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참붕어

암놈이 변심을 하면 수놈은 깨끗이 돌아서

등록 2007.05.26 08:56수정 2007.05.2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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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처(妻)의 공유제를 주장한 인류 최초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남자의 공유제이며 다부다처제이고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난장판 세상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자고 새면 강간 및 살인사건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울 것이다. 자유로움이 지나쳐 혼돈(Chaos)의 세계로 빠지기 쉬운 제도를 주창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물고기는 다부다처제이면서도 죽고 죽이는 싸움 없이 잘도 살아간다. 작고 여린 물고기로 민물의 참붕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붕어미끼로 주목받기 시작, 이제는 ‘월척 잡는 대어미끼’로 통하고 있다. 이놈은 우리나라 두만강·압록강부터 남쪽 끝까지 호수며 하천·도랑 등에 널리 산다. 일본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다. 일본에서는 모츠고(モツゴ)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노한어(老漢魚)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노한어란 늙도록 안정되지 않은 생활을 하는, 마치 한량 같은 신세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크기가 커봐야 10~13cm 정도이며 은빛 바탕색 그리고 비늘마다 뒤쪽으로 검은 색 반점이 있는 놈인데, 인공사료가 없던 옛날에는 잡아다가 닭사료로도 썼고 조려 먹으면 쌉쌀한 맛도 나는데, 이제는 낚시꾼들이 미끼로 쓰고 있으니 참붕어의 입장에서 보면 가련한 신세이다.

참붕어는 5~6월에 산란한다. 구름이 끼거나 비오는 날에 산란을 하는 습성이 있다. 산란기가 되면 수놈은 몸이 회흑색으로 변한다. 이 때가 되면 수놈은 맑은 곳의 물밑 바닥 중에서 자갈이나 조개껍데기 또는 굵은 모래가 있는 곳을 찾는다. 이런 곳을 찾으면 15~16cm 전후의 넓은 원형으로 자갈에 낀 물때를 깨끗이 청소한다.

이렇게 해서 산란장을 마련하면 암놈을 찾아가 암놈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온다. 암놈은 산란장을 살펴보고 산란할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산란은 바닥에 배를 대고 문지르며 산란을 위한 행동에 들어가고 이 때 수놈은 암놈 주변을 돌아다닌다. 암놈의 배에 제 배를 갖다 대기도 하고 암놈과 머리를 나란히 두고 배를 밀착시키기도 하는데, 이러다가 암놈은 엇비슷이 몸을 뉘면서 수놈의 처분에 맡기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모두가 일종의 구애행동인데, 이 때 다른 수놈이 다가오면 수놈은 필사적으로 공격하여 쫓아낸다.

이런 와중에 만약 암놈이 변심을 하면 미련 없이 산란장을 떠나버리는 수도 있는데, 이 때는 우리네 인간처럼 울고불고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신사적으로 헤어진다. 애정이 식은 여자에게 추근대는 추태가 없다. 산란장을 떠난 암놈은 다른 수놈의 산란장을 찾아간다. 암놈이 지독한 바람둥이인가, 아니면 숫놈이 바람둥이일까? 그러나 자연계에는 정조관념이 없다. 모두가 산란기이니까 암놈이 떠난 자리에는 곧 다른 암놈이 찾아오는데, 이 때 수놈은 그 암놈을 환영한다.

참붕어는 한 번에 300~400개의 알을 낳는데, 잔돌에 알을 붙여 산란하며 알은 돌에 달라붙는 점착란으로, 알이 수정된 지 10~12일이면 부화한다. 그러나 여러 마리의 암컷이 산란, 수정시켰으므로 알마다 부화시기가 다르다. 배 다른 형제들이 많은 것이다.


갓 깨어난 참붕어는 5mm 안팎이며 보통 9~10cm 크기로 자라려면 4년 정도가 걸린다. 참붕어는 상대가 여럿인 다부다처제의 혼인형태로 자유연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날이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 이루어지는 참붕어의 사랑과 이별, 그것은 참붕어의 유니크한 종족보전 행위이며 우리네 인간과는 다른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coe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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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및 중국 고대사 연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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