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노래를 만나다

노래하는 서예가 국당 조성주씨, 음반 <궤적> 취입 후 출시

등록 2007.05.26 19:43수정 2007.05.2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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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그룹 FAR EAST 쇼케이스 퍼포먼스를 하는 조성주씨 (롯데호텔 메가CC, 2007. 3. 17) ⓒ 조성주

처음 서예가, 전각가로 널리 알려진 조성주(57)씨의 음반 출반 계획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97년 금강경 5400여 글자를 전각으로 새겨 주위를 놀라게 하였고, 작년에는 캘리그래피전을 열어 가히 충격으로 몰아넣더니, 이제는 노래의 경계를 넘었다.

하긴 필획과 음률은 상통하나니 고저, 완급, 대소, 장단의 대비 효과가 뿜어내는 경계를 넘나드는 일에 어찌 노래인들 못할 것인가. 그래도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적어도 그에게 노래는 숙명과도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 숙명을 여는 일이 마음만 가진다고 되겠는가.

음반을 처음 받아들고 그의 궤적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 궤적 위에 오히려 앞으로 전개될 것들이 '오버랩'됐다. 밤늦게 퇴근하면 국당의 노래를 들었다. 듣다가 잠이 들기도 하였고, 나의 궤적에 대해 더듬거려 보기도 하였다. 그랬다. 그것은 그만의 '궤적'이 아니었다. 그의 궤적이기도 하고, 혹은 나의, 우리의 궤적이기도 하였다. 노래로서의 궤적이기도 하고, 서예로서의 궤적이기도 하였다. '궤적'이란 삶의 자취, 즉 흔적을 말한다.

지나쳐온 인생의 자취와 예술적 혼을 서(書)에서 음(音)으로 풀어내고, 다시 음(音)에서 서(書)로 치환하는 음반 <궤적(軌迹)>은 그의 '소리 나는 작품집'인 것이다. 이제부터 '음유서가(吟遊書家) 국당 조성주'의 '소리 나는 작품집'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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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을 수록한 아트북 <궤적>의 표지 ⓒ 조성주

음악의 문을 열다

그에게 있어 서예세계와 음악세계는 별도로 나눠진 장르였다. 음악의 연원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을 좋아했고, 또 잘했다. 음악에 심취했고, 어려서는 특히 농악을 좋아했다. 칠월칠석이나 백중 때 농악대 뒤를 따라다니며 흥에 겨워하는 타고난 음감을 지닌 그였다.

늘 음악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잠정적으로 멈췄다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는 음악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열정적으로 했다. 이때 음악에 대한 동경으로 통기타를 끼고 살았다. 음악을 동경하고 음악을 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시절은 길었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지천명을 훌쩍 넘겨버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예가가 되었고, 서예는 서예대로 열정을 바쳐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서예를 하고, 서예가로 자리매김 되면 사라질 줄 알았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욱 진해졌다.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났다.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색소폰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국악을 약 1년 했다. 판소리였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갈증은 다 가셔지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두 아들에게 음악을 시켜보려고 한 것. 장남과 차남을 모두 국악고등학교에 보내려고 큰 아들은 판소리, 둘째 아들은 대금을 시켰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여의치 못하였다. 서예라는 예술을 펼치면서도, 음악에 대한 미련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데 뮤즈의 신은 운명과도 같이 왔다.

그러다가 그에게서 서예를 지도받은 제자이자 가수활동을 하기도 했던 작곡가 겸 전문음악가인 월하 김홍주씨가 그의 노래에 대한 열정을 듣고 부산에서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05년말 곡을 일부 받고, 지난해 연초까지 신곡을 모두 받아, 4개월을 연습하여 4월 말부터 5월 13일까지 2주간 녹음을 다 마쳤다. 열정은 그렇게 폭발하였고, 그는 또 그렇게 음악의 문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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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당 조성주 씨의 글씨로 디자인한 2007 섬유패션대전 프리뷰 인 상하이 오프닝쇼 의상들 ⓒ 조성주

다음은 조성주와의 인터뷰 내용.

- 서예가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을 텐데 음반을 출반한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합니다. 음반 출반 동기는 무엇이고, 어떤 내용의 음반입니까?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래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하는 과정에서 그 중간에 세종문화회관 본관 전관에서 '캘리그래피전'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낮에는 방대한 규모의 전시 준비와 강의 지도, 밤에는 박사논문과 원고 쓰기, 음악을 병행해 나갔습니다. 녹음이 끝나던 날 가수 이광조씨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묻길래, 그 과정을 말했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한마디로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열정만으로 작업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10곡을 받아 이렇게 녹음을 하게 되었으니 지천명 중간에서 그 오랜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는 생각뿐이었던 것이지요."

