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지시' 전하는 이야기, '우화'

[서평] 김태완의 <중국철학우화 393>

등록 2007.06.01 11:24수정 2007.06.0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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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태완의 <중국철학우화 393>

김태완의 <중국철학우화 393> ⓒ 소나무

김태완의 <중국철학우화 393>는 중국 고전 속의 우화들을 한 편 한 편 이야기로 풀어 놓았다. 중국의 '우언(寓言)'들에 지은이 나름의 해설을 붙이고 원문도 함께 담아 놓았다.

'불우한 생애'라는 제목 아래 '비읍불우(悲泣不遇)'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노인이 길가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행인이 연유를 물어보니 노인이 대답하기를, 젊었을 적 글을 배워 과거 준비를 했을 때는 나이 든 사람이 존중을 받아 기회를 못 만났고,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던 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들어서자 이번에는 그 임금이 무예를 숭상하여 길이 막혔고, 기껏 무예를 익혔더니 이번에는 무예를 숭상하던 임금이 죽고 젊은 임금이 들어서서 다시 젊은 사람을 중용하는 바람에 영영 기회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이 우화와 관련하여 자주 바뀌는 우리의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연결시킨다. 또 실력을 꾸준히 연마하지 않고 세태와 유행만 따르려는 줏대 없는 행동도 경계한다.

'착벽투광(鑿壁偸光)' 벽을 뚫어 불빛을 훔치다. 광형이란 사람은 집안이 가난하여 벽에 작은 구멍을 내어 이곳으로 들어오는 이웃집의 불빛에 대고 책을 읽었다. 또 책이 많은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일해주면서 책을 빌려 읽었다고 한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고사의 핵심이야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강조하는 데 있겠지만, 지은이는 이를 환경 요인에 의한 교육 격차, 학습 격차라는 차원에서 바라본다.

특히 모든 지식이 정보화되어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분되지 않는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아주 적거나 원천적으로 봉쇄된 경우에 학습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439쪽)

'착벽이통(鑿壁移痛)' 벽을 뚫고 통증을 옮겨주기. 어떤 사람이 다리의 통증을 참을 수 없어 식구들에게 호소한다. 어서 빨리 벽에 구멍을 뚫어 달라고. 영문을 모른 채 식구들이 이에 응하자, 이 사람은 급히 제 아픈 다리를 이웃집을 향해 나 있는 그 구멍으로 들이밀더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통증을 이웃집으로 보내서 이웃집 사람들을 아프게 하려는 거다. 이렇게 하면 다리 아픈 것이 나와 상관이 없어질 테니까."


이 이야기는 자기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행태를 꼬집은 것으로 읽어내고 있다. "이 우화는 자기 때문에 일어난 잘못된 일의 결과를 자기가 책임지지 않고 남에게 떠넘기는 부패한 관료를 풍자한 이야기이다."

우화 속 인물의 오류를 읽어낸다. '유녀배로옹(幼女配老翁)' 어린 아이를 늙은이에게 시집보내다니. 애자의 친구 우임에게 두 살짜리 딸이 있어 애자가 네 살짜리 자기 아들과 장래에 혼인시킬 것을 우임에게 청했더니 우임이 하는 말이다. "자네 아이가 네 살이고 우리 아이가 두 살이니까 자네 아이는 우리 아이 나이의 꼭 두 배가 되네. 만일 우리 아이가 스무 살에 출가한다면 자네 아이는 벌써 마흔이 되네. 자넨 나더러 우리 아이를 늙은이에게 시집보내라는 말인가?" 우임은 등차수를 등배수로 착각했던 것이다.


엽기적인 이야기가 있다. '기가성벽(嗜痂成癖)' 즉 부스럼 딱지를 맛있게 먹는 유옹이란 사람 얘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에서도 본 바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 <송서(宋書)> '유목지전(劉穆之傳)'이 그 출처다.

어찌 생각하면 사람들의 상처를 즐기고 부추기는 격이 될 수도 있으니 참으로 기괴한 성벽이랄 수 있겠다. 채 아물지도 않은 친구의 부스럼 딱지를 떼어먹고 심지어는 생각 없는 관리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채찍질하게 하고 그 부스럼 딱지를 공급 받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이를 두고 "기이한 성벽 때문에 상대방은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라고 풀어놓는다.

지은이는 "우화로 슬쩍 돌려서 때리면 맞는 사람도 통쾌하게, 또는 열없게 웃으며 의미를 알아차린다"고 우화의 묘한 힘을 말한다.

우화는 '넌지시' 전하는 이야기다. 대놓고 퍼붓는 공격이 아니라 은근히 꾸짖는 나무람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전하는 전달자나 전해 듣는 당사자가 직접적인 피해나 상처로부터는 보호된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말하는 자는 시원스럽고 듣는 자는 시큰시큰 아프다. 이야기는 달곰하지만 되씹는 뒷맛은 얼얼하다.

마치 똑똑히 잘 들었느냐, 제대로 알아들었으면 네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너 자신을 위해서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라는 듯 단단히 다잡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면 우화는 사람을 잡도리하는 노숙한 지혜란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김태완 / 펴낸날: 2007년 3월 30일 / 펴낸곳: 소나무 / 책값: 2만원

덧붙이는 글 * 지은이: 김태완 / 펴낸날: 2007년 3월 30일 / 펴낸곳: 소나무 / 책값: 2만원

중국 철학 우화 393 - 글쓰기의 보물창고

김태완 엮음,
소나무, 2007


#김태완 #중국철학우화393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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