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을 물들인 빼곡한 연등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이며 정성입니다.임윤수
산세의 경이로움에 취하고, 오색연등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니 텅 빈 허공처럼 무(無)가 됩니다. 무가 되니 생로병사가 없고, 생각도 없고,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미워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에서 겪게 되는 애별이고가 있을 수 없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서 오는 원증회고의 고통도 없습니다. 없는 게 없으니 번뇌도 없고, 없을 게 없으니 갈등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번뇌도 놓고, 망상조차 떨쳤었으니 찰나이긴 하나 성불을 이뤘을지도 모릅니다.
23일 오후, 깔딱고개를 올라섭니다. 꾸준하게 올라야 오를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거북바위를 지나 깔딱고개로 올라섭니다. 일주문도 없고 사천왕문도 보이지 않는 봉정암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면 일주문도 보이고, 사천왕상도 보게 됩니다. 숨이 턱턱 막히도록 올라서는 깔딱고개가 봉정암의 일주문이고, 깔딱고개에 있는 사자바위가 불법을 호위하고 있는 신장님이며 사천왕입니다.
사자바위는 그냥 바위가 아닙니다. 생김새도 사자를 닮았지만 오욕칠정 다 내려놓고 가라는 호령의 바위입니다. 사자바위 바로 옆쪽을 보면 발가벗은 여인이 마음을 유혹합니다. 아주 유혹적인 모습입니다. 볼록한 엉덩이 사이로 사타구니를 감췄고, 잘록한 허리춤으로 봐 호색이 만연한 그런 모습입니다. 삿된 욕정에 마음조차 뜨거워질 수 있는 야한 모습입니다. 바위를 바위로 보지 않고, 요염한 형상에서 삿된 음색을 그리는 그런 마음으론 들어갈 수 없는 곳임을 역설하듯 사자바위가 여체바위를 가로막고 서 있습니다.
호기심을 떨치고, 욕정의 뜨거움을 식히고 나면 봉정암쪽으로 포대화상의 웃음을 웃고 있는 바위부처가 보입니다. 음흉한 마음을 떨치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 부처상을 보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청정한 마음입니다. 두 눈 지그시 감고 있는 바위부처가 보이면 이제 봉정암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쯤으로 봐도 좋을 겁니다. 바위부처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오느라고 고생했다면 툭툭 어깨 두들겨 주듯 자애한 미소가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