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이는 '하륜'

[태종 이방원 111] 끌고 가는 사람과 밀고 가는 사람

등록 2007.06.26 09:55수정 2007.06.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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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를 거두어들인다는 결정을 내린 태종 이방원은 심신이 지쳐 있었다. 국정을 멀리 하고 쉬고 싶었다. 개경으로 피접하고 싶다는 뜻을 하륜에게 밝히자 반대했다. 왕도에서 너무 멀다는 이유다. 안암동에 있는 검교호조전서 김식의 집을 수즙(修葺)하라 이르고 인소전을 찾았다. 전후사정을 모후에게 고하기 위해서다.

다음 차례는 태조 이성계가 기거하고 있는 덕수궁(德壽宮)이다. 혼나러 가는 길이다. 길창군(吉昌君) 권근과 옥천군(玉川君) 유창 그리고 지신사 황희가 시종했다.

"나라를 전하는 것은 국가의 대사인데 왕이 나에게 고하지 아니함은 무슨 연유인가? 더구나 왕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벌써 희어졌나? 학문이 아직 통하지 못하나? 사리를 알지 못하는가? 갑자기 물러나 편안히 쉬려 하는 것은 또한 무슨 뜻인가? 내가 백세를 맞은 뒤에는 자의대로 행하게 두겠지만 아직 죽기 전에는 다시는 이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신(臣)이 혼자 들어와 모시고 있으니 부왕의 꾸지람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태종 이방원은 머리를 조아렸다. 시종한 신하들이 멀리 있으니 더 심한 꾸지람을 주어도 달게 받겠다는 뜻이다. 권위를 자랑하는 임금이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아들이다. 그 또한 평범한 아버지가 아니라 태상왕이지 않는가.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띠우던 태조 이성계가 지신사 황희를 불렀다.

"큰 잔(盞)에 술을 부어 그대의 주상에게 권하라."

선위파동을 용서한다는 벌주(罰酒)다. 황희가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 올리자 태종 이방원이 부복하여 자리를 피하며 아버지에게 먼저 드리라고 사양했다.

"비록 너의 벌주잔이나 내 또한 마음이 흐뭇하여 먼저 마시겠다."

세자를 강하게 만들어라

안암동 김식의 집에서 며칠간 휴식을 취한 태종 이방원은 강무(講武)에 나섰다. 오늘날의 군사훈련이다. 강원도 철원과 평강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한 태종 이방원은 포천에서 군사훈련을 참관했다. 환궁한 태종 이방원은 대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기도 광주에서 강무를 강행했다. 왕으로서 군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태종 이방원은 세자로 하여금 종묘에 배알하고 인소전에 제사를 올리게 하는 한편 혹독한 학문 연마를 독려했다. 친밀감이 쌓이면 나태해진다는 이유로 세자사(世子師)와 서연관(書筵官)을 수시로 교체했다. 세자와 죽이 맞아 장난놀이를 한 세자궁 환관(宦官)의 종아리를 때리는가 하면 환자(宦者)의 볼기를 때렸다.

임금이 직접 환관과 환자 노분의 볼기를 때렸다는 소식을 접한 세자사 성석린이 세자궁 식구들을 소집했다. 자존심 상하고 유쾌하지 않은 사건이다. 세자사 성석린이 빈객(賓客) 권근, 유창, 이내, 조용과 서연관(書筵官)을 불러놓은 자리에서 권근이 세자에게 힘주어 말했다.

"보통 사람은 반드시 배워야 입신하지만 세자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도 아닌데 꼭 글공부를 해야 하느냐? 라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옳지 않소. 보통 사람은 비록 한 가지 재주만 능하여도 입신할 수 있지만 상위(上位)에 있으려면 배우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고 정치를 하지 못하면 나라는 곧 망하는 것이오."

세자의 장래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는 태종 이방원은 세자 공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연관(書筵官) 문학(文學) 정안지, 사경(司經) 조말생을 불러 명했다

"이제부터 서연에 입직(入直)하는 관원은 세자가 식사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있을 때에도 좌우를 떠나지 말고 장난을 일체 금하여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도록 하라. 세자가 만약 듣지 아니하거든 곧 와서 보고하라."-<태종실록>

시관(侍官)을 별도로 불러 꾸짖었다..

"요즘 듣건대 세자가 공부하기를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은 너희들의 소치이다. 세자가 만약 다시 공부에 힘쓰지 아니하면 마땅히 너희들을 죄줄 것이다."

