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 가는 길, 지금은 '복구 중'

기계장비 대신 목도로 재료를 옮기네

등록 2007.05.27 18:00수정 2007.05.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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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장마에 수해를 입은 봉정암 가는 길이 복구되고 있습니다. ⓒ 임윤수

봉정암 가는 길. 백담사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목을 많은 사람들은 '봉정암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백담사에서 너덧시간을 걸어 가야하는 먼 길이라고도 하고, 계곡을 건너고, 건넜던 계곡을 다시 건너며 힘들게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는 '고행의 길'이라고도 합니다. 힘들지만 다시 또 걷고 싶고, 다시 또 걷고 싶지만 쉬 엄두를 낼 수 없는 '갈등의 길'이라고도 합니다.

힘도 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쉬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은 어렵고 힘이 들어서만이 아니라 군데군데 복병처럼 숨어 있는 '위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봉정암 가는 길'을 걷다 보면 길이 아닌 길, 울퉁불퉁한 돌너덜이나 비탈진 바위를 걷게 됩니다. 바윗덩이고, 돌너덜이기에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발자국이 쌓여야만 만들어지는 게 길이니 길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수없이 오간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이 또렷하게 '길'이 된 곳도 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를 방황해야 할 만큼 생소한 곳도 적지 않습니다. 봉정암 가는 길은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힘들고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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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 가는 길, 비탈진 바윗길이기에 자칫하면 내동댕이쳐지듯 미끄러지면 다칠 수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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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겅 길이기에 자칫 잘못 디디면 발목을 접질려 구조를 받아야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돌들을 채우려는 듯 '돌'이라고 적혀있습니다. ⓒ 임윤수

봉정암 가는 길은 거리가 멀어서 힘들고, 오래 걸어야 하니 힘이 듭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정작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멀고, 오래 걸어야 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미끄러지거나 헛디딤에서 올 수 있는 부상이라는 '위험' 부담을 안고 걸어야 하니 마음이 조려오고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백담사에서 25리쯤 되는 거리니 무리라 할 만큼 먼 거리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가 깎아지른 듯 가파른 비탈길이 아님에도 봉정암 가는 길은 멀기도 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낭떠러지 절벽 위를 걷는 것도 아닐 텐데 무엇이 그리 위험하냐며 갸우뚱 고개를 젖힐지도 모릅니다.

노약자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산길

한국의 수많은 산길 중 봉정암 가는 길만큼 나이 많은 분들이 많이 다니는 길도 드물 겁니다. 젊은 등산객, 아니 젊지는 않더라도 산행을 즐길 만큼 건강한 사람들에게야 평탄한 산책길 같은 그런 길일지 모르지만 믿음만으로 찾아가는 많은 불자들에겐 그렇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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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아주 위험한 계곡입니다. ⓒ 임윤수

'할머니'로 불리는 노보살님들, 아직은 젊지만 평소 별다른 운동이나 산행을 하지 않은 여성 신도들에게 있어 봉정암 가는 길은 벼르고 별러야만 갈수 있는 먼 곳이며 마음의 귀의처요, 심신의 목적지입니다.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지나 수렴동대피소까지 이어지는 초입 길 대부분은 한적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걷기에 딱 좋은 오솔길입니다. 옥수보다도 더 푸르고 맑은 물이 흐르는 끝없는 계곡, 속상한 마음까지 깡그리 잊게 하는 맑은 바람, 타박타박 걷기에 딱 좋게 평지에 가까운 울창한 숲길입니다.

수렴동대피소를 지나서도 가풀막지거나 낭떠러지 같은 위험한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군데군데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윗길이며 너덜겅 계곡이기에 흔적이 사라집니다. 평편한 바윗길도 있지만 몇몇 바윗길은 물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비스듬한 비탈길입니다.

그러니 자칫 발을 헛디디거나, 아니 헛디디지 않아도 풀쩍 미끄러지기 십상입니다. 날이 궂어 습기가 있거나 비라도 나려 바위돌이 촉촉이 젖어 있는 날이면 대책 없는 미끄러움 때문에 내동댕이쳐지듯 발라당 나뒹굴기도 합니다. 듬성듬성한 돌덩어리를 큰 걸음으로 건너거나 올라서야 하니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다리를 벌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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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채기처럼 남아 있는 수해 현장, 그 무너진 다리를 대신해 세운 외나무다리가 보입니다. ⓒ 임윤수

바윗길은 바윗길대로, 너덜겅 길은 너덜겅 길대로 위험합니다. 나뒹굴어 생채기가 생기고, 다리를 접질려 절뚝거리며 걷거나 심지어 누구가가 구조해 줘야만 위험을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경우도 생깁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지만 긴장하게 되고, 먼 거리를 걷다 보니 연약한 노보살님들이나 아주머니들에게는 무리일 수도 있고 위험하기도한 길이 됩니다.

흙길이라고 해서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니 흙이 패이고, 흙이 패이니 땅속에 있어야 할 나무뿌리가 앙상하게 드러납니다. 그렇게 드러난 나무뿌리는 사람들 발에 밟히고, 밟힌 나무뿌리는 죽어가거나 생채기 투성이를 한 안쓰러운 몰골이니 보는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생채기투성이가 된 봉정암 가는 길은 보수 중

위험하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더듬거리며 찾아갈 수 있던 봉정암 길도 강원도 일대를 휩쓴 2006년 장맛비에 끊어지고 사라졌습니다. 아름드리나무가 떠내려가고, 철교마저 무너졌습니다. 끊어지고 떠내려가다 보니 험했던 길은 더 험해지고, 미끄럽던 비탈길은 더 미끄럽게 되었습니다.

