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남편을 두면 마누라가 고생이지

일손 도와 드리러 갔던 시댁, 촌에는 노인들뿐이었다

등록 2007.06.21 10:31수정 2007.06.2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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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판을 들어내는 데도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다. 서 마지기 모내기할 모판을 들어내느라 힘들었던 남편, 하는 요령을 잘 모르고 힘만 주다가 허리를 조금 상했다. ⓒ 이승숙

오가는 길에 뿌리는 돈으로 사람을 사라

한낮의 들판에 움직이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 벼들만 생생하게 빛을 낸다. 살음을 한 벼들은 한창 물을 빨아올리는지 그 연하던 잎새들이 벌써 검푸른 빛으로 변해 있었다. 모내기를 한 지도 그러고 보니 한 달이나 지나간 것 같다.

강화는 북쪽이라 그런지 모내기를 빨리 한다. 5월 중순이면 모내기를 시작하고 한 일주일쯤 지나면 그 너른 들판에 모내기를 다 마친다. 하지만 경상도는 조금 늦다. 예전에 보리를 많이 심던 때는 보리 타작하고 모내느라 늦었고 지금은 마늘이나 양파 등을 심기 때문에 수확하느라 또 늦다. 그래도 6월 10일 쯤이면 얼추 모내기가 끝난다.

지난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시댁에 다녀왔다. 올해는 일손 도와 드리러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가게 되었다. 사람 일이란 게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나 보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일도 있는 거다. 올해는 일손 도와 드리러 안 가리라 작정했는데, 그런데 시댁엘 또 가게 되었다.

우리 시댁은 경북 의성이다. 우리가 사는 강화에서 가자면 아무리 빨리 가도 4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곳이다. 퇴근 시간대에 떠나게 되면 길이 막혀서 5시간에서 6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휴게소 한 번 들르지 않고 규정 속도 이상으로 죽어라고 밟아서 가도 시간이 그렇게 걸린다.

한 번 가면 길에 뿌리는 돈도 적지 않다. 왕복 기름값에 통행료까지 줄잡아 15만 원 가까운 돈이 길에 뿌려진다. 휴게소에 들러서 요기라도 하는 날이면 돈은 또 껑충 올라간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반찬거리라도 좀 사면 또 돈이 깨진다. 이래저래 한 번 나서면 최소한 20만 원은 기본이고 30만 원은 들어간다.

효자 남편을 두면 마누라가 고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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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판을 들어내면 모판 밑에 붙어있는 흙을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이앙기로 심을 때 모가 술술 잘 빠져 나간다. ⓒ 이승숙

올해는 집안에 일이 자꾸 생겨서 3월부터 5월까지 도합 4번이나 다녀오게 되었다. 애경사에 가다보니 부의금도 낮잡아(꽤 많이) 들어갔다. 올 봄에 딸이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올해는 고향 나들이를 좀 줄이자고 했는데 그런데 집안대소가에 자꾸 일이 생겼다. 안 갈 수도 없고 해서 다니다 보니 가계에 먹구름이 끼이고 말았다. 지난 번 고향 나들이 때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올해는 일손 도와 드리러 못 올 거 같아요."

차마 돈 때문에 못 온다는 말은 못 하고 다른 핑계를 대어서 둘러 말했다.

"애비가 이제는 직책이 있어서 그런지 많이 바빠요. 그래서 못 올 거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좀 바쁘다. 남편은 업무 때문에 늘 늦게 돌아오고, 때문에 주말에는 쉬어 주어야 한다. 어머니는 서운하셨겠지만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거리라도 가깝다면 몰라 천리 길 그 먼 길을 어떻게 만날 다닌단 말인가.

한 번 그렇게 장거리를 다녀오고 나면 며칠간 힘들어서 내 할 일을 잘 못 하게 되는데, 그래서 올해는 일철에 안 내려가기로 작정을 했다. 하지만 일이 어디 뜻대로 다 되던가.

일부러 마음 먹고 안 가려고 했는데 또 피치 못한 일로 가야만 하게 되었다. 시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입원하신 것이다. 경미한 사고였지만 그래도 농사일을 하시기에는 무리라는 진단이 나왔고 그래서 우리 부부는 또 고향 길에 나서게 되었다.

차들은 쉼없이 오고가지만 촌에는 사람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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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앙기로 하니까 서마지기(600평) 모내기도 금세 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풋농사꾼이 해서 그런가 뜬 모가 많았다. ⓒ 이승숙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가는 것 같은 우리에게 이웃 언니가 그러는 거였다.

"그 먼 길을 또 가는 거야? 길에 돈 다 깐다 깔아. 차라리 돈 보내드리고 말아. 그 돈으로 사람 사서 하시라고 하면 되잖아."

오가는 길에 드는 비용을 부쳐 드리라는 거다. 사람 사서 일하면 되지 뭐 하러 그렇게 먼 길을 가느냐고 했다. 노는 사람도 아니고 주중엔 일 하느라 힘든데 주말엔 쉬어야 다음 주에 또 일하지 않겠냐며 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 하면서 고향 갈 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돈 보내드려도 촌에는 일해줄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단다. 전부 노인네들뿐인 동네에 젊은 사람이 더러 있지만 그들은 남의 집 일 해주러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남의 집 일해주러 다니지 않고, 품삯 받고 일해주는 사람들은 다 노인네들뿐이라고 했다.

