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과 생면을 넘치도록 넣고 끓여먹는 모리국수, 구룡포 향토음식이다.맛객
영일 군수 할래? 구룡포 수협장 할래? 물으면 거개가 수협장 하겠다는 시절이 있었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그물을 들어 올리듯 어업량이 넘치던 시절 이야기다. 천하의 '대게'도 걸리면 그물 망가진다고 해서 발로 밟아 바다에 버렸다고 하니 지천에 널린 게 물고기란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청어가 감당 못할 정도로 많이 잡혀 여기저기 걸어놓았는데 이것이 과메기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수산물이 대풍이었다. 그러니 일찌감치 번성할 수밖에 없었고 일제시대에 벌써 인천과 함께 읍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이 천혜의 수산자원을 거두기 위해 수많은 어선들이 바닷길을 냈을 것이다.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며 들어오는 어선은 사람과 돈을 구룡포로 모이게 했을 테지만 누구보다 힘들었을 선원들이 딴 열매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만선의 깃발을 올렸을까? 어쩌면 삶의 몸부림으로 그리 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몸부림은 선창가 선술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이기에 안식처일수도 있겠다. 독한 술로 지친 몸과 외로움을 달랬을 터. 그렇게 삶도 휴식도 원초적으로 살았을 그들에게 만선의 깃발 따위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미래의 꿈보다 당장 내일 아침 속 풀어 줄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 더 절박했으리라. 그런 그들이 오래전부터 즐겼던 음식이 있다. 큰 냄비에 해산물과 국수를 넘치도록 듬뿍 넣고 팔팔 끓이면 된다. 걸쭉한 국물에 속도 풀고 해산물과 국수로 요기까지 하였으니 이처럼 뱃사람과 안성맞춤인 음식이 어디 있었겠는가? 구룡포 사람들은 이 음식을 '모리국수'라 불렀다.
모리국수는 전통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