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2동의 영원한 아버지, 최고령 운전자

폐품 수입으로 이웃돕는 새마을지도자 김남수 옹

등록 2007.06.26 10:49수정 2007.06.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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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양시마크가 선명한 15년 전 화장지를 들어 보이는 김옹(翁)

안양시마크가 선명한 15년 전 화장지를 들어 보이는 김옹(翁) ⓒ 김재경

a 60여 년 무사고를 자랑하는 85세 김옹(翁)이 운전하고 있다.

60여 년 무사고를 자랑하는 85세 김옹(翁)이 운전하고 있다. ⓒ 김재경

안양시 석수2동 박혁순 동사무소 직원의 안내로 뉴타운개발지역내 최고령 새마을지도자 김남수(85)옹의 허름한 집 대문 앞에 섰다.


집안은 고철이며 헌 옷가지와 박스들로 가득 차 고물상과 흡사했다. 고물들로 난무한 계단을 따라서 들어간 거실도 잡동사니들로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였다.

박흥신 새마을회장은 "고령이지만, 방역할 때도 젊은이 못지않게 열심이지요"라고 말한다. 거실에서 만난 김옹은 고령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명철하고 건강해 보였다.

김옹은 "92년부터 파지를 모았어, 그때는 신문 1kg만 가져가도 화장지 10개들이 1타를 주었어"라며 "나중에는 너도 나도 신문을 모으니까 10kg로 가져가도 달랑 1롤만 주는 거야"라고 안양시 마크가 선명한 두루마리 화장지를 보였다.

초창기에는 파지를 주워서 김옹이 수레에 실고 그것을 끌면 이경순(79) 할머니가 뒤에서 밀었다. 그걸 보다 못한 며느리와 손자(초등학교 4년·6년)들이 합세하여 거들었다.

옆집에 산다는 19통장이자 며느리인 박명희씨는 "솔직히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아들 친구엄마들이 옹기종기 않아 있는 길가를 수레를 끌고 지날 때면 이 길을 지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수 없이 갈등했다"고 말한다.


김옹은 부이사장으로 있던 새마을금고의 설립자나 마찬가지다. 집하고 땅을 담보로 부도나면 자신의 재산을 찾아가도록 제공했고, 농협단위조합 설립 때도 벼 한가마를 흔쾌히 내놓아 기틀을 다졌다고 한다.

a 고물상과 흡사한 김옹(翁)의 대문 안 (이 고물들이 이웃돕기 자원이라네요.)

고물상과 흡사한 김옹(翁)의 대문 안 (이 고물들이 이웃돕기 자원이라네요.) ⓒ 김재경

a 포터에서 폐품을 내리는 김옹(翁)

포터에서 폐품을 내리는 김옹(翁) ⓒ 김재경

김옹은 "파지 줍다 보면 기가 막혀. 부모들이 농사지어서 제일 좋은 걸로 보냈을 텐데, 팥도 벌레 났다고 버리고 고구마 감자도 싹이 났다고 그저 버리는 거야"라고 말한다.


파지 수입이라야 월 10만원 이내지만,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을 사주고, 때에 따라서는 돈도 주고 대학교등록금을 대주는 것이 행복이고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검은머리 가진 짐승은 구제하는 게 아니다'라던 옛말처럼 수혜자들은 고마움을 몰랐다.

한 수혜자가 '오래된 쌀에서 묵은내가 난다'며 버린 것을, 할머니가 떡을 해서 동네에 돌린 적이 있다고 한다. 김옹은 2년째, 연말이면 동사무소에 20kg 쌀 20포를 기증하고 있다.

하지만 김옹의 거실에는 4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낡은 선풍기며, 온전해 보이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김옹은 고물 중에서 쓸 만한 것은 수리해서 쓰고 이웃이 좋다고 하면 거저 주길 즐긴다.

김옹이나 할머니의 허름한 옷도 고물 속에서 찾은 보물이라고 한다. 그런 김옹을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안양 새마을의 산 증인

a 집안에서 폐품을 차에 옮기는 김옹(翁)

집안에서 폐품을 차에 옮기는 김옹(翁) ⓒ 김재경

김옹은 "내가 역대 안양시장 상은 다 탔는데..."라며 수북한 상장과 상패 무더기를 가리킨다. 살아온 발자취를 증명하듯 이력만큼이나 감사장, 공로패, 표창장 등 수상도 다양했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며 빗자루 질하는 모습이 동네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옹은 시장에게 건의하여 종량제 봉투를 제공받으며 골목골목을 청소하기 시작했고, 헌옷수거함 설치를 제의하여 그 수익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 8명에게 3년째 35만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다.

김옹은 여순반란사건 때 경찰에 입문했지만, 다시 시험을 봐서 시흥군청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동면사무소에 근무하며 손에 못이 박히도록 가리방(등사판)을 긁었고, 호적등본을 일일이 손으로 써야 했던 시절이기에 대가족 2집만 쓰고 나면 하루가 후딱 지나기 일쑤였다.

그 후 농사짓기로 작정하고 퇴직했지만, 농사일도 힘이 부치긴 마찬가지였다. 지인을 따라 소장수가 되어 오랫동안 일하다보니 소에 대해 뚜르르 꿰게 되었다. 돈이 주머니 속에 두둑해지며 땅과 집을 장만했다.

세상사 건강비결

a 거실의 선풍기는 4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물속 보물이다.

거실의 선풍기는 4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물속 보물이다. ⓒ 김재경

왜정 때 도요다 화물차를 몰던 경력까지 하면 60년 운전 경력이라는 김옹의 차에 동승했다. 포터가 멈추자, "저기 똥꼴까지 걸음 10포만 실어다 달라는대요." 중년여인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옹이다. 홀로 산다는 그 여인 역시, 신용불량자가 되어 김옹의 도움으로 일어선 사람이다.

산자락 아래 김옹의 밭에는 주렁주렁 달린 매실과 앵두며 하얀 감자꽃, 하수오, 고추, 도라지, 난치성 피부병과 관절염·당뇨병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를 위해 심었다는 백년초가 보인다. 밭에는 배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 더덕, 당귀, 우슬초, 달래까지 없는 게 없었다. 여기서 나온 농산물은 가족들과 박스를 모아준 고마운 이웃들의 몫이다.

상추며 호박, 가지, 열무를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가을이면 감이며 배를 따다 주는 것도 이젠 힘이 부친다는 김옹은 알아서 따라가라고 한다.

부추를 베던 할머니는 "울 할아버지는 어딜 가도 환영해, 노래는 또 얼마나 잘 한다고." 넌지시 귀띔을 한다. 왜정 때 남인수씨가 가수를 하자는 것을 조부가 그건 사당패나 하는 거라며 만류했다는 김옹의 노래 실력은 관중들을 열광시키며 모든 상을 휩쓸었을 정도라고.

할머니가 주신 상추와 부추봉지를 들고 김옹의 소형 트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손을 흔들었다.

a 상추 다듬는 할머니 곁에서 농사일을 하는 김옹(翁)

상추 다듬는 할머니 곁에서 농사일을 하는 김옹(翁) ⓒ 김재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안양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리안양에도 실렸습니다.
#파지수거 #김남수 #안양 #석수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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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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