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렇게 힘들면 나는 누굴 믿어"

'구름'이 나아갈 길

등록 2007.05.31 14:00수정 2007.05.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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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들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뜻이 맞는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난 3월의 일이다. 그때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 한 명과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머리를 맞대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으며,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오갔다.


당신은 암 환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먼저 떠나 보낸 슬픈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암에 걸린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안타깝고, 걱정스런 마음만 가질 뿐 암 환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암 환자라고 해서 하루 24시간을 슬픈 생각만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된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친 뒤 의례적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한다. 항암에서 오는 고통이란 지난 기사에서도 설명하였듯 일반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고통을 넘어선다고 한다. 항암이 끝났다고 해서 씻은 듯 몸이 낫는 것이 아니다. 그 뒤로도 지속적인 고통과 불안, 다시 항암을 해야 한다는 공포까지 겹쳐져 암 환자들이 밝은 생각을 하는 것은 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환자를 바라보는 가족과 주변의 시선도 문제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수술을 한 뒤 항암 치료 속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일 눈물을 흘리셨다. 얼굴은 항상 어두웠고, 잠도 주무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저렇게 아픈데 어떻게 맛있는 것을 먹고, 마음 편히 잠을 잘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울상을 하고 식음을 전폐한다고 해서 아버지의 마음이 가벼워지고 병세가 호전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아버지도 공감하는 것이었다.

a 2006년 밝은 표정의 부모님

2006년 밝은 표정의 부모님 ⓒ 김호열

하루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들었다. 아버지는 항암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낮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계셨다. 어머니는 세상 모든 슬픔을 다 당신 안에 담은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더듬더듬 입을 여셨다.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 하면, 나는 누굴 보고 힘을 내나."


그래서, 어머니의 태도가 극적으로 변화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나도 여러 차례 어머니에게 그렇게 더 걱정을 하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을 하였으나 그때마다 어머니는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더 화를 내셨다. 물론, 걱정을 하고 근심스러워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환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식음을 전폐하면 보고 있는 환자의 마음이 가벼울 리 없다.

암에 걸리신 뒤로 아버지가 활력을 찾기 시작한 것은 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였다. 암 환자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온라인 카페나, 담당 병원 환자들의 모임, 기타 여러 암 환자들의 커뮤니티에 참여하시면서 아버지는 변화하셨다. 물론, 몸이 나아지기 때문에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으나 어느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두 가지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나와 친구들은 암 환자를 위해 '인식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인식의 변화라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다룰 수 있다. 첫째는 '암 환자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 두번째는 '암 환자 자신의 인식 변화'이다.

암 환자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란, 암에 걸렸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암이라는 질병이 우리 국민들의 주요한 사망 원인인 만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도 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암에 대해 너무나 피상적이며, 타인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낸 것은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향후 자신이 암에 걸리게 되었을 경우 복지 제도, 정책, 문화적으로 암에 관한 대우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손을 쓸 방법이 없다. 결국 암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당신과 나의 가족에 관한 일이며,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다.

암을 단지, 슬픈 영화나 드라마의 소스로 이용하거나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 암을 극복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암 환자들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암 환자 자신의 인식 변화란, 암에 걸린 이후의 삶에 대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환자들은 암에 걸린 뒤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단지 항암을 하고 약을 먹고 몸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을 뛰어넘은 것이다. 삶을 어떠한 관점으로 봐야 하는가, 어떠한 식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암 환자들이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한 뒤 홀로 쓸쓸히 방 안에 누워 자신의 몸이 쇠약해져가는 것을 느끼며 고통과 슬픔, 절망 속에서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을 열고 나가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고, 달려야 한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나누고, 웃어야 한다.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볼을 비비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야 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남은 시간을 지난 인생과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게 써야 할 것이다. 남은 삶이라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암 환자들을 위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보다 나은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해 우리들의 모임을 '구름'이라는 이름으로 정하고 '암 환자의 제2의 삶을 후원합니다'라는 이념을 세웠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것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좋은 일을 한다'는 것도 알고, '암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것도 알며,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만, 할 시간이 없었다. 취업을 하기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하고, 인턴을 해야 하고, 유학을 가야 했다. 그들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이 없었으며, 더러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올바른 마음으로[正心], 올바로 깨달아[正覺], 올바른 길을[正道], 올바르게 간다면[正行] 그것으로 충분했다. 누군가는 우리를 알아주리라. 언젠가는 결실을 맺으리라.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우리는 암 환자의 삶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구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우리는 암 환자의 삶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구름'입니다.
#암 #암시민연대 #구름 #암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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