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겸손할 때 멋져 보인다!

2007년 '아나운서' 정체성 논란

등록 2007.05.28 11:49수정 2007.05.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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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2일 프레스센터 <아나운서, 그는 누구인가> 세미나
2007년 5월 22일 프레스센터 <아나운서, 그는 누구인가> 세미나월요신문
2007년 현재, 과연 아나운서의 정체는 무엇인가? 또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오랫동안 텔레비전 속 아나운서는 지성미를 갖추고 바른말을 쓰며, 프로그램에 생명을 불어넣는 전문가 집단이었다. 그들은 연예인처럼 가볍게 인식되진 않았지만, 때로는 연예인보다 더 많은 인기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곤 했다. 보도 영역의 아나운서는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알권리'를 선도해 나갔고, 손석희씨 같은 전문 토론 진행자는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을 통해 이 시대 최고 '지성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아나운서는 점점 다양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단아한 차림과 바른 말씨가 아나운서들의 고정된 인상이라면, 요즘 그들은 재미있는 말솜씨에 야한 옷차림도 마다지 않는다. 사실 연예인이라면 쉽게 수용되는 이런 모습들이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파격'으로 비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시청자들은 '바른' 아나운서들의 파격(?) 변신에 즐거워하며, 더 큰 호감을 나타낸다. 일부 아나운서는 연예인보다 더 많은 팬을 가지고, 오락프로에 출연하기도 한다. 이들은 나아가 공채 아나운서라는 제약을 넘어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더 많은 프로에서 자신만의 진정한 끼를 뽐내기도 한다.

바야흐로 아나운서의 연예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나운서들은 변화하는 방송 시장에서 자신들의 설 위치는 어디인지, 전통적 아나운서상과 충돌하면서 혼란을 느끼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는 '아나운서, 그는 누구인가'란 제목으로 변화된 매체환경에서 아나운서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모색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아나운서들이 방송에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동시에 특정된 아나운서를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야기는 다매체·다채널 시대 등장으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경쟁심화 과정에서 뿜어져 나왔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단골 진행자였던 아나운서들은 이제는 유재석, 김용만 등 개그맨 출신의 진행자에게 밀려 몇몇 프로그램에서 모습을 확인할 정도다. 뉴스 앵커 자리도 마찬가지다. 오래전부터 공중파 3사는 뉴스 앵커 자리에 아나운서보다는 전문성 있는 보도국 내 기자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개그맨보다 웃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자들보다 전문성이 뛰어나지 않은 아나운서들은 '샌드위치'처럼 가운데 끼여 확고한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국민들은 여전히 아나운서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본다. 수려한 외모에 지적인 면모를 보이는 아나운서야말로 인간이 선호하는 가장 완벽한 모습에 가깝다. 특히 여성 아나운서들은 예쁜 외모만큼이나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언론들은 그녀들의 한시도 놓치지 않는다. 여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아나운서이며, 결혼 배우자로서 아나운서는 늘 상위직업이다.

집중조명을 받는 아나운서들은 좋은 프로그램과 만나 인기스타로 거듭나기도 한다. 얼마 전 현대가로 시집간 노현정씨 역시 KBS 2TV의 오락프로그램 '상상플러스'의 안방마님으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나운서로서 매력을 품고 좋은 가문으로 시집간 그녀의 이야기는 '신데렐라' 환상을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아나운서는 '신데렐라'가 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환상의 직업을 쫓아 매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편, 노현정씨처럼 은퇴를 선언하고 평범한 아내로 돌아가는가 하면, 일부 아나운서들은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인기를 유지하며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최근 프리랜서를 선언한 김성주씨와 강수정씨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공채 아나운서 시절 제한된 모습에서 탈피, 자신의 '끼'를 충분히 발산하고 있다. 더불어 공채시절보다 더 많은 부를 챙기며, 연예인 뺨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아나운서의 연예인화, 상업적 방송시스템과 인터넷 언론이 제공

토론자로 참석한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왼쪽에서 세번째)
토론자로 참석한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왼쪽에서 세번째)월요신문
지난 22일 아나운서의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 패널로 참여한 아나운서 출신 교수들은 이러한 '아나운서의 연예인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나운서들의 행위를 '변절'로 여기며, 최소한의 아나운서로서의 양심을 지켜주기를 당부했다. 아울러 방송시장에서의 아나운서의 입지 약화 원인이 시청률에 편승한 방송의 상업성과 이와 연계된 언론시장이라고 진단했다.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아나운서로 하여금 프리랜서 선언을 유혹하는 현실'의 이면에는 연예오락 프로그램 과다 편성에 따른 연예인 중복출연, 거대 연예기획사의 등장, 방송진행자 유형 다양화로 인한 아나운서 역할 축소,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가치관 변화를 꼽았다.

그는 "거대 연예기획사가 운용하는 스타시스템은 오락적 상품 가치가 있는 출연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며 "연예인과 차별화되는 상품적 가치를 지니고 또한 공중파 방송을 통하여 구축한 공신력을 무기로 하는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는 가장 손쉬운 영입대상"이라고 진단한다. 자본력을 앞세운 거대 연예기획사에 아나운서들이 맞설 힘은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김 교수는 "정형화된 이미지 탈피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현실도 아나운서에게는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읽는 집단(announcer)이 아닌 표현하는 집단(communicator)으로서 거듭나야 한다"며 "방송사내 다른 직종이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전문적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방송국의 재정적·제도적 지원도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주 교수는 아나운서 조직의 정체성 강화를 위해 프리랜서 아나운서에 대한 '전관예우' 폐지 등 방송사 제재안도 내놓았다.

