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선생님이 살아계실 적 모습송춘희
지난 5월 25일 수필계의 대부이신 피천득 선생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평소 늘 욕심 없는 삶과 맑고 아름다운 시와 글을 많이 발표하셨던 피천득 선생을 봄이 한창이던 4월 19일 반포 자택에서 만났다.
1910년생, 올해 나이 98세. 한 세기를 살아온 우리나라 최고령 문인일 뿐 아니라 최고의 수필가이다. 그의 수필은 교과서에 소개되었기에 더욱더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편 한편의 글이 모두 진주와 같이 아름다운 글들이다.
'신춘' '조춘' '봄' 등 이렇게 유난히 봄을 많이 노래한 수필가 피천득을 찾아가서 그의 근황과 요즘 생활에 대해 들어 보았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둔한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곧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피천득 수필 '봄' 중에서)
-선생님께서는 유난히 봄을 많이 노래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난 거의 1세기를 살아온 사람입니다. 일제 시대의 고통도 겪었고 6.25전쟁도 겪었기 때문에 유난히 봄이 좋아요. 희망적이잖소?"
-선생님의 작품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으신지요?
"물론 춘원 이광수 선생입니다. 내 지식의 70%는 춘원선생에게 배운 것들입니다. 영어든 일반 상식이든 뭐든지요. 그분의 덕을 많이 받았죠. 다음으로는 주요한과 주요섭인데 상해 유학시절에 그분들 덕에 난 유학에 대한 스트레스나 어려움이 없었어요. 요즘 말로 든든한 백들이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아사코'를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수소문하여 찾았는데 선생님께서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던데 첫사랑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나도 궁금한데, 지금 그 아사코가 나보다 10살 아래인데 남의 부인이 되어 있을 텐데 내 욕심으로 그 사람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런 욕심이 화를 부르기도 하니까요."
-요즘 웰빙 시대라 해서 잘 먹고 잘 살자, 라는 주의가 많은데요. 선생님께서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난 이제 이렇게 많은 봄을 누리고 살았으니 어느 날 자다가 그냥 가는 것이 나의 큰 소원입니다. 어디 아픈 곳도 없이 그냥 잠들었는데 아침에 하늘나라에 가 있는 거요. 뭐든지 욕심안내고 남들 맘 편하게 해주는 것이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