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비겁했던 나를 고발한다

[특별한 5월]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하던지 노인의 날을 만들던지

등록 2007.05.31 14:21수정 2007.05.31 15:4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열병을 앓고 나면 아이들이 부쩍 성장한다. 열이 펄펄 끓는 동안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태어난 지 24개월째인 아들 녀석도 열병을 앓고 난 이후 어눌했던 말투가 제법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자리가 잡혔다. 그리고 눈치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래서 열 살 된 첫 딸 열병 걸렸을 때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첫 아이가 열병에 걸렸을 때, 초보부모인 우리 부부는 한마디로 '생쇼'를 했다. 장모님을 비롯,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 거는 것은 기본, 응급실에 달려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술에 취해 운전을 할 수 없었던 새벽에는 119구급대까지 불렀다. 무척 소란스러운 초보 부모였던 셈이다.

물론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고열에 시달리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 은근히 기대도 한다. '이 녀석이 다 나으면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라는. 그러나 역시 자식이 고통스러워하면 대신 아파 줄 수가 없기에 가슴이 아프다. 이것이 부모 마음이다.

부모 마음을 잘 알면서도 정작 난 가정의 달 5월에 비겁한 아들이 됐다. 비겁함을 느끼기까지도 과정이 필요했다. 이틀간 고열에 시달리며 생각에 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알게 된 '진실'이다. 일상에 쫓기며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살아갈 때는 느끼지도 못한 일이었던 것. 열병은 아이들만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 특히, 나처럼 철이 덜든 어른들에게도 필요함을 느낀다.

a

사랑 ⓒ 디자이너 최선미

올봄 모내기는 내 손으로 하려 했지만...

"모심을 때 잠시 다녀갈 수 있겠니?"
"응 엄마! 올 수 있어 열일 제쳐놓고서라도 와야지."

"그래 고맙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아버지하고 둘이 하기에는 힘에 부치더라."
"모심기 이틀 전쯤에 전화해 대충 일 정리하고 내려올게."

5월 6일, 어버이날 이틀 전에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에 내려갔다. 어버이날 가슴에 달아 줄 카네이션을 미리 전해주기 위해서다. 어머니는 전에 없던 부탁을 하셨다. 모심을 때 일손을 보태 달라는. 작년까지만 해도 일체 그런 부탁이 없으셨다. 본인들 일은 본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부모님은 올해 일흔아홉이다. 잔병치레 없고 건강한 편이지만 역시 농사를 짓기에는 힘든 연세다. 오죽 힘드셨으면 내게 부탁을 하실까 생각해 보니 가슴이 저려왔다. 아들 된 도리로 부모님 농사일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올해 모심기는 내 손으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카네이션을 드리기 위해 찾아온 조카 녀석도 "할머니 나도 월차 내고 올게 전화해"라며 기특한 소리를 한다. 찬란한(?) 사춘기를 보내느라 한때 가출까지 해 가며 속을 썩이던 조카 녀석이 그날은 듬직해 보였다.

어버이날 즈음해서 '효도방문' 차 고향집에 갔지만 돌아올 때는 되레 부모님 아쉬움만 가득 담아오게 된다. 텃밭에 있는 상추쌈 하나라도 더 뜯어 주고 싶은 부모님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할 줄 모른다. 이것저것 차에 싣다 보면 우리 가족 탈 자리마저도 빠듯해진다. 이쯤 돼서야 멈춘다. 어디 더 실을 곳 없나 찬찬히 살펴본 다음에야 부모님은 아쉬운 마음을 추스르신다.

"저녁 먹고 놀다가 천천히 가면 안 되겠니? 아예 자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거라."

객지에 살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를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아쉬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절실한 아쉬움은 몸짓과 손짓 그리고 눈빛에서 더 진하게 나타난다. 상추쌈 하나라도 더 주려고 몸을 움직일 때, 떠나는 차를 보며 손을 흔들 때,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물으시며 서운한 표정을 눈빛 가득 담고 계실 때.

이럴 때마다 내 마음도 무겁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짧은 노인의 비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프다. 얼마 안 남은 생애 동안 보고 싶은 것 실컷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 원 없이 만나게 해 주고 싶지만 내겐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는 것이.

손자 손녀 재롱 보며 살게 해주고 싶어서 고향을 떠나 도심으로 올 것을 권유해 보기도 했다. 부모님은 거절하셨다. 땅을 버릴 수가 없고 태어나서 80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날 수가 없다며. 더는 강요할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자식만큼이나 고향땅이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a

용서 ⓒ 디자이너 최선미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자

집으로 돌아와 일상에 빠져들자마자 고향집에 두고 온 부모님의 아쉬운 눈빛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 편리한 것이다. 절실하게 필요하면 떠오르기도 하고 당장 필요가 없으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모내기를 도와준다고 한 약속도 그렇게 일상의 늪에 빠뜨려 버렸다. 내게는 그리 절실하지 않은 약속이었기에. 부모님에게는 절실한 약속이었을 것이다.

"어린이날은 이제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면 좋겠어요. 요즘은 일년 내내 어린이날이잖아요. 예전처럼 헐벗고 굶주리는 일도 없을 테고…. 그보다는 노인의 날을 만들어서 공휴일로 지정하던지 아니면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제일 대우 못 받는 것은 노인들 같아요."

신부님의 말씀이 꽤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근자에 간혹 비슷한 생각을 하던 터였다.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어버이날과 가까운 일요일에 카네이션을 미리 갖다 드릴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버이날 아침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효도하는 척' 뽐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와 한 약속을 떠올렸다. 전화 올 시기가 지났는데 소식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5월 중순이면 한창 모내기를 할 시기다. 생각난 차에 전화를 했다. 벨이 여러 번 울려도 받지를 않는다. 논이나 밭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할 때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어머니 전화 왔는데 동네 사람들하고 며칠 전에 모내기 했으니 내려올 필요 없대."
"어 벌써! 왜 전화 안 하셨느냐고 물어봤어?"
"먼 거리 운전하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전화 안 했다고 하시던데."

아내에게 이 말을 듣고 '내가 먼저 전화했어야 했는데'라고 입 속으로 되뇌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나도 참 바빴어'라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 참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고령의 부모님들만 모내기시킨 죄스러움에서 난 이미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바빴다'는 핑계를 대고.

열이 펄펄 끓고 몸이 괴로우니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 비겁함에 대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욱신욱신 쑤시고 천정이 빙빙 도는 데도 마음은 편안하다. 부모와 자식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고 반성하라는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

난 언제나 부모님을 서운하게 한다. 그러면서 늘 가슴을 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의 짐을 덜어낼 명분을 찾는 데 골몰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서운해 할 것이다. 나도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알 수 있다. 내 아이들이 장성해서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서운할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비겁함을 스스로 고발한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한 달 내내 고령의 부모에게 비겁했던 나를 고발한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5월, 난 이렇게 했다' 응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특별한 5월, 난 이렇게 했다' 응모합니다.
#어버이날 #노인의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2. 2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3. 3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4. 4 이시원 걸면 윤석열 또 걸고... 분 단위로 전화 '외압의 그날' 흔적들
  5. 5 선서도 안해놓고 이종섭, 나흘 뒤에야 "위헌·위법적 청문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