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노 대통령이 '작심'한대로 될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위험한 정치경영... 후보단일화, 말처럼 쉬울 것인가

등록 2007.06.04 09:15수정 2007.06.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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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 특강을 마친뒤 환호하는 회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 특강을 마친뒤 환호하는 회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여기서 가릴 일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는 어차피 사법절차를 밟아 가릴 일이다. 하나에 집중하자.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심을 하고 말했다. "웬만한 보고는 올리지 말라"고 지시한 다음에 200자 원고지로 300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직접 쓰고 고쳤다. 심혈을 기울였다는 얘기다. 그래서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일의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생각의 총집합체"라고 평했다.

정수만 추출하자. '대통령이 갖고 있는 대선 전략의 총집합체'는 뭘까? 노 대통령 스스로 답을 내놨다. 반한나라당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 틀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 내용의 상당부분을 한나라당과 그 당 소속 대선주자들에 대한 공격에 할애한 건 자연스러우면서도 치밀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말한 반한나라당 구도가 대결을 위한 구도라면, 그 구도를 짜는 방식 역시 대결적이어야 하고 전투적이어야 한다.

'반한나라당'? 반노 구도가 다시 보인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어려운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과 마냥 싸운다고 해서 반한나라당 구도가 짜이는 게 아니다. 그 구도에 사람이 몰려야 하고, 몰린 사람들을 이끌 중심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없다.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이 오늘 합당(통합민주당)을 선언한다. 사람이 몰리는 게 아니라 분산되게 생겼다.


중심도 없다. 아니, 없는 정도가 아니다.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선주자가 아니라 노 대통령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래서 반한나라당 구도와는 별개로 반노 구도가 다시 성할 조짐을 보인다.

노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예견 못했을 리가 없다. 노 대통령이 연설을 하던 때에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합당 협상은 타결 초읽기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노 대통령은 "대통합을 위해 노력하되 그것만 믿으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후보단일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빠른 시일 안에 통합이 되지 않으면 후보를 내세워서 대세 경쟁을 하면서 대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계속 추진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전략"이라고도 했다.

분명해졌다. 열린우리당을 빨리 안정시키고 독자 후보를 내야 한다. 그래야 통합민주당 후보와 '대세 경쟁'을 할 수 있다. 이게 노 대통령이 말한 '안전한 전략'이다.

안전해지려면 방벽을 튼튼히 쌓아야 한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동참을 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쉬워 보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노무현 당'으로 왜소해질 것

a 김한길(오른쪽)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와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3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통합협상 막판 조율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한길(오른쪽)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와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3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통합협상 막판 조율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승렬

노 대통령 본인이 정치·선거의 전면에 나섰다. "장관 지내고 나가서 오로지 대선전략 하나만으로 차별화하는 사람들 보면서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닌가 생각했다"는 말까지 했다.

통합민주당은 '대통합'을 천명하면서 열린우리당 탈당파를 끌어들여 덩치를 키울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잔류 규모를 최대치로 잡는 건 어리석어 보인다. 열린우리당이 결국 '노무현 당'으로 왜소해질 것이란 예견을 낳게도 한다.

아닌 것 같다. 노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이 말했다. '차별화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그때보다 (자신의) 지지율이 조금 올랐으니 다시 와서 줄서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반노 구도는 성립될 수도 없고, 성립돼봤자 큰 힘을 얻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감의 근거가 뭔지는 묻지 말자.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차별화하려는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뛰쳐나가기 힘들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뛰쳐나가도 갈 곳이 없다.

통합민주당이 특정세력 배제론을 창당정신에서 빼기로 했다고 하지만 그건 문구의 문제다. 문구를 삭제한다고 해서 특정세력 배척 기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차별화하려는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뛰쳐나가 통합민주당에 몸을 실으면 "차별화 당하는 사람들"이 될 공산이 크다.

열린우리당도, 통합민주당도 아닌 제3의 길, 즉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모색할 수도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인 20명의 의원을 확보할 수 있느냐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런다 해도 1년 넘게 바닥에서 맴도는 지지율을 단박에 끌어올릴 수 있느냐도 의문이다.

후보단일화 경쟁에서 밀려도 '노무현 당'은 살아남는다

느긋한 사람은 노 대통령이다. 최악의 경우, 즉 '차별화하려는 사람들'이 뛰쳐나가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당'으로 왜소해진다 해도 사멸하는 건 아니다. 더 극단적인 경우, 즉 후보 단일화를 위한 대세 경쟁에서 밀린다 해도 '노무현 당'은 살아남는다.

후보 단일화가 본격 추진되는 단계에 이르면 한 표의 가치는 상승한다. 노 대통령 말대로 대선이 반한나라당 구도로 전개되면, 그래서 한나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근소해지면 한 표의 가치는 고평가 된다. 후보 단일화에 목말라 할 사람은 대세 경쟁에서 앞선 쪽이다. 그가 목이 말라 우물을 파면 땅값은 치솟게 돼 있다.

지분을 챙길 수 있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정치 경영을 발휘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살아남는다. 그럼 그 다음 일은 총선 때 고민하면 된다.

위험하고 공허한 측면이 있다. 이런 분석의 대전제는 후보 단일화가 성사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대전제가 가정이니 분석의 결론 역시 개연성의 범주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제 물을 때가 됐다. 후보 단일화, 말처럼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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