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호박죽정현순
"나 밥 싫어. 호박죽 줘."
"밥상 차려놨는데 죽을 달라면 어떻게 해. 저녁이니깐 그냥 밥 먹어. 차리기 전에 얘기하던지."
"난 죽 줄줄 알았지."
남편은 마지못해 밥을 먹는다. 밥을 반쯤 먹고는 다시 죽을 찾는다. 난 하는 수 없이 호박죽을 한 그릇 갖다 주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죽 그릇을 뚝딱 비워낸다.
어제(7일)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씻는 사이 난 저녁밥상을 차렸다. 씻고 나온 남편이 식탁을 보더니 죽을 찾는 것 아닌가. 그날 아침에도 죽을 먹고 나갔는데 저녁에 또 죽을 찾는 것이었다. 죽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좋아할 줄을 정말 몰랐다.
현관 앞에 있는 늙은 호박을 볼 때마다 "아무래도 저 호박 썩어서 버리겠다"하기가 일쑤였다. 그나마 날씨가 선선했을 때는 나도 썩을 거란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남편이 밖에서 먹은 점심이 체해 밥을 잘 먹지 못했다.
처음엔 흰죽을 끓여주다가 남편이 걱정했던 호박이 생각나 이틀 전 호박죽을 쑤게 된 것이다. 남편은 호박죽을 쑤던 첫날 저녁때도 두 그릇이나 먹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호박죽, 그날 저녁 퇴근해서 또 호박죽을 달라고 한 것이다. 죽 종류는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호박 죽만큼은 유난히 더 좋아한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