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도 자전거를... 상주의 두바퀴 문화

[자전거 5색 여행2] 대한민국 자전거의 메카 '상주'①

등록 2007.05.25 18:32수정 2007.05.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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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오는 날 자전거 타는 사람들. 경북 상주의 자전거 문화는 비오는 날 도드라진다.

비오는 날 자전거 타는 사람들. 경북 상주의 자전거 문화는 비오는 날 도드라진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봄비가 내린 24일 오후 6시. 경북 상주시에서 가장 번화한 남성동 무양동 일대를 걸어 다녔다. 이런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앞서 상주시 자전거 담당 공무원에게 "비오는 날은 거의 안탑니다"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어렵지 않게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비를 맞고 그냥 타는 아주머니, 모자만 쓰고 타는 아저씨,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학생 등 거리 곳곳이 자전거 운전자였다. 공무원의 말은 '맑은 날에 비해서 적다'는 겸손이었거나 기대치를 낮추려는 조심스런 표현이었던 셈이다.

'자전거 도시' 상주에 대한 인상은 이렇게 뚜렷이 기억 속에 강하게 새겨졌다.

상주시가 자전거 정책에 소극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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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김대홍

흔히 자전거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은 유럽의 복지국가들이다. 네덜란드를 비롯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이 해당되며, 인근 일본도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에 포함된다. 모두 1인당 GNP가 상당히 높다. 높은 소득수준으로 인해 자동차의 불편을 크게 겪었던 과거도 똑같이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수단분담률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상주시는 이런 나라들과 성격이 다르다. 농가비율 전국 1위(41.9%)의 가난한 도시, 노령인구 비율이 21.2%인 초고령 자치단체, 인구 11만 2900여명으로 전국 지자체중 70위가 상주시의 현주소다. 문제는 인구는 점점 주는 반면, 고령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미FTA 체제를 맞아 이 농촌도시는 더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틀 동안 만난 공무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지자체 예산 순위 뒤에서 몇 번째", "관광 수익 전무", "인구 감소", "수익원 없음" 등의 말이었다.

a 자전거 타는 학생들. 상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학생들이다.

자전거 타는 학생들. 상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학생들이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서울시 면적의 2배가 넘는 지역(1254.72㎢, 전국 기초지자체 중 여섯 번째)에 있는 자동차는 겨우 3만5천여대. '교통 체증', '공기 오염', '주차장 부족', '교통사고 증가' 등이 상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서 자동차로 인한 도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다른 대도시와는 전혀 처지가 다른 것이다. '도시 교통 체증 한 해 11조, 자전거를 타서 공기가 맑아지니까 도시 경쟁력 상승' 등의 말을 여기서 내뱉으면 정말 '뜬금없는' 사람이 되는 이유다.


자전거 1일 교통사고의 경우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36.8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지금은 20건 안팎을 기록중이다. 그에 반해 상주시는 1일 3.3건에 불과하다. 전국 평균의 7분의 1 수준이다.

a 갓길이 없는 차도에서도 자전거 타는 시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갓길이 없는 차도에서도 자전거 타는 시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상주시가 자전거 정책에 관해 비교적 소극적인 이유는 그래서다. 상주시는 전국 최초로 만든 자전거 전담 부서를 최근 없앴다. 전국 유일의 자전거 축제도 2005년 이후 열지 않고 있으며, 올해는 자전거 관련 예산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대도시와 달리 상주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 도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혹시나 상주시청의 행정을 질타할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상주시'라고 말하고 싶다. 정부 주도로 자전거 문화를 만든 국내 모든 자전거 도시와 달리, 상주시는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가장 강력한 자전거 문화를 만들었다.

자동차와 자전거가 공존하는 도시

a 시외버스 터미널 입구에 있는 자전거 보관대.

시외버스 터미널 입구에 있는 자전거 보관대. ⓒ 오마이뉴스 김대홍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고 상주터미널에 내리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게 입구에 빼곡히 놓여진 자전거들이다. 이들 자전거들은 산악자전거(MTB)형이 대세를 이루는 여타 도시와 달리 20~30년 전 많이 타고 다닌 도시형 자전거(일명 신사숙녀용 자전거)가 주를 이룬다.

