 정자. 우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서성저수지 한 쪽에 그림같이 떠 있는 손바닥만 한 섬, 그게 환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