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없애자

[서평]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를 읽고

등록 2007.06.08 16:46수정 2007.06.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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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오전 8시 10분에 시작하여 밤 9시 40분에 끝난다. 3학년은 1시간 더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끝이 난다. 학교가 끝나도 많은 학생들은 다시 학원으로 몰려간다. 몇몇 아이들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어느 날 수업시간 물었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하지 않아도 잘 사는데, 혹시 우리가 쓸데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요. 특히 수학은 안 배워도 되요."

"그래 선생님도 수학은 배우고 싶은 사람만 배웠으면 좋겠다. 다른 과목도 배우고 싶은 것만 골라서 배우면 좋지 않을까?"
"에이, 그러면 아무도 수학을 하지 않죠."

"과연 그럴까? 그래도 많이 할 것 같기도 한데."


일요일 날은 우리 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한다. 칠순이 가까운 분과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모여 공부를 한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 중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신 분이 많다.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하지만 고작 고등학교 졸업장을 위해 쓸데없이 고생하신다는 생각도 든다. 그분들은 졸업장 없이도 잘 살아오셨고, 또한 졸업장을 가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이전의 삶과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학력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실력을 중시한다면 자기에게 필요한 공부만을 집중적으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도대체 행렬의 연산이나 미분과 적분 등이 모든 사람이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학이 그 정도로 모든 이가 알아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 하더라도 수학 공부는 학교에 다녀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뉴턴은 생업에 임하며 일과를 마친 후에 취미로 공부하여 미적분을 발견하였다. 이전의 위대한 수학자들도 학력을 가지고 수학적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다.


방송고등학교 우리 반 학생들은 선생님인 나를 부러워한다. 내가 가진 자격을 부러워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내가 가진 교원자격증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범대학에서 배운 것 중에 활용하는 것은 별로 없다. 학교 현장에서 나름대로 배운 것을 활용한다. 문제를 풀이하는 것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가 더욱 능숙했을지도 모른다.

책을 하나 소개한다.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 책의 제목이 도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이미 학교라는 종교에 빠져버린 것일 것이다.

저자가 살아간 시대는 30년도 전이지만 오히려 지금의 우리가 생각해야만 하는 내용이다. 본문 중에서 조금만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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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토

가난한 부모들은 자기들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자 하는 경우라도 아이들이 손에 쥐게 되는 자격증이나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돈에 대해, 아이들이 무엇을 학습하는가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 중산계급의 부모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배우는 것을 자기의 아이들에게는 배우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교사의 보호에 위탁한다.

교육학 연구의 성과에 의하면 아이들은 교사가 가르치고자 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을 친구집단, 만화, 우연히 관찰한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다만 학교의 의식에 참가하는 것에서만 학습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많이 알려지고 있다. 대개의 경우 교사는 학교 안에서 진행하는 그런 학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 이전에 대학은 개인의 언론자유는 지켜왔으나 개인의 지식이 자동적으로 부로 전환되는 일은 없었다. 중세에 있어 학자가 된다는 일은 가난한 자, 아니면 심지어 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의 직업적 성격 때문에 중세의 학자는 라틴어를 배우고, 농민이나 귀족시민이나 목사로부터 존경과 더불어 경멸까지도 받던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었던 것이다. (중략)

일단 학교를 필요로 하게 되면 우리들은 모든 활동에 있어 다른 전문화된 제도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독학한 사람들을 불신하게 되면 모든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활동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보게 된다. 학교교육의 가치 있는 학습은 학교에 출석한 결과 얻어지는 것이면, 학습의 가치는 배움을 받는 양이 늘어나는 데 따라 증가하고, 그 가치는 성적이나 증명서에 의해 측정되고 문서화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학교 없는 사회'라는 것은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관료화되고 제도화된 학교가 없는 사회이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나 무료로 쉽게 배울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는 사회,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학력이나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대학입학을 고등학교 졸업이나 동등의 자격 소지자로 제한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급속히 학교 없는 사회로 나갈 수 있다. 대학은 졸업장이 아닌 학문의 즐거움을 위해 진학해야 한다.

예전에 졸업한 제자를 마트에서 만났다. 그 아이는 전문대학을 졸업했지만 계산대에서 물건값을 계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 해 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 없는 사회 - 타율적 관리를 넘어 자율적 공생으로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생각의나무, 2009


#학교 없는 사회 #미토 #이반 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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