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자로 참석한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왼쪽에서 세번째)월요신문
지난 22일 아나운서의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 패널로 참여한 아나운서 출신 교수들은 이러한 '아나운서의 연예인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나운서들의 행위를 '변절'로 여기며, 최소한의 아나운서로서의 양심을 지켜주기를 당부했다. 아울러 방송시장에서의 아나운서의 입지 약화 원인이 시청률에 편승한 방송의 상업성과 이와 연계된 언론시장이라고 진단했다.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아나운서로 하여금 프리랜서 선언을 유혹하는 현실'의 이면에는 연예오락 프로그램 과다 편성에 따른 연예인 중복출연, 거대 연예기획사의 등장, 방송진행자 유형 다양화로 인한 아나운서 역할 축소,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가치관 변화를 꼽았다.
그는 "거대 연예기획사가 운용하는 스타시스템은 오락적 상품 가치가 있는 출연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며 "연예인과 차별화되는 상품적 가치를 지니고 또한 공중파 방송을 통하여 구축한 공신력을 무기로 하는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는 가장 손쉬운 영입대상"이라고 진단한다. 자본력을 앞세운 거대 연예기획사에 아나운서들이 맞설 힘은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김 교수는 "정형화된 이미지 탈피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현실도 아나운서에게는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읽는 집단(announcer)이 아닌 표현하는 집단(communicator)으로서 거듭나야 한다"며 "방송사내 다른 직종이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전문적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방송국의 재정적·제도적 지원도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주 교수는 아나운서 조직의 정체성 강화를 위해 프리랜서 아나운서에 대한 '전관예우' 폐지 등 방송사 제재안도 내놓았다.
강성곤 KBS 아나운서(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는 아나운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강력한 대안을 설파했다. 그는 독일 공영방송 ARD를 소개하면서 "궁극적으로 아나운서들이 편집·취재·제작 업무를 병행하는 '직종 통합'으로 가야 한다"며 아나운서의 경험 중시와 복수진행제 시스템 도입을 주장했다.
강 아나운서는 "프리 아나운서들의 문제가 '자제를 잃은 지나침'에 있다"며 "상업 자본주의 시대에 광고 계약 출연은 자유지만, '아나운서'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언짢은 기분을 내보였다. 그는 궁극적으로 아나운서의 언론인으로서 권위와 위상(어쩌면 '특권의식'으로 비치는)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미영 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매체가 아나운서의 스타화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오늘날 인기 여자 아나운서들은 스타라기보다, 상업화 세력에 의해 스타화되고 있는 존재"라며 "언론매체는 아나운서의 스타화를 부추김으로써 수용자 관심 유도라는 상업적 목적에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특히 인터넷 매체와 포털의 영향력이 아나운서 위상과 관련한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다고 진단한다. 인터넷 매체의 아나운서에 대한 기사가 '신변잡기'에 그쳐 대중으로 하여금 아나운서 이미지를 소비하도록 조장했다는 것이다. 오미영 교수 역시 전통적인 시각의 아나운서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아나운서의 권위와 자부심이 잃어 가는 현재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아나운서 위상하락의 원인과 재정립'에 몰입한 다른 토론자와는 달리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은 "현실 그대로 받아 들이라"는 '왕따' 의견을 홀로 펼쳐 눈길을 끌었다.
전 소장은 "2007년 아나운서들은 '공정성'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 시장의 힘, 자본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코드가 아나운서의 균질적 아비투스, 동질적 사회관계를 '개별화·파편화'시켜 아름다움과 속됨이 공존한다"며 "10년 전 볼 수 있었던 아나운서 아비투스의 순혈주의·순수주의는 종말을 고했다"고 언급했다. 전 소장은 "이것은 엄연한 현실법칙으로 '고용의 안정이나 지상파 아나운서로의 자부심'만을 내세우기에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위 몇몇 '뜬' 프리랜서들에 대한 '불쾌감'과 '자존심'의 상처, '기획사의 입김'과 '전체 방송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아나운서 스스로 다중에서 말로써 알리는 반성적 작업을 기대한다"며 내부의 자발적 공론화를 촉구했다.
전 소장의 발언은 아나운서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주연 MBC 아나운서는 전 소장의 '아나운서가 균일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집단'이라는데 일단 동의하면서 "아나운서가 어떠해야 하는 문제는 방송이 어떠해야 하는가와 맞닿아 있다"며 방송의 사회적 책임이 1차적이라고 반박했다. 강성곤 교수 역시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가야 하는가"라며 "지향점에 대한 고민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전 소장은 그러나 "아나운서에 대한 정체성 논의는 끝나버린 '아우라'에 대한 집착"이라며 "허위의식을 벗어 던지고 현실적 영역에서 성실하고 소박하게 진행하는 게 올바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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