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이제 '진짜 카리스마'를 보여주시죠

최민수가 해야 할 말은 "개나 소나 대출광고 찍어댄다"가 아닐까

등록 2007.06.15 11:11수정 2007.06.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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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최민수의 전성기는 뚜렷했다. 1990년대는 그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의 아들>의 '최강타'로 시작된 그의 연기는, <남부군>과 <신의 아그네스> 등에서 탄력을 받았고 그 강렬함은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에서 완성된다.

<사랑의 뭐길래>의 '대발이'도 그랬지만, 그를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모래시계>를 빼놓을 수는 없는 일. 최민수가 맡은 '박태수'는 그야말로 시대의 상징이었다.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이 삶에 모두 투영됐던 '박태수'는 최민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최민수의 '카리스마'는 거기서 완성된 것이다.

<모래시계>의 주제곡이었던 이오시프 코브존의 '백학'이 그렇게도 잘 어울렸던 배우 역시 최민수가 유일했을 것이고, 아마 누구도 재현할 수 없을 것이라 믿는다. 한마디로, <모래시계>는 최민수의 영광이었다.

하지만, 배우의 삶은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그에게 최고의 전성기를 안겨준 <모래시계>지만, 개인적으로 그에게 <모래시계>처럼 안타까운 계기로 작용한 작품도 없다고 생각한다. '007 시리즈'의 로저 무어를 떠올리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원작자 이안 플레밍이 적극 추천할 정도로, 로저 무어는 제임스 본드 그 자체였지만, 그 이후의 로저 무어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이미지 효과가 때로는 독이 든 성배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최민수도 결국 '박태수'를 극복하지 못한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도 친숙하게 연기했던 그가, '카리스마'의 틀에 갇혀버린 것이다.


진짜 카리스마란 무엇일까?

a <모래시계>에 출연했던 최민수

<모래시계>에 출연했던 최민수 ⓒ SBS

'카리스마'란,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이라고 한다. <모래시계>에서 완성된 그의 '카리스마'는 확실히 그런 의미가 강했다. 사소한 행동과 목소리만으로도 경외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 친구를 향해 빙긋 웃을 수 있는 그 여유에도 분명한 '무언가'가 있다.


카리스마는 의식한다고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대중이 원하는 강렬함을 천부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질이며,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선견지명이나 자신만의 비전이 뚜렷해야 빛날 수 있다.

로마시대 지도자들을 빗대 설명한다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카리스마는 '쾌활한 카리스마'였다고 할 수 있다. 강력한 라이벌 한니발은 '무언의 카리스마'였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경쾌한 천재의 카리스마', 아우구스투스는 '심모원려(深謀遠慮, 깊은 꾀와 먼 장래를 내다보는 생각)의 카리스마'였다.

최민수가 대중에게 제공한 '카리스마'는 "비운을 극복할 수 있는 품위있는 남성미와 힘"이었다. '박태수'라는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걸었던 길을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민수는 그때부터 '카리스마'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카리스마'가 '자뻑'으로 변하는 순간, 그의 모든 행위는 자살행위가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카리스마'는 본인이 의식한다는 것을 내비치는 그 순간, 더 이상 '카리스마'가 아닌 것이 된다.

최민수는 10여 년 가까이, '박태수'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그의 '카리스마'는 어느덧 개그의 소재가 됐으며, 그를 패러디한 개그 캐릭터 '죄민수'까지 나타났을 정도다.

최민수 스스로 '죄민수'에게 대단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지만, 사실 그는 그 시점에서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해야 옳았다. 그는 이제 40대 중반이다. 배우로서 뭔가 보여줘야 할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리스마'는 아무 행동이나 다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a '카리스마' 최민수가 대출 광고에 출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카리스마' 최민수가 대출 광고에 출연해 논란이 일고 있다. ⓒ 러시앤캐시

연예인들의 대부업 광고 출연이 논란이 되고 있다. 대부업 광고를 하고 있는 최민식은 여전히 비판받고 있으며, 김하늘과 최수종은 각각 광고계약을 해지하거나 깊은 사죄의 메시지를 남겼다.

대출 광고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커지는 시점이다. 성찰이 부족했다는 것을 반성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출연했다는 자체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현실이 됐다.

그런데, 우리의 '형님'은 그런 현실에서, 새로 '대출 광고'를 시작하는 뚝심을 선보였다. 그것도 부부동반이다.

그뿐일까? 처음에는 실루엣으로만 처리됐지만, 최근 정면에서 찍은 광고 이미지까지 공개됐다. '형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해가 많기에 내가 최민수인 것이다. 내가 단 하나라도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면 사람들이 이렇게는 못 했겠지. 나는 어느새 가장 자유롭게 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씹고 쳐도 망가져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는 것이 아닐까"

'형님'은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꾀를 쓰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 차라리 다 맞겠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남자의 행동에는 '뚝심'이 중요하다. 내가 하는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형님'의 말씀은 여전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뚝심에 앞서, 그 행동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력부터 살펴보게 된다. '형님'께서 선보이는 '뚝심'에는 상식적인 판단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무이자'에 대해 "누구 맘대로"를 이야기하고, "아무 이유 없어"를 말씀하신다.

형님께서는 오해하고 계신 게 아닐까? '카리스마'에 아무 행동이나 다 해도 된다는 의미는 없다. '카리스마'는 천부적인 자질 뒤에 고도의 계산도 깔아놔야 하는 것. 형님께선 아직까지 이걸 모르시고 계신다.

최민수가 해야할 일은...

물론 본질적으로는 '형님'의 잘못이 아니다. 진짜 잘못은 대부업에 대해 경솔하게 법을 만든 정책담당자에게 있으며,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정치권에 있다. 하지만 '형님'에게도 책임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남들은 발을 빼는 판국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용감하게' 발을 내딛으셨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진짜 '카리스마'는 할 말은 꼭 할 때 완성될 수도 있다. 언젠가 '형님'께서 "요즘은 개(Dog)나 소(Cow)나 연기한다"고 지적하셨을 때는 지지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1990년대의 '형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형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다는 것,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리꾼들이 '형님'에게 실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카리스마를 가진 '형님'이라면, "요즘은 개(Dog)나 소(Cow)나 대출 광고를 찍어댄다"고 한 마디 남기셨어야 했다.

'형님'의 건재를 알리려면, 좀더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했다. 거칠 것 없이 아무 행동이나 하는 '카리스마'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형님'을 보고 싶다. '형님'께서는 '대부업 광고를 반대하는 광고'에 출연하셔서 우리의 속을 시원하게 하실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따라 이시오프 코브존의 <백학>이 더 슬프게 들려온다. 그 노래의 진짜 주인공은 이제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민수 #러시앤캐시 #사채광고 #대부업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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