서연관 관원들과 세자궁 시종들을 직접 챙기며 세자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문제가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명나라 황실의 황녀(皇女)와 세자 이제를 혼인시키자는 의견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원나라 황실의 공주가 고려왕실에 하가(下嫁)하여 국가경영에 지대한 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태종 이방원은 아연실색했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신하들 사이에서 논의되었다는 것이 불쾌했다. 비록 나라가 약소하여 중국에 사대하지만 신성해야 할 왕실의 혼인이 예속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둘러 김한로의 딸과 정혼한 태종 이방원은 세자와 황녀의 혼인 문제를 자신도 모르게 의논한 민제와 하륜 등 대신들을 불러들여 경위를 설명하라 명했다. 나라를 위함이었다는 원로대신들의 발명을 받아들여 그들의 죄는 공신이라 불문에 붙였다. 애꿎은 조박, 정구, 이현, 조희민, 공부, 안노생이 순금사(巡禁司)에 하옥 되었다 조박만 양주로 귀양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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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 ⓒ 이정근

강무를 실시하여 무신(武臣)들의 군기를 다 잡은 태종 이방원이 문신(文臣)이라고 느슨하게 놓아줄 리 없었다. 종3품 이하 문신들에게 친히 시험을 실시했다. 과거에 급제한 이후 공부를 놓아버린 관료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재교육시키겠다는 의도다.

좌정승 하륜, 대제학 권근을 독권관(讀券官)으로 하고 이조참의 맹사성, 지신사 황희를 대독관(對讀官)으로 한 친시(親試)에 108명이 응시하여 광연루(廣延樓)에서 시험이 치러졌다.

'사문을 연다(闢四門)'는 논제와 '안남을 평정한 것을 하례한다(賀平安南)'는 표제가 주어졌다.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다. 안남이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명나라는 안남(베트남)을 평정한 직후였다. 시험장에 아침과 저녁밥을 제공하고 주과를 내려주었다. 시험이 끝나자 태종 이방원은 합격자 명단을 친히 인정전에 붙였다.

예문관직제학 변계량, 이조정랑 조말생, 성균학정 박서생이 을과(乙科) 1등에 합격했다. 권지성균학유 김구경, 예조정랑 박제, 병조정랑 유사눌, 예문검열 정초, 성균직강 황현, 성균사예 윤회종, 전 사헌장령 이지강이 을과(乙科) 2등에 합격하였다.

변계량은 예조참의, 조말생은 전농부정 박서생은 우정언, 김구경은 봉상주부, 박제는 성균사예, 유사눌은 사헌장령, 정초는 좌정언, 황현은 경승부소윤, 윤회종은 성균사성, 이지강은 예문관 직제학에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고 홍패(紅牌)를 받았다. 태종시대의 신 엘리트 출현이다. 변계량은 이후 권근에 이은 외교가의 명문장가로 성가를 드높였다.

빠르다 생각할 때 늦을 수도 있습니다

문무백관을 시험에 들게 하며 국정을 장악한 태종 이방원이 하륜을 조용히 불렀다.

"명나라 진하사(進賀使)에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
"세자 저하를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너무 어리지 않소?"
"세자 저하께서도 이제 혼례를 올리셨습니다. 일찍이 명나라에 다녀와 견문과 학문을 넓히시는 것이 이로울 듯 싶습니다."
"그것은 알고 있소만 너무 빠르지 않소?"

태종 이방원의 눈동자가 섬광처럼 빛났다. 그 순간 하륜의 머리를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빠르다 생각할 때 늦을 수도 있습니다."
"으음, 경의 말에도 일리가 있구려."

태종 이방원은 괴로운 한숨을 내쉬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신이 먼저 사직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심(王心)을 읽어 내린 하륜이 길을 비켜선 것이다. 걸림돌을 스스로 치워놨으니 치고 나가라는 뜻이다. 눈빛 하나로 왕심을 읽어내는 하륜은 역시 천하의 하륜이었다. 정도전이 주군을 끌고 가는 성격이라면 하륜은 밀고 가는 체질이다.

"하하하, 역시 하공이구려, 내 일찍이 한나라에 장랑이 있었고 송나라에 치규가 있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직 조선에 그러한 인물은 없지를 않소?"
"황공무지로소이다."

태종 이방원은 하륜과 조영무를 면직시키고 그 자리에 성석린을 좌정승, 이무를 우정승에 임명하고 총사령탑에 해당하는 영의정에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를 임명했다. 이들을 받쳐주는 자리에 성석인을 예문관대제학, 박신을 참지의정부사, 권진을 사헌부대사헌, 조원을 우부대언, 이승간을 동부대언, 최함을 좌사간대부에 임명했다. 진용이 갖춰진 셈이다.

하륜이 사임한 후 민무구, 민무질, 신극례의 죄를 청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새로 취임한 영의정 이화가 올린 상소였다. 하륜이 사직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이방원 #하륜 #장자방 #장랑 #치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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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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