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6월항쟁 이후 20년간 기독교의 변화를 추적해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기독교는 6월항쟁을 이끌었지만 자신은 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발표자들의 결론이다.주재일
민주화운동을 하려거든 교회로 가라는 말이 통용되던, 기독교 입장에서는 황금의 시대가 있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통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웬만한 사회운동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독교와 맞닿는다. 교회의 우산 속에서 숨죽이던 사회운동은 1987년 6월항쟁를 거치면서 기지개를 폈다. 기독교는 6월항쟁을 최전선에서 이끌었고 든든한 지원군 역할까지 감당했다.
그렇지만 6월항쟁은 운동의 요람으로 군림하던 기독교의 위상이 흔들린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기독교는 6월항쟁 후 20년 동안 사회적 영향력과 도덕적 권위가 급격히 추락하는 동시에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최소한 6월항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진보 진영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최근 20년은 암울 그 자체다.
6월항쟁 이후 사회는 민주화됐는데, 도대체 왜 기독교 진영에서는 보수가 득세하는가.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기독교 진보 목회자와 학자들의 심정은 우울하다.
자괴감 묻어났던 강연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진보적 사회 세력의 활동 공간이 넓어지고 보수적 사회 세력이 위기감을 느끼거나 최소한 합리화를 추구하는 상황인데 반해, 기독교에서는 그와는 달리 역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최형묵)
"시대의 양심 위치에서 사회 진보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전락하고 이에 실망한 신도들이 천주교 등 다른 종교로 이동하는 암울한 시기를 맞이하였다."(김경호)
"미안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한국 신학계는 별로 한 것이 없다. 한국교회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학계의 노력이 아니라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일부 평신도운동에서 나왔다."(김상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지난 11일 기독교회관에서 '민주화 20년 비판과 전망 심포지엄'을 공동 주최했다. 발표자로 참여한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김상근 교수(연세대)는 지난 20년간 퇴행한 기독교의 현실을 각각 교회와 기독교사회운동, 신학 차원에서 분석했다.
김경호 목사는 "교회가 시대적 부름에 거슬러 움직인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었던 사립학교법을 지키겠다고 단체로 머리 깍은 목사들과 민족·자주를 소리 높여 외친 3·1절에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집회하는 기독교인들을 들었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수구 집단의 상징이 된 이유에 대해, 김 목사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선 한국교회의 보수화의 원인을 미국 보수 기독교계가 정치 전면에 나서 부시를 대통령으로 세우고 의회를 장악한 사례에 고무된 한국 수구 기독교인들이 미국의 경우를 흉내 내는 것에서 찾았다.
둘째, 김 목사는 기독교 개혁 세력이 정치권에 참여함으로 인해 발생한 교계 지도력의 공백이 한국교회의 보수화를 가져왔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해외 교회의 지원에 의존하던 진보 진영이 보수 교단이나 대형 교회를 끌어들이면서 진보운동의 정체성을 잃어갔다고 김 목사는 주장했다.
교회, 대형화 욕망 버리고 분가선교가 살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