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정말 '발악'하고 있는 걸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DJ가 '대통합 가이드' 자처하는 이유

등록 2007.05.29 10:29수정 2007.05.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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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발악하고 있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통합 주문에 대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평가다. "불쌍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를 바꾸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움직임에 대한 조소다.

하나하나 짚자.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있다. 한나라당의 분열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 하나다. 한나라당 경선관리위원회가 경선후보 등록일을 확정했다. 다음달 11일부터 13일까지다. 경선후보로 등록하면 탈당해 독자출마 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해온 "질서 있는 대통합"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것도 "이미 정해져 있는" 일 가운데 하나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위임된 통합전권 행사기간은 다음달 14일로 끝난다. 시일은 다가오는데 진전되는 건 없다.

적기 골라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DJ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다. 그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발악'을 하고 있는 걸까?

정계 은퇴한 사람이 왜 나서냐는 차원의 표현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판단기준을 따로 잡아야 한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의 성질이다. 상황이 "이미 정해져 있는" 수순으로 진행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까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는 이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전망했던 게 있다. 대선은 양자구도로 가야하고, 그렇게 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점을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 대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이미 예견된" 것으로 전환된다. 한나라당이 단일 후보를 내세울 것이니까 범여권 또한 단일후보를 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마지막)발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적기를 골라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적기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한나라당의 분열가능성이 사라지고 열린우리당 주도의 질서 있는 대통합이 물 건너가는 상황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장해온 양자대결구도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넓혀줌과 동시에 그것을 위태롭게 하는 요소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한나라당 분열 가능성 사라졌다

한나라당의 분열가능성이 사라진 점은 비한나라당 연합전선의 필요성을 강화시킨다. 열린우리당 주도의 질서 있는 대통합이 사실상 물 건너간 점은 비한나라당 연합전선의 추진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기회이자 위기다.

위기 요인을 없애고 기회 요인을 키우는 방향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면 귀착점은 역시 중심 세우기다.

열린우리당 주도의 질서 있는 대통합 무산이 공식 선언되는 순간 범여권은 혼돈에 빠진다. 갈래가 더 나뉘면서 범여권이 엉킨 실타래 꼴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중심이 필요하다. 갈래를 하나로 모아 끌고 갈 리더, 또는 갈래가 엉키지 않도록 교통정리를 해줄 가이드, 둘 중 하나가 중심에 서야 한다.

현재로선 리더의 분발을 기대할 수 없다. 유력 대선주자가 그 후보가 될 터인데 '유력한' 인물이 없다. 그나마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맨 앞자리에 놓일 수 있지만 그는 당분간 '불가근 불가원'의 자세를 견지하기로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서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가이드를 자임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주도의 질서 있는 대통합이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에서 범여권의 여러 갈래를 두루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무리는 아니다. 범여권의 여러 갈래 인사들이 앞 다퉈 찾는 곳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이다.

그렇다고 충분한 건 아니다. 두 사람이 남아있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대통합에 반대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통합 주문에 맞서 오히려 다른 말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합치는 식의 대통합으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말씀 드리겠다"고 한다.

기세가 대단하지만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박상천 대표의 '배제론'에 반기를 드는 당내 세력이 민주당원을 상대로 대통합 서명운동에 들어갈 참이라고 한다. 여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압박'이 가해지면 고립되는 쪽은 박상천 대표가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과 행동은?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압박'이 먹힐 여지가 없다. 위상으로 볼 때 수평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런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식 대통합'에 반대를 하면 상황이 어그러진다. 대통합이 아니라 잘해야 '중통합'에 그친다.

공교로운 점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지금이 적기이듯이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지금이 적기라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세를 따르겠다는 데에는 단서조항이 있었다. '조직의 명'과 '질서 있는 통합'이었다. 하지만 이 두 단서조항은 폐기 일보직전에 와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도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할 적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선택, 어떤 행동을 할지는 예견하기 어렵다. 양면이 공존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건 단서조항이 폐기되면 두 가지 전혀 다른 길이 모두 열린다. '내 맘대로' 대의를 좇는 길과 '어쩔 수 없이' 대의를 접는 길이다.

어쩌면 힌트가 될지도 모르는 보도가 있었다. <중앙일보>가 어제 내놓은 보도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양팔격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강철 정무특보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각각 만났다고 한다.

현재로선 이 만남이 최고의 관찰 포인트다. 실제로 만남이 있었고, 그 만남에서 대통합 얘기가 오갔다면 아직 문은 열려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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