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파걸'이 아니다

베타걸을 이야기하려는 '알파걸 워너비'

등록 2007.06.19 16:54수정 2007.06.1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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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풍(女風)이 거세다. 여기저기서 '알파걸' 특집 기사를 내고 방송을 내고 책도 낸다. 여대생은 물론 여중, 여고생부터 일찍이 알파걸로 진입하기 위해 아우성이다. 단어 뜻 그래도 엘리트를 양성해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댄 킨들런의 <알파걸>은 베스트셀러에는 못 미쳐도 신드롬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나는 알파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 다니고 있고 남성성과 여성성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알파걸이 아니다. 항상 앞서길 좋아하는 알파걸'스러운', 알파걸 워너비 여대생이 바로 22살의 내 모습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알파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형 알파걸이라고 생각지않는다.

한국형 알파걸

한국형 알파걸은 사실 '언론'에서 비롯된다. 내가 아무리 '내가 바로 알파걸이오'하고 떠들고 다녀도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알파걸이 아니다. SK의 윤송이 상무를 비롯, 재계의 여성파워는 물론 소위 '여성대통령의 탄생'까지 거론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언론은 계속해서 알파걸을 뱉어낸다. 그래서 가끔 이 알파걸의 남용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활기차며 집안까지도 좀 괜찮은 여성"이 알파걸의 전형적인 문구로 인식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알파걸의 대표 브랜드로 등극한 미스코리아도 소위 웬만한 대학이 아니고서야 오르기 힘든 나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알파걸의 기사에는 항상 사진도 동봉된다. 이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그 평가 여부는 사진에 달린 댓글로도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더불어 네티즌의 평가는, 냉혹하다.

페미니즘, 그리고 알파걸

과거 여성성의 해방을 부르짖던 소위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지금의 알파걸에겐 일종의 신파극일 뿐이다. 지금의 한국 알파걸에게 페미니즘은 '자유로움'이다. 하지만 알파걸을 추구하는 가운데에서도 이 '자유'의 의미는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성(性)적으로 개방적이고, 또한 여기서 남성보다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마인드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 the CITY)의 장면을 줄곧 연상케 한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뉴요커를 알파걸로 인식하는 이들에게 이 드라마는 여섯 권짜리 교과서로 다짐된다. 그래서일까, 외국에 나가면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영혼 1순위가 한국여자라는 말까지 있는 것은. 그리고 이것도 또한 알파걸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인식까지 팽배한 것은. 이렇게 한국땅에 자리잡은 알파걸의 이면은 잘못 소화된 페미니즘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베타걸은 어떨까

2등을 소화하지 않는 사회가 한국 사회다. 모두가 알파걸을 부르짖으며 따라가느라 급급하다. 숨이 차고 정신도 없지만 그래도 알파걸을 좇아가겠다는 집념은 필자도 여타의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도 알파걸은 중요한 존재이다. 남자들은 얼핏 위기를 느끼고 여자들의 힘은 날로 기세등등이다. 나쁘지 않다. 자본주의에 경쟁사회라면 충분히 있어야 할 분위기이다.

하지만 과열 양상으로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여유'를 잃는 알파걸 워너비가 많다. 알파걸이 된 후에 한숨 돌리며 여유를 탐하고 싶지만 알파걸의 완성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숨 한켠 돌리고 베타걸은 어떨까. 2등의 비엘리트 의미가 아니라 알파걸보다 좀 더 여유를 아는 베타걸 말이다. 배불뚝이 알파의 형상 뒤에 숨어서 혹을 두 개나 달고 있는 베타이지만 베타도 소중한 존재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알파걸 워너비와 베타걸의 차이를 여유에서 두는 성급한 정의로 글을 마친다. 필자도 알파걸 워너비로 대학생활 2년 반을 살아왔다. 된장녀를 폄하하고 알파걸을 내세우는 토론을 하다가 잠깐 생각을 바꿔보니 알파걸의 맞은 편에 베타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베타걸은 알파걸 워너비인 내 앞에서 '여유의 상징'일지도 모르는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알파걸 #베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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