돌다리를 놓고, 외나무다리를 놓았지만 설악산 특성상 조금만 비가 와도 계곡은 위험합니다. 급한 경사, 돌뿐인 계곡이나 보니 언제, 어떻게 밀어닥칠지 모르는 급류가 인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길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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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 너머로 복구중인 튼튼한 다리가 보입니다. 둥그스름하게 원형미를 보기가 좋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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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발을 디디고,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었던 비탈길에는 선반처럼 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고 위험에 노출된 봉정암 가는 길이 새롭게 보수되고 있었습니다. 작년 10월 말에 다녀온 후 거반 7개월 만에 다시 봉정암 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봉정암 가는 길 여기저기서 보수가 한창입니다. 쓸 수 있는 다리는 보수를 하고, 무너진 다리는 다시 세우며 전 구간에 걸친 보수가 한창입니다.

참 야무지게 보수됩니다. 돌을 쌓아 길을 만들고, 계곡을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고 있었습니다. 천혜의 자원 같은 설악산 계곡에 길을 보수하고, 다리를 놓는다고 하니 언뜻 환경파괴가 떠오를지 모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시멘트를 덕지덕지 발라서 만드는 그런 길도 아니고, 불도저를 가져다 커다란 길을 뻥뻥 뚫어대는 그런 길이 아니었습니다. 망가지거나 훼손된 길은 주변에 있는 돌을 쌓아올려 복구하고, 미끄러지는 비탈길에는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선반 같은 통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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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현장에서는 기계장비를 쓰지 않고 땀으로만 일하고 있었습니다. 5사람이 목도로 무거운 철 빔을 나르는 현장입니다. ⓒ 임윤수

허벅지가 뻐근해지도록 크게 다리를 벌려야 겨우 오를 수 있거나 내딛을 수 있었던 너덜겅 길에도 작은 돌들을 채워 편안하게 걸을 수 있으니 다리를 접질리거나 헛디딜 위험이 적었습니다.

돌길을 만들어 놓으니 쓸데없이 주변에 있는 애기나무나 풀들을 짓밟을 필요가 없습니다. 길을 가다 길을 잃으면 길을 찾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무 곳이나 밟아야 했었는데 이제 돌길이 또렷해지니 일부러 가 아니라면 주변의 초목들을 짓밟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짧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에 흙이 패이고,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있는 평탄한 흙길에도 이렇듯 돌을 쌓는 것이 훨씬 더 주변의 나무들을 보호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너야 하는 계곡마다 세워지고 있는 다리도 아주 조심스럽게 시공되고 있었습니다. 설악산 계곡에 다리가 들어선다고 하니 청정계곡에 꼴불견처럼 들어서는 흉물정도로 연상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크기, 둥그스름한 형태로 무지개 형상을 한 인도교가 시공되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지탱하기 위한 작은 구멍을 바위에 뚫고, 뚫어진 구멍에 각봉을 넣어 교각을 세우고 있으니 실제적으로 다리를 세우느라 파괴되고 있는 부분은 미미할 정도였습니다. 구멍조차 뚫지 않고 다리를 세울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이 정도는 숫총각이 동정을 잃고, 처녀가 처녀성을 잃어야 엄마가 되고 아빠 되듯 안전한 길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파괴며 잃음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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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발길에 자연스레 흙이 파여 나가니 뿌리가 드러납니다. 이런 곳조차 아예 돌길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생각됩니다. ⓒ 임윤수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생산성만을 생각하였다면 헬기로라도 기계장비를 투입해 쉽게 공사하고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석수장이가 돌을 다듬듯 최소한의 장비를 이용하여 바위에 구멍을 뚫고, 너덧 명의 사람이 헬기로 운반된 원부자재는 목도로 운반합니다.

차근차근 발 맞춰가며 "어여~허차"거리며 무거운 철빔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후들거리는 그들의 다리, 휘청거리는 그들의 어깨, 뚝뚝 떨어지는 그들의 땀방울이야 말로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복구의 표어처럼 보였습니다.

환경과 안전이 도반 되는 길이 되길

생각과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겁니다. 환경만을 고집하고 환경만을 우선시하는 입장이라면 길을 다듬고 다리를 놓는 그 자체를 부정하고 반대하게 되겠지만,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 대청봉을 오르던 봉정암을 찾아가던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라면 '안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희생이나 파괴쯤으로 수긍 할 수 있을 겁니다.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이고, 자연의 가치이지만 그 어떤 경우도 자연 자체가 인간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우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기에 봉정암 가는 길은 조심스럽지만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 정도는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복구 작업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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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위험한 길이지만 '봉정암 가는 길'은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줍니다. ⓒ 임윤수

멀쩡해 보이지만 골병이 들어 골골 거릴 수도 있고, 생채기가 있는 듯하지만 건강할 수도 있듯 복구되는 봉정암 가는 길은 조금 훼손된 듯하나 건강한 길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아예 길을 폐쇄할 길이 아니라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안전한 길이 조금씩 갖춰지는 모습입니다.

가을쯤 다시 걸으려 하는 '봉정암 가는 길'에서 뚝뚝 흘리던 땀방울과 휘청거리던 그 발걸음으로 좀 더 안전하게 가는 가을을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석가탄신일(5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석가탄신일(5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봉정암 #목도 #설악산 #수렴동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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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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