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장의 '매몰찬 외면'과 '어설픈 핑계'

사건 성격 미규명 이유, 산내위령제 불참키로

등록 2007.06.22 19:35수정 2007.06.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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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유해매장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피학살자의 유해로 보이는 드러난 두개골. ⓒ 오마이뉴스 심규상

올해로 '대전산내 골령골 사건' 희생자에 대한 위령제가 8번째를 맞고 있지만 사건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대전시장과 대전시로부터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

박성효 대전시장은 최근 내달 1일 동구 낭월동 암매장지 현장에서 열릴 예정인 '산내 골령골 희생자 위령제'와 관련 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에 보낸 회신 공문을 통해 "진상규명 사업이 완료되지 않았고 사건의 성격이 규명되지 않았다"며 "따라서 행사 참석과 지원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는 박성효 대전시장에게 위령제 비용의 일부 지원 및 희생자를 위한 추도사 등을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회장 김종현)는 22일 입장문을 통해 "대전시장의 천박한 역사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과거사 청산의 노력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 또는 변명"이라고 비난했다.

대전시 "사건 성격 규명되지 않아서..."?

실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사건은 공개된 미국립문서 등 각종 자료와 증언들에 의해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0년 7월 초부터 중순경까지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정치범과 인근 민간인 등 수 천여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실증되고 있다.

희생자들이 처형당하는 현장 사진은 물론 처형 직후 암매장지 모습이 담긴 사진과 당시 학살에 참여한 경찰간부의 증언, 종군 기자들의 취재기사, 형무소 관계자들의 증언, 일부 희생자 명단 등 이를 뒷받침할 근거도 다른 유사 사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총살 명령이 누구의 지시에 의해 내려졌는지와 전체적인 희생자 수와 명단 등만 나오지 않았을 뿐 학살의 주체, 희생자 범위 등 사건의 성격은 이미 밝혀진 지 오래다. 새삼 사건의 성격에 대해 말하자면 '군경에 의해 예비검속원 및 보도연맹원, 형무소 재소자' 들이 학살된 사건이다.

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 김종현 회장은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된 유가족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사건의 진상이고 사건의 성격"이라며 "이미 모두 밝혀진 사건의 성격을 마치 논란의 대상인 것처럼 왜곡한 대전시장의 처사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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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부터 매년 7월 초 열리고 있는 대전산내희생자 위령제. 올해로 8번째를 맞는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그는 이어 "이제껏 사건의 성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현 대전시장을 비롯 역대 대전시장과 전 현직 대전 동구청장 뿐이었다"며 "이들은 알려고 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있다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도지사-전남도지사 매년 추도사... 대전시장만 왜?

반면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전남도지사 등은 매년 산내 골령골 희생자 위령제 때마다 추도사를 통해 희생자의 넋과 유가족들을 위로해 왔다.

대전 산내 사건 희생자 유족회 회장 김종현씨는 "부모형제를 잃고 수 십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아온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마저 게을리 하는 대전지역 단체장들의 행태를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위령제 행사를 준비하고 대전참여자치연대 문창기 팀장은 "자치단체장이 진상규명과 위령사업에 적극 힘을 보태도 모자란 판에 나중에 정부에서 조사를 모두 끝내 놓으면 그때가서 참석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마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하는 대전시장의 행태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팀장은 이어 "경북 문경ㆍ경산, 전남 순천ㆍ해남 등 전국에 산재한 유사 민간인학살 사건의 위령제의 경우에도 해당지역 지방자치단체와 단체장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 산내골령골 학살 현장은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제주 4·3 관련자 등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과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등 7000여명이 집단학살 후 암매장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낸 미군 제25 CIC 분견대의 활동보고서에는 "50년 7월 1일 한국 정부의 지시로 경찰이 대전과 그 인접지역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는 내달 1일 사건현장인 골령골 현장에서 각각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와 여덟번째 희생자 위령제를 열 예정이다.
#산내사건 #골령골 #대전시장 #대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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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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