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도 기자실 폐쇄 반대, 초록은 동색?

정부의 브리핑 룸 통폐합 계획 비판, 보수 ·진보 구별 없어

등록 2007.05.21 15:39수정 2007.05.2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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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째 전철이 서지 않는 역이 있다고 한다. 5호선 마곡역이다. 발산역과 송정역 사이 공항로에 설치된 전철역이다. 서울시가 논과 밭에 일부 주택이 들어서 있는 마곡·가양동 일대 101만평에 대해 1990년대 초반부터 개발 계획을 구상했고, 마곡역 건립도 이런 계획의 연장선에서 지었는데, 아직까지 개발계획이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조선일보>(5월 21일자)는 그래서 이 곳을 '유령역'이라 불렀다.

정부의 각 부처에 마련된 브리핑 룸과 기사송고실도 기자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유령의 집'과 같은 곳이 많다고 한다. 기사송고실이란, 참여정부 들어 기자실을 브리핑 룸으로 전환하면서 기자들의 기사 송고 편의를 위해 놔둔 곳이다. 그런데 이 기사송고실이 과거의 기자실로 퇴행하고 있다.

과거 기자실은 기자들이 정부 보도자료를 기다렸다 베끼고, 기자들끼리 담합하고, 관료들과 한 통속이 되고, 그러다가 촌지도 챙기는 비리의 온상이었다. 신문의 차별성을 원천봉쇄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엄밀히 말해 사기업(私企業)의 영업(취재)활동에 국가기관의 공간과 시설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도 어폐가 있다.(지금은 물론 사용료를 받고 있는 곳들이 늘어났지만) 혜택을 받은 만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게 브리핑제도를 도입한 취지와 배경이었다. 특히 기자실 출입은 제도권 매체 기자들에게 기득권이 되어 인터넷 매체의 출현 등 변화된 미디어환경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브리핑제도의 도입은 시대적 추세요, 필연적이었던 셈이다. 당시 브리핑제도의 도입에 반대한 매체는 주로 메이저신문들이었다. 이 제도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기자들이 익숙해지는 등 정착돼 가고 있다.

무릇 모든 제도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되어 매끈하게 작동할 수는 없다.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면서 보완해가는 게 정상이다. 이번 브리핑 룸의 통폐합 계획도 그런 맥락에서 마련된 것으로 안다. 매일같이 뉴스가 쏟아지는 일부 부처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처의 브리핑 룸은 기자들이 매일 가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브리핑 룸을 통폐합하는 것은 상식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기사송고는 사기업의 영역이므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보수신문들이 트집 잡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한겨레>의 태도는 의외다.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지 못하는 건 보수·진보의 구별도 없는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닐까? 5월21일자 사설 '국민 알권리 경시하는 정부의 언론정책'에서 "정부의 이런 방안은 취재활동 위축과 국민의 알권리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걱정된다"면서 "정부와 언론의 접촉을 과도하게 제한하려 한다면 오히려 정보의 왜곡과 독점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표현은 상대적으로 완곡하지만 <조중동>의 주장과 내용적으로 다를 바 없다. 브리핑 룸의 통폐합은 취재활동의 위축이나 알권리 제한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면, <한겨레>도 기자들이 정부 부처 사무실을 자유롭게 출입하고, 밤에는 은밀히 만나 기사를 거래하는 게 정상적인 취재활동이고, 그게 알권리 신장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기사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의 퇴행적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생각은 무엇일까?

사설의 주장대로 "정부가 이번 조처의 시행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당사자인 언론 및 시민사회와 건전한 토론을 하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실제 브리핑 제도의 도입으로 취재활동이 위축됐는지, 브리핑 룸의 통폐합으로 취재활동이 더 위축되는지, 알권리를 제한하게 되는지, 정부와 언론의 접촉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인지, 정보의 왜곡과 독점을 심화시키는지, 보완할 점은 없는지 등에 대해 따질 필요는 있다.

그러나 <한겨레>는 이미 입장을 정해버렸다. 사설의 제목도 그렇고, 2면의 '정부 기자실 통폐합 논란'과 8면의 '정부 "기자실 통폐합"··· 언론단체·학계 비판 한 목소리'의 기사도 그렇다. 한 언론운동단체 활동가의 사견을 전체로 과장했고, 한 언론학 교수의 의견은 입맛에 맞게 써먹었다.

브리핑제도의 도입과 이번 정비 조치는 취재활동의 질서를 정립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무리한 점이 있다면 그만큼만 지적을 하고, 정보공개 등 병행해야 할 조치가 있다면 건의하면 된다. <한겨레>마저 이러면 누가 균형을 잡아줄 것인가?
#브리핑 룸 #기사송고실 #기자실 #참여정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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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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