- 그렇다면 기회가 오자마자 그것을 잡지 않으면 그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 것 같다는 염려조차 있었겠습니다.
"그랬지요. 사실 기회가 오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악조건 속에서 오로지 노래에 대한 열정만으로, 한마디로 무리할 정도로 연습했습니다. 서실에서 데모 음반을 컴퓨터로 열어놓고 연습하는 악조건 속에서 하루에 두세 시간씩을 조용한 야간에만 노래 연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녹음된 이 음반에 제 인생을 담아놓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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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서예가 국당 조성주씨 ⓒ 조성주

서예를 테마로 한 사상 최초의 '서예 사랑 노래'

작곡가를 만나서 10곡 가운데 5곡은 이미 만들어놓은 곡에서 선별하였고, 나머지 5곡은 성격에 맞추어 신곡으로 작곡하였다. 2곡은 국당 자신이 직접 가사를 썼다. '우리 어머니'는 늦은 아침을 어머니와 함께 겸상하다가 어머니 모습에서 한 많은 세월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2절까지 가사를 썼다. 10곡 중에는 아내에게 주는 '결혼 20주년'이라는 노래는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노래는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테마로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수록된 노래는 그가 애착을 갖는 것 중의 또 한 곡, '내 영혼의 거울'이라는 부제를 붙인 '서예 사랑 노래'다. 이 노래도 그가 직접 노랫말을 썼다. 한자문화권 동양3국에서 서예를 테마로 만들어져 불린 노래는 아직 없다고 생각된다.

- '서예 사랑 노래'를 어떻게 널리 알리고 홍보할 생각인지요?
"서예가가 서예 노랫말을 짓고 직접 부른다는 사실은 역사상 어느 곳에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예 사랑 노래'가 나왔으니 널리 알려야지요. 기회가 된다면 대중성을 위해 노래방 기기에도 넣으려고 합니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서예인들이 많이 불러주었으면 합니다. 현재 노래방 기기에 들어갈 예정인 곡은 세 번째 곡인 '신성리 갈대밭'과 '우리 어머니'입니다. '신성리 갈대밭'은 제 고향으로, 충남 서천에 있는 전국 3대 갈대 군락지 가운데 하나인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현재 타이틀 곡 '야속한 사람'과 함께 가장 반응이 좋은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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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파리에서 선보인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패션쇼. 조성주씨의 한글 작품 및 먹소스가 패션으로 승화되었다. ⓒ 조성주

- 이번 음반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음반 이름은 <軌跡(궤적)>인데, 제가 살아온 인생의 흔적입니다. 거기엔 어머니의 삶이 들어가 있고, 아내에게 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헌신하는 모든 어머니들과 아내들에게 드리는 노래입니다. 맨 뒤에 '고향생각'이라는 동요 한 곡도 있습니다. 시골 정서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어릴 적 정경을 읊은 토속적인 동요입니다.

원래 타이틀로 하려 했던 '여보게'는 12/8 박자로 요즘은 드문 노래인데, '여보게'는 '동행'이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요즘과 같이 힘들고, 금전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에 가슴 터놓고 얘기하고, 서로 위안을 삼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련'은 서로 간에 운명이라서 사랑으로서 맺어지지 못하는 슬픈 사랑을 노래한 곡입니다. 앞에서 설명하였던, 서예인들에게 희망과 힘을 주는 '서예 사랑 노래'가 있고요, '우리는'이라는 노래는 사랑으로 똘똘 뭉쳐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부부간의 사랑도 될 수 있고, 우리 모든 삶의 사랑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제가 왕년의 가수 배호씨를 좋아하는데, 배호씨 풍의 트로트 곡 '야속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곡이 이 앨범의 타이틀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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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주 씨의 음반 <궤적>에는 12곡의 신곡이 수록되어 있다. ⓒ 조성주

기교 배제한 담박한 음색

첫 번째 앨범의 노래들은 한결같이 기교를 뺀 담박한 음색으로 불렀다. 그래서 처음에는 싱거운 맛이 날 수도 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진한 감동이 인다. 7080세대들은 그 당대의 노래에 대한 향수가 있다. 조용한 카페에서 삶을 음미하면서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곡도 그렇게 선택되었고, 음색도 그렇게 처리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처음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갈증, 아쉬움, 미련 등이 남아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국당은 애초에 음악의 길을 갔다면 가수나 기타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흥이나 신명이 선천적으로 내장되어 있어 보인다. 노래방에서도 5곡 이상 10곡 가까이 불러야 노래 부른 것 같다고 한다면, 신명이 있지 않고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또 하나의 음악인의 기질이 있으니, 관객이 없으면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객이 많으면 그의 끼는 발산을 더 하게 된다고 귀띔한다.

녹음할 때는 녹음 자체를 위하여 에너지를 발산하였을 텐데, 이제는 공연무대를 만들어 발산해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 기사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서예가, 전각가로 널리 알려진 조성주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전각학회 이사입니다. 1997년에는 금강경 완각(전각)으로 97한국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서예와 디자인 접목을 통한 서예의 확장성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서예가, 전각가로 널리 알려진 조성주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전각학회 이사입니다. 1997년에는 금강경 완각(전각)으로 97한국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서예와 디자인 접목을 통한 서예의 확장성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성주 #이상봉 #캘리그래피 #궤적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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