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정치관계법 개정안 제출권' 행사하라

[주장] 선관위가 시급히 행사야할 법률이 준 권한

등록 2007.06.19 18:04수정 2007.06.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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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위원회의 지위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으로, 제3공화국 제5차 헌법개정(1962.12.26)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1963.1.21일 헌법기관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의 선거관리위원회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3·15부정선거라는 말이다. 역사를 올바로 가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새삼 일깨워주는 구절이다. 가능한 모든 부정이 동원된 3·15부정선거 때문에 건전한 사회에서 당연한 선거의 중립적 관리가 새삼스레 요구되었다는 이야기다. 같은 페이지의 말미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이와 같이 선거관리기관을 독립 위원회형의 헌법기관으로 규정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그 예가 드물다."

자랑삼아 써 놓은 구절인 듯 싶지만, 다시금 쓸쓸해지는 표현이다. 헌법으로 규정해 놓지 않고서는 그 중립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우리식 민주주의의 한계를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가 불필요한 제도를 만든다

헌법 제 114조에 의하면 선관위원은 9인으로 구성된다. 대통령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이다. 그런데 이 9인은 아무런 자격요건도 없다. 바로 위에 등장하는 헌법재판소의 경우 '법관의 자격을 가진'이라고 그 요건을 명확히 하고 있으나 선관위원의 경우 그러한 제한이 없다. 법률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만으로도 구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현재 9인의 구성은 사법고시 출신 6인, 선관위 관료 출신 1인, 언론인 출신 2인이다. 9인의 구성과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들이 법률을 해석할 아무런 자격과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단지 정해진 법에 따라 그것을 집행할 따름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선거, 투표, 정당활동에 대한 제한적인 경찰권(?)정도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다.

동일한 홈페이지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대략 15가지이다. 그 중 2·3·4항의 권한이 이번에 사용된 것으로 보여 진다. 그 내용은 이렇다.

2항 선거법위반행위 예방 및 단속권, 3항 선거범죄 조사 및 증거물 수집권, 4항 선거법위반행위에 대한 조치권 등이다. 4항의 조치에 있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조치의 내용은 중지, 경고 또는 시정명령에 불과하고 이를 불이행할 경우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를 할 수 있다. 이들이 고발한 사건에 대해 이를 기소할 수 있는 것은 '기소독점주의'에 따라 검찰이다. 또한,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다.

지난 15대 총선이후 선관위는 당선된 의원 21명을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하여 수사를 의뢰하였다. 검찰은 그 중 2명을 기소하였을 뿐이다. 당선자에 대한 선거법 적용에 대해 검찰의 집행의지를 물을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선관위의 지나친 법적용 혹은 월권에 대해서도 되물을 수 있는 사례이다.

그 2명이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선관위 고발에 대해 검찰이 인정한 범위가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선관위의 판단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며 경직되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결과이다.

선관위의 입장에서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선관위의 중립성과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헌법기관의 그것을 폄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과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선관위는 사법기관이 아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선관위를 '사법기관'으로 인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정이 그런데도 최근의 보도는 "선관위에서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제9조를 위반했다고 '결정'하였다"는 식이다. 하지만 나의 짧은 법률상식으로 법률의 위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법기관'이어야 한다. 선관위는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 '판단'이 옳은 것으로 간주된다고 하더라도 결정된 것과는 다르다.

또 한가지는 선관위는 누구의 고발이 있어야지 그 행위의 적법여부를 가늠하는 곳이 아니다. 앞서의 홈페이지에서 선관위 기능을 설명하는 항목에는 이렇게 적시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직원은 직무수행 중에 선거법위반행위를 발견한 때"다.

선관위원들이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진작에 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을 리 없다. 그런데도 아무 소리 없다가 야당에서 '고발장'을 접수하니까 모여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스스로 중립성을 잃고 있는 처사이다. 더구나 한 번의 고발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이어지는 고발에서 똑같은 형태을 취하고 있다.

야당이 고발이 있으면 선거중립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고 고발이 없으면 선거중립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말인가? 선거법 위반은 친고죄가 아니다.

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선거법 위반에 대한 고발은 검찰에 하는 것이 맞다. 유권해석을 의뢰하기 위해 한 번 정도 선관위에 의견을 물을 수는 있지만 기소권을 가진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절차이다. 법적 구속력이 불명확한 선관위에 대고 자꾸 해석을 해내라는 것은 선관위의 중립을 오히려 훼손하고, 선관위를 정치권의 세력다툼에 끌어들이는 이상의 아무런 효력이 없다.

선관위는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라

주로 투·개표 업무의 공정성에 국한되게 일처리를 하던 중앙선관위가 선거운동 전반에 대해 전면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이회창씨가 선관위원장을 하던 때부터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동해와 영등포 재보궐선거에서 대통령과 여야당 총재들에게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고 선거후 대부분의 후보들을 고발하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나름 의미있는 성과였다고 할 만하다.

'선거=불법·탈법’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던 때이기에 중립적인 선관위의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했고, 이후 선거문화를 많이 개선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본다.

하지만 법률을 집행하는 위치에서 법률을 해석하고 의미을 부여하는 시도를 하는 것은 지나친 권한행사이다. 특히, '공무원의 중립'과 같이 상충하는 법조문에 대해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헌법이 부여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지위와 법률이 정해놓은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법률이 부여한 위원회의 권한 중에서 현재와 같은 상황에 맞게 부여 되어 있는 권한이 하나 있다. 위원회와 각 정치권은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즐길 것이 아니라 조속히 그 권한을 사용하여 더 이상의 논란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앞서 15개의 권한 중 14번째 권한으로 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정치관계법에 대한 제·개정의견 제출권이다.

"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은 정당간의 당리당략과 정치적 타협에 의하여 제·개정되는 경우가 많아 선거의 공정한 관리와 정당·정치자금 사무의 관리를 담당하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 중립성과 공정성을 가진 선거관리위원회가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여 최적안을 마련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건 위반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니여~'하는 모호한 판단을 지속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선출직 공무원, 정당에 소속 가능한 정치인의 선거 운동의 범위를 정하는 법률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 바란다.

또한 이미 내려진 결정과 유사한 사안에 대해 '고발'을 남발하는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선관위의 중립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내리기 바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야당의 '고발'이 있을 때마다 모여서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며,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전심의를 해야 하는 헛된 수고를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립 #헌법기관 #공직선거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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