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없었다, 성과는 있었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뜨뜻미지근한 '대통령-언론인 토론회'에 대한 변호

등록 2007.06.18 15:10수정 2007.06.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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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7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의 토론회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의 토론회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어제(17일)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단체 대표들과의 토론회는 예상보다 토론의 열기가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토론회에서 몇 차례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늘 패널들 잘못 나온 것 같다"거나 "오늘 대화가 성에는 차지 않는다"는 대목이 바로 그렇다. "대통령을 바로 독재자로 몰아붙인 사람과 토론해 보고 싶었"는데 패널들이나 토론 내용이 그렇지 못해 성에 차지 않은 것이다.

토론회를 지켜본 다수의 신문사들 또한 성에 차지 않은 것은 노 대통령 이상이다. 대다수의 신문들이 사설 등을 통해 어제 토론회를 비난했다. 변죽만 울린 토론회였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잘못 나온 것 같다'고 언급한 '토론자'들이 동네북이 됐다.

<중앙일보>는 토론회 구성부터가 역시 성에 차지 않았다. "취재경험이 많은 현장기자가 불참"한 토론회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토론자들의 발언 내용도 함량 미달"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도 "대통령과 언론의 왜곡된 언론관을 전혀 따지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경향신문>은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데 집착한 것"이어서 어제 토론회가 "그 추진 배경과 과정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며 '원인무효'를 선언하기도 했다.

상당한 '합의'와 '성과'... 그러나 장벽은 높았다

어느 모로 보나 어제 토론회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게 돼 있다. 뜨거운 열기도, 또 재미도 없었다. 노 대통령이나, 노 대통령이 진짜 토론해보고 싶었던 '신문'들은 모두 성에 안 차 불만이다. 참석한 토론자들은 또 이쪽저쪽에서 모두 뭇매를 흠씬 두들겨 맞은 형국(진짜 뭇매를 맞은 토론자도 있기는 하다)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토론회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요즘 TV토론 중에서는 그래도 토론회다운 성과를 많이 낸 축에 들기 때문이다. 어제 토론과 그 후 과정을 통해 상당한 '합의'와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즉각 정보공개 제도를 개선하고, 브리핑룸 통폐합 등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취재 불편이나 정부의 취재 비협조 경향을 불식시킬 수 있는 '취재협조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브리핑룸 공사 등도 이 같은 합의에 따라 탄력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로서는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상당부분 관철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도 성에는 안찰지언정 전과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 스스로 밝힌 것처럼 가슴속에서 한이 맺힐 듯 했던 '억울함'을 국민들에게 직접 알릴 기회를 가졌다. 그 취지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를 가졌다. "대통령을 마치 독재자로 몰아붙인 사람"들을 아주 혼내주는 기회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언론단체 대표들로부터 "취지에 공감한다"는 암묵적 동의는 받아냈다.

대통령 '성에 찰' 토론자로 구성됐다면

a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주요 언론단체장들과의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주요 언론단체장들과의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물론 아직은 백지수표들이다. 보증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개적 '약속'인 만큼 부도날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고 하겠다. 어떻게 이런 '합의'와 '절충'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 그 답은 바로 노 대통령이나, 오늘 다수 신문 사설들이 지적한 것처럼 어제 토론회가 바로 '성에 차지 않게' 조직됐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제 만약 노 대통령의 '성에 찰' 토론자가 주로 참석했다면 토론회는 어떻게 됐을까. 또 오늘 <중앙일보>가 지적한 것처럼 노대통령과 청와대에 '맞장'을 뜰 수 있는 인물들이 토론자로 참석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뜨겁고 재미있는 '맞짱토론'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서로 '막가는 언쟁'까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다음엔? 오늘 신문에는 대통령과 신문이 펼친 '혈투'를 전하는 '검은 활자'들이 춤을 췄을 것이다.

청와대브리핑과 국정브리핑에는 신문들을 저주하고 규탄하는 '목소리'들로 또 꽉 찼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어제 토론회가 맥아리가 없고, 재미가 없고, 성에는 안찼을지언정 그래도 '효과'는 있었던 셈이다.

핏대만 올리다 끝나는 토론회는 이제 그만

그렇다고 어제 토론회가 잘 됐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토론자들 가운데는 언론·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그 모두 적합했는지 의문이다. 토론의 밀도 또한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제 토론회에서 중요했던 점은 노대통령과 한 판 '싸움'을 하기 보다는 '이야기'가 될만한 구성이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다른 TV토론도 이런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매번 서로 핏대만 높이다가 끝내는 그런 TV토론을 도대체 무엇 하러 그렇게 열심히 편성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어제 토론회에서도 노 대통령과 일부 토론자 사이에는 넘기 힘든 '골'과 '장벽'들도 확인됐다.

"좋은 기사가 정보공개에서 나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니"라는 노 대통령의 믿음과 "취재의 출발이 되는 기초적인 정보조차도 얻기가 너무 힘들다는 게 문제"라는 정일용 기자협회장의 반박, "기자들보다도 공무원들의 문제를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오연호 인터넷신문협회 회장의 지적과 "본질적인 문제는 기자실에 있다"는 노 대통령의 응답에는 현실인식의 차이가 뚜렷하다. 오늘, 그 서있는 자리가 달라서일까?
#백병규 #미디어워치 #기자실 #토론회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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