효자 남편을 두면 마누라가 마음 고생한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었다. 남편을 따라다니자니 나도 죽을 노릇이었다. 한 번 시골 갔다오면 노독이 쌓여서 며칠을 빌빌거리게 된다. 평소대로 돌아가려면 며칠씩 걸린다. 그래서 시댁 가는 길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하리 나는 맏며느리고 남편은 효자인 것을.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매번 따라 나선다.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따라 나서는 것이다.

금요일 오후 일찍 출발했다. 그렇지만 시댁에 도착하니 저녁때였다. 서둘러 온다고 조퇴까지 하고 나섰는데 그래도 길이 멀어서 그런지 도착하니 저녁 밥 때가 다 되어 있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선걸음에 달려왔건만 고향은 이렇게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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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에 앉아서 아들이 일하는 양을 지켜 보시는 아버님, 아들도 자기 일이 있는데 어찌 해마다 올 수 있을리오... ⓒ 이승숙

토요일, 식전 댓바람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한나절 일을 식전에 다해 버렸다. 서 마지기 논에 모내기하려고 그 전날 논을 다뤄 두었다. 그 논에 들어갈 모판은 대략 50판 정도 된다 하였다. 그래서 식전에 모판을 다 들어냈다.

그냥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거 같은 모판 들어내기도 해보면 일이다. 촘촘하게 뿌리를 내린 모판을 논에서 들어내자면 기술이 필요하다. 무조건 힘으로 들어내는 게 아니라 요령이 필요하다. 모판 들어내는 기구를 이용해서 모판을 들어내자면 나름대로 잔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모판 밑에는 흙이 붙어 있다. 그 흙을 훑어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이앙기로 모내기할 때 모가 쏙쏙 잘 빠져 나온다. 한 사람이 모판을 들어내면 또 다른 사람은 흙을 훑어낸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그 모판들을 논둑으로 옮겨놓는다. 그리고 경운기에 실어서 모낼 논으로 옮겨간다.

일손이 딸리면 혼자서도 해야 할 일이지만 오늘 우리 집엔 일손이 많다. 그래서 일이 빨리 진행이 되었다. 일손이 많아서 그런지 일이 쉽게 끝났다. 하지만 서툰 농사꾼들은 일머리를 모르고 일하느라 나름대론 힘들었다.

들판에는 전신에 다 노인들뿐이었다. 간혹 가다가 일손을 도와 드리러 온 젊은 사람들이 더러 보이기도 했지만 거개가 다 노인들이었다. 경운기를 모는 사람도 이앙기를 다루는 사람도 전부 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들밖에 없었다. 우리 농촌의 현실이 보이는 듯했다.

십 년 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농사짓는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과연 우리 농촌은 어떻게 될까? 안 그래도 산 밑에 있는 밭들은 일손이 딸려서 묵밭이 되어가고 있는데 십 년 뒤면 묵밭이 더 늘어날 것 같았다.

알뜰히 땅을 갈고 산을 쪼아서 농사 짓던 논밭전지들이 묵밭이 되고 있다. 전답들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금방 자연으로 돌아가 버린다. 일구지 않은 전답들은 곧 풀이 돋고 자란다. 그러다가 쑥대밭이 되어 버리는 거다. 호랑이가 집을 짓고 살아도 모를만큼 풀이 우거지게 된다.

십 년 뒤의 농촌, 잘 지탱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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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만 남은 시골,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쉼없이 오고간다. ⓒ 이승숙

공부하느라 일찍 고향을 떠난 남편은 손에 익숙하지 않은 이앙기를 잡고 씨름을 한다. 논둑머리에 앉아서 아들이 일하는 모양을 바라보는 아버님은 애가 타는 모양이다.

"야야, 그래하마 안 된다 카이. 이래 이래 해야제."

아버님이 시범을 보인 줄은 벼가 똑바르게 심어졌는데 남편이 모를 낸 줄은 넓어졌다 좁아졌다 삐뚤빼뚤하다. 뜬 모도 많은지 어머니는 연신 허리를 굽혀 뜬 모 심기에 바쁘다.

물꼬를 틀어놓은 논에서는 윗논에서 아래 논으로 콸콸콸콸 물이 쏟아져 내려간다. 물은 아래 논으로 잘 내려가건만 촌(村)에는 다음 대를 이을 사람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온 농사의 기술, 삶의 지혜들이 노인들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물꼬를 손보는 시아버지의 손등에는 검버섯이 잔뜩 피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해온 농사 일에 손가락은 꺼꾸정하게 굽어 있다. 아버지는 앞으로 몇 년 더 농사일을 해낼 수 있을까? 농촌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들판 저 너머 보이는 찻길에는 차들이 쉴새 없이 오간다. 그들은 지금 어딜 가는 걸까. 나들이 가는 길일까 아니면 일손 도와드리러 가는 길일까. 길에 뿌려지는 돈이 아깝다며 내려가지 말자 했던 내가 슬몃 부끄러워졌던 지지난 주말이었다.
#시댁 #모내기 #농촌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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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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