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디자인을 만났을 때

서예가 조성주씨, 23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캘리그래피전> 열어

등록 2006.02.04 19:14수정 2006.02.0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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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꼭 한 달 앞둔 지난달 23일, 작가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작가가 전해주는 전시회 내용은 마치 '리듬'을 타고 나의 감정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듯하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대규모 개인전을 여는 작가 국당 조성주씨에게 "이야기를 부여하여,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그것을 경영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전체적으로 서사적 구조를 지닐 뿐만 아니라, "먹과 붓 터치만으로 대형 콘서트의 영상 스토리"를 능가하는 영상물을 재현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럴 것 같다. 먹 번짐이 지닌 스밈, 붓 터치의 강렬한 파동은 하나의 생물(生物)이 되어 관람객의 심중으로 물 밀어갈 것이다. 이러한 영상적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인터뷰에 임하는 내내 기자는 리듬을 타면서 그의 말 속으로 몰입되어 갔다.

조성주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국당 조성주씨의 세 번째 개인전 <캘리그래피(calligraphy) 展 - 필묵의 자유여행>. 이 전시는 이미 오래전에 구상되어 있었다. 지난해 9월 9일,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10여 년 전부터 서예와 전각만이 가진 독특한 요소들을 디자인에 접목시켜 보고 싶은 생각과 열의를 품어왔다"라고 전시 계획을 간략하게 밝힌 바 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포장(package), 간판, 섬유 문양, 로고타입, CI/BI 및 각종 미디어 룩 등 현대의 디자인 속에 캘리그래피 요소를 응용하였을 때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은맛과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표현해보고 싶어서"라는 전시 취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전시회는 '캘리그래피ㆍ디자인'이라는 주제를 지니고 있다.

서예가 디자인 속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갈 때, 이미 '서예'와 '디자인'의 선행 순위는 없어진다. 둘은 일체가 되어 포개어진다. 때로 서로의 몸을 빌려 확산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작가가 의도하는 "전통의 구속된 룰에 의하여 작업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스럽게 표현하여 그 가운데서 각종 디자인적 요소들을 찾아내보려 하는 것"을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게 된다.

서예작품-흙에서 자란 내 마음
서예작품-흙에서 자란 내 마음조성주
이번 전시회 작품은 크게 1, 2전시실에서 열릴 '서예술, 전통과 현대적 시각의 모색'과 3, 4전시실에서 열릴 '캘리그래피 그래픽 & 영상 아트'라는 두 유형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100여 점에 이르는 필묵 작품들로, 전통 한문 서예작품을 보다 조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과 전통 필법을 바탕으로 한 자유스러운 생활 속의 한글 작품들을 선보인다.

제2전시실에서는 먹 터치ㆍ먹 문양 100여 점을 선보이는데, 특수한 발묵기법과 붓 터치에 의해 제작된 현대 디자인의 바탕자료(source)인 점(點)과 선(線)들을 복합적으로 표현 연출한다.


여기에 필묵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다양하고 신비로운 창작 문양을 한글, 한문, 영어, 일어 등의 실생활 글꼴과 함께 조화시켜낸다. 전각 작품과 이미지 및 문자 등 실탁본도 전시한다.

그래픽(대형)-필묵
그래픽(대형)-필묵조성주
제3, 4전시실에서는 필묵과 전각 문자가 주(主)를 이루어 디자인적인 선, 도형, 화려한 색감과 함께 조화를 이루게 하고, 정형(整形)과 부정형(不整形)의 추상적 미감을 연출한다.

아울러 필묵선(筆墨線)과 각획(刻劃)의 확대 표현으로 미감을 배가시켜 관람객으로 하여금 파식(破蝕)적 미감과 신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특수한 기법으로 제작된 각종 형상 이미지 및 문자 이미지를 그래픽 처리하여 표현해낸다.