강성곤 KBS 아나운서(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는 아나운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강력한 대안을 설파했다. 그는 독일 공영방송 ARD를 소개하면서 "궁극적으로 아나운서들이 편집·취재·제작 업무를 병행하는 '직종 통합'으로 가야 한다"며 아나운서의 경험 중시와 복수진행제 시스템 도입을 주장했다.

강 아나운서는 "프리 아나운서들의 문제가 '자제를 잃은 지나침'에 있다"며 "상업 자본주의 시대에 광고 계약 출연은 자유지만, '아나운서'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언짢은 기분을 내보였다. 그는 궁극적으로 아나운서의 언론인으로서 권위와 위상(어쩌면 '특권의식'으로 비치는)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미영 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매체가 아나운서의 스타화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오늘날 인기 여자 아나운서들은 스타라기보다, 상업화 세력에 의해 스타화되고 있는 존재"라며 "언론매체는 아나운서의 스타화를 부추김으로써 수용자 관심 유도라는 상업적 목적에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특히 인터넷 매체와 포털의 영향력이 아나운서 위상과 관련한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다고 진단한다. 인터넷 매체의 아나운서에 대한 기사가 '신변잡기'에 그쳐 대중으로 하여금 아나운서 이미지를 소비하도록 조장했다는 것이다. 오미영 교수 역시 전통적인 시각의 아나운서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아나운서의 권위와 자부심이 잃어 가는 현재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아나운서 위상하락의 원인과 재정립'에 몰입한 다른 토론자와는 달리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은 "현실 그대로 받아 들이라"는 '왕따' 의견을 홀로 펼쳐 눈길을 끌었다.

전 소장은 "2007년 아나운서들은 '공정성'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 시장의 힘, 자본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코드가 아나운서의 균질적 아비투스, 동질적 사회관계를 '개별화·파편화'시켜 아름다움과 속됨이 공존한다"며 "10년 전 볼 수 있었던 아나운서 아비투스의 순혈주의·순수주의는 종말을 고했다"고 언급했다. 전 소장은 "이것은 엄연한 현실법칙으로 '고용의 안정이나 지상파 아나운서로의 자부심'만을 내세우기에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위 몇몇 '뜬' 프리랜서들에 대한 '불쾌감'과 '자존심'의 상처, '기획사의 입김'과 '전체 방송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아나운서 스스로 다중에서 말로써 알리는 반성적 작업을 기대한다"며 내부의 자발적 공론화를 촉구했다.

전 소장의 발언은 아나운서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주연 MBC 아나운서는 전 소장의 '아나운서가 균일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집단'이라는데 일단 동의하면서 "아나운서가 어떠해야 하는 문제는 방송이 어떠해야 하는가와 맞닿아 있다"며 방송의 사회적 책임이 1차적이라고 반박했다. 강성곤 교수 역시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가야 하는가"라며 "지향점에 대한 고민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전 소장은 그러나 "아나운서에 대한 정체성 논의는 끝나버린 '아우라'에 대한 집착"이라며 "허위의식을 벗어 던지고 현실적 영역에서 성실하고 소박하게 진행하는 게 올바르다"고 말했다.

1년에 2명 뽑는데 2천명이 몰리는 문밖의 현실, 특권의식 여전

아나운서 지망생 김새롬씨가 질문을 하고 있다.
아나운서 지망생 김새롬씨가 질문을 하고 있다.월요신문
토론회에는 100여명의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참여해 현직 아나운서들의 고민을 지켜봤다. 질의응답시간에서 몇몇 학생들이 "특권의식을 버리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3년째 공채 아나운서를 준비중이라는 김새롬(26)씨에게 이번 세미나는 '겉만 번지르한 속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녀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5000여개의 아나운서 자리 중 하나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공중파를 제외한 대다수 아나운서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게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그녀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서 아나운서 직업의 일관된 통합과 업그레이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역으로 토론자들을 꼬집기도 했다.

오로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다는 김새롬씨는 한 언론사 기자를 거쳐 케이블TV 아나운서로도 활동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나운서에 대한 안 좋은 얘기만 들어서인지,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도 부정적인 얘기만 꺼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아나운서가 좋다"며 미소를 잃지 않는다.

지난해 SBS 아나운서 공개 채용에는 2070명이 몰렸다. 7차까지 가는 테스트 끝에 뽑은 인원은 고작 2명. KBS, MBC도 마찬가지다. 경쟁률은 해마다 1000대 1이 넘는다. 그럼에도 '아나운서' 하겠다는 지망생들은 넘쳐 나서, 강남 지역의 인기 아카데미에는 자리잡기가 힘들 지경이다. 수강비와 의상, 미용, 피부, 마사지, 심지어 성형수술까지 들여야 하는 돈도 4년간 부은 대학등록금을 거뜬히 뛰어넘는다. 그래도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아나운서'가 되기만 한다면, '막대한 비용'과 '몇 년째 백수의 시간'도 아깝지 않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울려 퍼진 현직 아나운서들의 '정체성' 모색은 그래서 '모든 걸 누리고 있는 자들의 배부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주간지 <월요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주간지 <월요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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