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상인들 "IMF 때보다 더 힘들다"

[현장] 전국 상공인들 '대형 마트 확산저지 궐기대회' 열어

등록 2007.05.29 21:16수정 2007.05.30 14:08
0
원고료로 응원
a 대형마트 및 슈퍼슈퍼마켓(SSM) 확산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영세상인들은 2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모여 재벌계열 대형유통업체들이 슈퍼마켓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형마트 및 슈퍼슈퍼마켓(SSM) 확산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영세상인들은 2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모여 재벌계열 대형유통업체들이 슈퍼마켓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a 집회 현장에는 재벌계열 대형유통업체들의 슈퍼마켓 시장 진출을 규탄하는 피켓이 등장했다.

집회 현장에는 재벌계열 대형유통업체들의 슈퍼마켓 시장 진출을 규탄하는 피켓이 등장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미 재래시장은 말도 못하게 찌그러져 있다."

29일 오후 2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대형마트 및 슈퍼슈퍼마켓(SSM) 확산저지를 위한 전국 소상공인 궐기대회'에 참석한 김경동(53)씨의 말이다.

김씨는 충남 서산 동부시장에서 침구류를 팔고 있다. 대를 이은 가게로 60년이나 됐다. 4년 전 동부시장에서 1.5km 떨어진 곳에 롯데마트가 생긴 이후로 가게 매출이 1/4로 줄었다고 한다. 3남매 중 막내가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그는 "학자금 대출만 4번 받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동부시장에서는 예전처럼 부부가 같이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씨는 "남자들이 노가다, 학원차량 운전 등을 해야지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서산에는 대형 할인점 크기의 농협 하나로 마트가 공사중이고 이마트 역시 땅을 구입해 놓은 상태다. 그는 "이마트가 들어서면 상권은 죽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집회에는 중소 상공인 2000여명 몰려

김씨처럼 긴 한숨을 짓는 영세상인 등 중소 상공인 2000여명(경찰추산 1200명)이 모인 서울역에는 집회 시작 전부터 간간히 비가 내려 쌀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이내 풍물패가 분위기를 돋우었고, 곧 소상공인들이 모인 서울역 광장은 그 어느 곳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같은 열기는 서울역을 지나는 시민들의 발길을 이끌 정도였다.

집회 현장 주변에는 '삼성, 롯데에서 콩나물, 두부팔면 영세상인 다 망한다', '대형마트 확산저지' 등의 펼침막이 내걸렸다.


상인들은 '간판불은 꺼라하며, 홈플러스불은 왜 24시간 밝혀두나', '삼성, 신세계는 SSM 출점을 즉각 중단하라'등의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서울역이 떠나갈 듯 그들의 구호는 쩌렁쩌렁 광장을 울렸다.

"IMF 때보다 더 힘들다"

a 청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원종오(60)씨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청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원종오(60)씨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집회 대열 한 가운데에 앉아 열정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한 노인에게 다가갔다. 청주에서 30평 크기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원종오(60)씨다. 그의 한숨도 김경동씨처럼 길기만 했다.

이 지역에서 2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기 있는 원씨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임대료를 내기 위해 빚을 낼 정도다.

청주에는 현재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할인점 7곳이 들어선 상태다. 청주 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인 원씨는 "현재 3000개의 슈퍼마켓 중 1년에 200~300개의 중소 슈퍼마켓이 문을 닫고 있다"고 밝혔다.

원씨는 "IMF 시절부터 매출이 줄기 시작해 이제는 그때의 절반"이라며 "슈퍼슈퍼마켓이 들어오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원씨와의 인터뷰를 끝내자 연단에서는 상인대표들의 연설이 끝나고 의정부 제일시장 상인인 김기달(51)씨의 삭발식을 이어졌다. 김씨는 "대형 할인점과 영세상인의 관계는 헤비급과 경량급의 대결"이라며 "링위에서 공정하게 겨룰 수 있도록 정부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슈퍼슈퍼마켓의 위력은?

많은 상인들이 우려하고 있는 슈퍼슈퍼마켓은 이미 경기도 광명시장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명시장은 지난 1월 신세계 이마트의 첫 슈퍼슈퍼마켓이 시장 한 가운데에 진출해 상인들과 큰 마찰은 빚은 곳이다.

이곳에서 죽집을 운영하는 안경애(45)씨는 "이마트 광명점이 생긴 이후 매출이 20, 30% 급감했다"고 전했다. 안씨는 이어 "시장 상인들은 이마트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돌아가는 시민들을 물끄러미 쳐다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고 밝혔다.

"옆집 할머니는 평생 노점을 해서 모은 돈으로 야채 가게를 열었는데, 바로 광명점이 오픈했다. 할머니는 현재 2000, 3000만 원에 달하는 권리금을 날리게 생겼다. 그래서 드러누워 있다. 이마트와 파는 물품이 겹치는 가게 상인들은 현재 자포자기 상태다."

a 대형마트 및 슈퍼슈퍼마켓(SSM) 확산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영세상인들은 2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모여 재벌계열 대형유통업체들이 슈퍼마켓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형마트 및 슈퍼슈퍼마켓(SSM) 확산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영세상인들은 2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모여 재벌계열 대형유통업체들이 슈퍼마켓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벼룩의 간을 빼먹고 있는 것"

이날 집회는 가는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출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재벌계열 대형 할인점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대형 할인점이 슈퍼슈퍼마켓을 통해 골목상권까지 접수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회장은 "이로써 서민경제의 근간인 재래시장과 중소 슈퍼마켓이 초토화되고 있다"고 외쳤다.

집회에 참석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가게라도 제 값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메어 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소비자 돈을 긁어 본사로 보내는 대형할인점은 지역 경제 파탄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카드 수수료 인하'를 주장하는 상공인들의 목소리도 컸다. 송행선 전국상인연합회 회장은 "대형할인점의 카드 수수료는 1.5%인데 영세상인들 카드 수수료는 3.6%나 된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위원은 "(이는) 벼룩의 간을 빼먹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카드사의 이익이 한 해 6조원에 이르는 상황"이라면서 "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현실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는 ▲대형점포 활동 조정에 관한 특별법 통과 ▲지역경제 말살하는 대형 마트 및 슈퍼슈퍼마켓 출점 취소 ▲신용카드 수수료 즉각 인하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 낭독을 끝으로 4시 30분에 마무리 됐다.
#슈퍼슈퍼마켓 #할인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5. 5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