또한 전각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이미지 및 문자 등을 그래픽 처리하며, 붓과 각도(刻刀)가 화선지 및 다양한 소재와 석재(石材) 위에 만들어낸 인체 및 동물 이미지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영상으로 편집하여 상영하며, 먹의 번짐성과 농담, 운필과 운도(運刀)의 멋스러움 등을 비디오 아트로 제작하여 상영한다.

그래픽(중형)-조형물
그래픽(중형)-조형물조성주
그래픽(중형)-월드컵
그래픽(중형)-월드컵조성주
가히 숨이 막힐 정도이며, 그 연출력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금강경 전권(5400여 자)을 전각으로 10여 년간 완각, 전시하여 사계를 놀라게 한 바 있는 작가가 이번에는 전통 필묵, 먹 문양, 먹 터치 소스, 영어·일어 캘리그래피, 그래픽아트, 필묵동영상 등 매우 색다른 전시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이미 필거아트앤디자인(筆車Art & Design) 자문을 맡으면서 펼쳐낸 성과물들에서 충분히 예견하기도 했지만 호기심과 기대감이 크게 일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전통 필묵을 현대디자인과 접목하기 위한 각종 실험 작업을 방대하게 창안하여 시도하였다. 전통 필묵 및 전각작품들을 새로운 구도와 필법으로 표현하였고, 특히 한글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재창출하였다.

이와 함께 눈여겨볼 만한 것은, 최초로 공개될 예정인 약 300여 점에 이르는 각종 디자인의 바탕에 필요로 하는 천태만상의 먹 터치 소스(source)와 작가가 특별히 창안해낸 필묵 문양류 약 70여 점 등이다.

또한 수년간 작업해온 '그래픽 아트' 편에서는 필묵과 전각의 문자를 정제된 점과 선 및 도형과 조화시켜 디자인화시킨 작품을 선보인다. 이러한 점을 눈여겨보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관전 포인트이다.

서예작품
서예작품조성주
아울러 특수 기법으로 제작된 필묵 및 전각의 문자이미지와 형상이미지류를 컴퓨터그래픽 작업하여 함께 전시하고, 작가가 직접 채취, 촬영한 필묵 흔적의 동영상도 제작하여 함께 출품, 상영한다.

최근 창안해 낸 99% 순도의 순금을 이용한 서예작업을 시도했는데 이른바 순금도(純金塗)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순금도'는 서예와 공예가 반반으로 혼합된 것으로 금가루에 아교를 섞어 쓰는 '순금니(純金泥)'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작업으로, 제작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순금 천연의 고급스러운 광택을 뿜어내며 대자(大字)를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작가에게는 자신이 몸담았던, 몸담고 있는 세계와 지식과 경험이 창작의 '일차적 질료'가 된다고 할 때 조성주씨는 일차적 질료로서 '필묵'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질료를 유감없이 창작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미 알려졌듯이 작가는 학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였고,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출강 등의 질료를 적극 끌어들여 그 재능과 심중의 기획을 유감없이 표출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서예, 전각계뿐만 아니라 디자인계나 전공학생들까지도 상당한 관심을 두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작가는 올해 7월, 음반을 출반할 예정이라는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을 더 전해주었다. 이미 서예계 내에서는 노래 잘 부르기로 유명하지만, 단독 음반 출반은 빅뉴스임이 분명하다. 특히 원로 서예가 동강 조수호 선생의 시 '흑백의 진실'을 가지고 작곡한 노래는 서예인을 위한, 서예인의 노래가 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전각-태권도
전각-태권도조성주

덧붙이는 글 | 서예가, 전각가로 널리 알려진 조성주 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전각학회 이사이다. 1997년에는 금강경완각(전각)으로 97한국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세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회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여줄 캘리그래피와 디자인의 접목은 서예와 디자인의 확장성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 문의 : 011-773-9443

* 이 기사는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서예가, 전각가로 널리 알려진 조성주 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전각학회 이사이다. 1997년에는 금강경완각(전각)으로 97한국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세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회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여줄 캘리그래피와 디자인의 접목은 서예와 디자인의 확장성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 문의 : 011-773-9443

* 이 기사는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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