게다가 이들 자전거 앞엔 어김없이 바구니가 달려 있다. 장을 보거나, 물건을 살 목적으로 타고 다니는 실용 자전거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시내에서 자전거와 자동차가 조화를 이루며 달린다는 점이다. 상주 시내엔 자전거 전용도로가 거의 없다. 인도를 타거나 자동차와 함께 차도를 타야 한다. 횡단로 자전거 횡단 표시도 있는 곳과 없는 곳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인도를 타거나, 차도를 달린다. 그들이 자동차를 위협으로 생각하거나 자동차가 자전거를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자전거를 탄 시민들은 차도에서 둘 셋씩 짝을 이뤄 타기도 하고, 횡단로에서도 여유롭게 이동한다.

a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도 자전거도로. 흔히 잘못된 자전거 도로의 실패사례로 꼽힌다. 상주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전거 선진국 일본에선 인도에서도 자전거를 탄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도 자전거도로. 흔히 잘못된 자전거 도로의 실패사례로 꼽힌다. 상주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전거 선진국 일본에선 인도에서도 자전거를 탄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자전거 정책을 맡고 있는 상주시청 도시팀의 유헌종씨는 "시내에서는 자동차들이 자전거를 배려해 20km 정도 속도로 달린다, 양보 운전도 잘하는 편"이라라고 설명했다. 20km 속도 운운은 다소 과장인 듯 보였지만, 어쨌든 자동차와 자전거는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궁금한 점은 어떻게 자동차와 자전거가 조화로운 공존을 이루게 됐나 하는 점이다. 이 점을 알기 위해선 상주 자전거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상주는 1910년부터 자전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 보급된 일본산 후지 자전거 1대 가격이 쌀 10가마 상당이었으니 얼마나 고가였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곡창지대였던 상주는 경제적으로 꽤 넉넉한 편이었다. 자전거가 일찍 보급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a 상주시는 동쪽과 북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외곽자전거도로를 타면 낙동강과 시내 외곽을 둘러볼 수 있다.

상주시는 동쪽과 북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외곽자전거도로를 타면 낙동강과 시내 외곽을 둘러볼 수 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게다가 상주는 당시 경북선 철도가 지나고 낙동강 수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였다. 더구나 평균 표고가 70m 내외의 평탄한 분지형으로 시가지가 5% 이하의 완만한 경사지라는 점은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전거 문화는 거의 100년을 이어오면서 하나의 흔들리지 않는 문화가 됐다.

문제는 상주에도 자동차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자전거를 타던 사람이 자동차를 타게 되면 우리나라 대부분 도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상주의 자전거 문화도 흔들리지 않을까.

이곳에서 3대째 곶감농사를 짓고 있는 용희곶감의 조용희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자동차를 모는 인구가 늘고 있지만, 도심에선 여전히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

"이 곳 사람들이 자전거를 버리고 자동차를 타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자동차와 자전거를 함께 탑니다. 저만 해도 일 끝내고 집에 오면 근거리는 모두 자전거를 이용하는데요."

a 북천과 낙동강을 끼고 놓여 있는 하천 자전거도로.

북천과 낙동강을 끼고 놓여 있는 하천 자전거도로. ⓒ 오마이뉴스 김대홍

자전거 문화가 여전히 강력한 이유엔 상주시의 도로 구조도 한몫을 하고 있다. 상주시 도로는 좁아서 좀처럼 속도를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상주시내는 대부분 왕복 4차선으로 제한속도가 40~60km 정도로 제한돼 있다. 도로 폭을 좁히고 일방통행로를 만들어 자동차를 막은 유럽 자전거 선진국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시팀 도시정비담당직원인 임용래씨는 "도로가 좁고 꺾어지는 길이 많아 도심에선 오히려 자전거가 편리하다"고 말한다.

자전거 관광 프로젝트 가동 중

a 낙동강길. 이 다리 부근에 자전거박물관이 신축될 예정이다.

낙동강길. 이 다리 부근에 자전거박물관이 신축될 예정이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상주시의 자전거 대수는 8만 5천대. 모든 가구당 자전거가 2대 이상이다.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더 많은 우리나라에선 이국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의 자전거 문화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자연스런 흐름으로, 지역에 큰 이익을 주진 못하고 있다. 이 점이 상주시 공무원들이 가장 고심하고 있는 점이다.

전국 곶감의 60%를 생산하는 상주시의 상징은 곶감과 누에고치, 쌀이다. 이 3개를 합쳐 '삼백'(모두 흰색을 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중 한해 매출액이 1000억원에 이르는 곶감은 상주의 가장 큰 수입원이다. 자전거인들은 서운할지 모르지만 상주시 입구 표지판엔 '명실상주'와 '상주곶감'이란 문구만 새겨져 있을 뿐이다.

지역민에게 주는 혜택에 있어 자전거는 어쨌든 곶감 다음이다. 이에 따라 상주시는 자전거를 더해 '사백'의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자전거 관광'을 계획 중이다.

낙동강을 끼고 도는 16km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지면 자전거 여행 인구가 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낙동강 자전거길의 극대화를 위해 자전거박물관을 낙동강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경천대 근처로 옮길 계획이다. 경천대에서 만난 관리소장은 "경천대, 사벌왕릉, 드라마 세트장, 자전거박물관과 낙동강자전거길이 만나면 좋은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주시가 국내 자전거 문화의 '메카'가 될지, 아니면 그곳 사람들만 꾸준히 타는 '자전거 도시'로 머무를지, 앞으로 관심 있게 살펴볼 일이다.
#자전거 #상주 #수단분담률 #삼백 #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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